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351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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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바시도록 쨍한 날의 백사장엔 모든 모래 알갱이들이 빛나는 것 같다
그 가운데 무릅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여 가만히 모래 알들 하나하나를 관찰해 보면
빛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게 마련이다 눈이 맞은것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렇듯 진은영의 시들을 곰곰히 모래 알들을 살피듯 곱씹는다
재미있는 비유들 빛나는 발상들 내가 무심했던 것들을 리와인드 시켜주는 힘
첫 시집과 대등한 밀도 머... 때론 어지럽기도 했다만
「멜랑콜리아」「물속에서」「주어」「어떤 노래의 시작」 좋다.

무엇보다 시인의 말 속 '우리들'에 나도 편승하고 있겠다는 어떤 동질감이랄까


시인의 말

대학 시절, 성수동에서 이대입구까지
다시 이대입구에서 성수동까지
매일 전철을 타고 가며 그녀를 상상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사이, 만약 당신이 앉아 있다면
내가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
2008년 8월


시집
곳곳에 박혀있는 문장들을 나열해 본다.


거기, 낡은 악의에 대한 새하얗게 빳빳한 환멸
죽은 사람의 아무렇게나 놓인 발들의 고요
  손가락을 핥는 배고픈 개들의 부드러운 혀, 단 즙이
다 빨린 레몬 껍질의 짙은 향, 약간 슬프고도 우스운
느낌들, 그리고 문자들, 손바닥에 만져진 울퉁불퉁한
회벽, 하나의 거대한 렌즈로서의 달! 그보다는 거기
에 닿는 이마의 차가운 상처와 모래의 씁쓸한 맛
모두가 떠나간 검은 빌딩의 불 켜진 한 층처럼
밤새
통증이 빛난다
눈먼 시간들이 부딪치는 어느 모서리에서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누가 저 두꺼운 벽 뒤에서 나야, 나야 소리 질렀나
은유는 없다
그것은 푸른 얼음
따스한 구멍 속에서 녹아버렸다
마음은 빗자루에 엉겨붙은 먼지덩어리였다
나는 만루의 투수처럼, 외롭지 않았다.
검은 피스톨의 동그란 총구를 향해 발사되는 관자놀이의 피냄새처럼.
너는 죽은 이름을 부른다
모든 절정은 왼쪽이거나 오른쪽 끝
첫 올가미에 부드러운 목이 매달리는 소리
내년엔 수목원으로 열리는 창문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
저녁마다 뜰 앞의 작은 돌들을 뒤집어 축축한 달의 뒤편을 어루만지는 저로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창문을 열고 그토록 높은 데서 뛰어내릴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
너는 내 손에 쥐어질 얼마나 날카로운 칼인가!
내가 그린 빛나는 달로
내가 그린 요란한 비행기 날아간다
폐병쟁이 시인을 위해 흰 알약의 값을 올리고
아직도 발자크처럼 건강한 소설가에게는
어미소를 먹인 얼룩소를 먹이도록.
우리가 바람의 무덤 속에 매장하는 향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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