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내가 '김소진'이라니. 그의 이름을 검색해 관련 기사나 게시물들을 읽어 보고 그가 펴낸 책들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고 그의 개인적인 사정은 어떠했나를 찾아보던 밤이 지난 가을이었을까 늦여름이었을까. 우연찮게 보게 된 '김소진'이라는 소설가의 짧은 생애와 역시 소설가였던 그의 아내 함정임의 사별 후 이야기에 아마 한밤에 뭉글뭉글하게 부푼 감상이 찔끔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 감정 덕분에 나는 김소진 전집 6권과 『소진의 기억』, 『동행』을 과감하게? 주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집과 함께 주문한 두 권은 그를 잘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의 아내였던 소설가 함정임의 심정은 어떤가했기 때문이다. 몇몇 주목하던 작가들의 출판 동향 정도만 관심이었지 그동안 '김소진' 이라는 작가는 내 관심 영역이 아니었다. 그가 첫 소설을 쓰고 마지막 작품도 채 끝내지 못하던 그 시간동안 나는 문학이니 소설이니 하는 것에는 문외한이었다. 여하튼 주문한 책이 도착해 다른책들과 함께 윗켠에 쌓여 있기를 몇 달째.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었다. 원래 지르는 건 잘 하는데 읽는 건 영 시원찮다. 『그리운 동방』은 전집 제일 마지작 권인 6권이다. 산문들로 이뤄졌는데 작품보다 산문을 먼저 빼든 건 그의 개인적인 목소리와 개인사 그리고 소설 이외의 글들에 나타난 그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게 그의 작품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해서다. '발문'을 쓴 소설가 성석제의 말을 보자면 그는 참으로 '많이'쓴 작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소진'해 버린 작가가 아닌가 싶다. 그런게 운명이란건가 싶다. 직장을 다니면서 펴 낸 작품수로는 여간 독한게 아니라는 말을 할 정도다. 그후 전업작가가 된 후로도 그의 작품 생산력은 대단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김소진' 이라는 이름을 읽으면 나는 김'소진'이라는 식으로 그의 이름이 유난하게 읽혀진다. 너무 빨리 자신을 소진시켜 버리다 못해 시간이 부족해서 할 말을 다 못한 소설가. 그렇게보면 '절필'을 선언할 수 있었던 작가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의 산문은 그의 자의식이 생성된 환경과 배경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가 어떻게 첫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쓰고 싶은지. 그리고 어떻게 소설가와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약간. 김소진은 젊은 작가군들의 소설에서는 보기 힘들게, 낯설고 생경하지만 맛있는 우리말을 곧잘 구사한다. 문장 곳곳에 박혀 빛나는 그 말들을 읽는 재미는 톡톡하다. 그가 '방위'복무를 하면서 국어사전을 탐독하고 정리한 결과라고 한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의 전집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이 기쁨은 더욱 커질 것이라 기대한다. 그가 1997년에 세상을 등졌으니 산문 속의 시간은 10여 년 전이다. 그기 인터뷰 했던 내용을 보자면 이때 벌써 이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구나 싶고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구나 하기도 한다. 세상에 없는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어떤 건 고전이 되어 읽힌다. 고전을 읽으며 작품엔 흡입되지만 그 작가가 지금은 세상에 없다는 것엔 별반 감정의 동요는 없다. 너무 먼 시간의 격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김소진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앞으로 어떻게 남을진 알 수 없지만 꽤나 두툼하게 묶여진 그의 전집 한 권 한 권을 보자면 세상에 없는 그의 작품을 하나 둘씩 따라 읽어가는 건 어쩌면 고로운 독서가 될 듯하다. 관심 도서 볼프강 보르헤르트, 『오월에, 오월에 뻐꾸기가 울었다』 허균, 『숨어사는 즐거움』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