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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장, 그 후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z의 추천에 힘입어 냉큼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z의 말대로 두 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단지 유령일 뿐』은 어떤 놈이 씹어 먹고 있는지 반납 예정일보다 보름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도 대출중이다.
솔깃하게 했던 z의 소갯말 때문에 시종일관 '왜'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어떤 독자(로써의 작가라도)
한 사람이 또 어떤 한 작가를 좋아하는 대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직접 들을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수 없다면 직접 읽어보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호기심이 작용했다. 전혀 아닐 수도
있을 짐작만 가진 채 이렇게 몇 자 쓴다.
9편의 단편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는「오데르 강의 이쪽」곳곳에서 작가 h의 성향이랄까 뭐 그런게
어른거렸다고 한다면. 물론 그런 생각은 이미 내가 그런 생각에 취한것일수도 있다.
유디트 헤르만의 딱딱 짧게 끊어지는 문장들도 h의 문장을 생각하면 이미지 중첩의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좋아한 작가의 문체를 알게 모르게 흉내내거나 표방하는 걸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취향과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공간과 그 공간 속의 이야기들이 마치 정지한 한 컷의 사진처럼,
먼저와 나중이 다 잘려나가고 사진 한 장만 들여다 보고 있는 그런 소설. 사진 속의 여자가 이전에는 웃고 있다가
울고 있는지 계속 말이 없었는지 알수 없는 상태. 인물과 사건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런 것들을 탁탁탁 잔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내는 가위를 가지고 글 쓰는 작가. h는 쉼없는 쉼표 가위로 쳐내면서 썼다는 느낌이다.
전작에 이어『단지 유령일 뿐』역시 같은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는데 다른 번역자였으면 어떨까 싶다.
취향나름이겠지만 번역자의 어투가 그리 탐탁치 않다. 외국 작품들은 그 나라 말을 공부해 그 나라 말로 읽는 게
최고의 선택이지만.
「붉은 산호」 의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선 관심 없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라는 문장은 h 작품에서 본 다음 문장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내 관심사는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으니까요. 지독히도 나 자신뿐이었죠.
의사가 말하네,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지금 난 우울해
- 톰 웨이츠
왜 저 말을 책 제일 앞에 걸어 놓았는지 읽어 본 사람이라면 느끼지 않을까 싶다.
9가지로 변주된 짧은 소설 하나하나가 결국 저 말과 다름아니다. 그래서 그 우울함이 『단지 유령일 뿐』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h'꽈'라고 말한 내가 계속 주목해봐야 할 또다른 작가의 출현과 앎에 반가운 마음이다.
그리고 z에게 "땡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