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이후 10년 동안 쓰지 않다가 다시 시집을 낸, 내내 궁금케 했던 허연의 두 번째 시집 일찍이 허무를 알버린 자들이 시인이라는 해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허연 시의 주조는 허무다 시 편 곳곳에 재미없고 허무한 세상사에 대한 말들이다 그래서 허연의 시를 기다려 왔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왜 쓰지 않았는지는「휴면기」를 통해 밝히고 있는듯 하다 어찌보면 이제 한풀 꺾인 시인의 허무풀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니면 이마저도 재미가 없어 영영 안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허무 쓰기가 자리매김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언제나 나쁜 소년으로 서 있어 줄 것도 당부 한다. 언젠가 계간지에 발표했던 「시정 잡배의 사랑」이 실리지 않은 건 의외다. 휴면기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졌다. 세상은 참 시보다 허술했다. 시를 썼던 밤의 그 고독에 비하면 세상은 장난이었다. 인간이 가는 길들은 왜 그렇게 다 뻔한 것인지. 세상은 늘 한심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염소 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시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