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꿈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소름이~
우리들 자신이 마침내 껍질만 남은 나무풍뎅이의 화석으로 변할 때까지. -p72


'쿠르트 투홀스키'를 알게 되어 그를 검색해 보다

젊은 시절 항상 그는 자살한 사람들을 어느정도 질투하고 선망해왔다. 종종 강하고 날카로운~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병적 상태에 이르렀는지, 한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p81


겨우겨우 라고 해야 적절하겠다. 역시나 이번에도 배수아를 읽어내기엔 힘겹다는 생각이
역력했다. 읽다가 팽개친 때문에 앞서 읽은 두 편은 다시 펼쳐 봐도 내가 읽었던가 할 만큼
기억에 없다. 애써 다시 읽을 기력도 노력도 하지 않고 통과. 어거지로 일단 읽기 시작했으니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독서라니...

이야기(서사)와 의식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안개 속을 헤매는 독서다.
그렇듯 안개 속에서 안개가 들려주는 것만을 보자면 의미 있는 독서가 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것마저 없다면 정말로 다시는 배수아를 읽지 않았을 것인데 그 희미하면서도 
분명한 존재감이 배수아의 특기이자 장점이랄수 있겠다.  

일전에 읽다가 멈춘 박솔뫼의 '을'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배수아 '꽈'란 이야기가 되겠다.

표제작인 올빼미의 없음 에 대해 언급하자면,
없음 이라는 현상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어떤 낱말을 쓰느냐에 따라 '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또는 뭔가가 없어진다는 것, 더이상 존재치 않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말들을 곳곳에서
읽을수 있다. 그것은 타자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자기가 기억하고 판단하는 자신인지
아닌지 어느 순간 자신할수 없는 장면을 읽을수 있다. 타자와 나 모두의 없음에 대한 이야기들의
소설집이랄까 뭐 그런 느낌. 심히 공감하는 문장들이었다. 그러니 완전히 배수아를 배제할 수가 없다는
것도 골치다... 읽자니 힘들고 외면 하자니 궁금하고.

각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가 아니라 할 수가 없을 지경...이랄까.
서사가 희미하고 부실한 소설을 이렇게 써나가면 되는구나하고 한 방법을 알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이런 소설은 어렵지 않게 찾아 읽을수 있긴 하다, 율리시스를 필두로 하여...

여하튼 소설 한 권을 참 힘들게 읽긴 했는데 읽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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