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한유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한유주『달로』문학과지성사 2006

시종일관 화자인 '나'의 독백(이 아니라 해도)
소설이 아니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장르의 경계는 모호해진지 오래
음울하고 조용하게 침잠하는 외침들을 따라 따박따박 빛나는 문장들을 따라 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나와의 대화, 독백이려나
어찌되었건 한 세계를 응시하는 목소리를 읽어 나간다
어디에도 명랑과 쾌활은 없다 그래서 나는 더 깊이 흡입된다
일찍이 소설가 이인성은

...여담을 적자면, 이 소설을 되풀이 읽다가, 나는 혹시 작가의 남자 친구나
가까운 누군가가 자살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치명적 순간부터 행위가
생성되는 시간-이야기가 멈춘 건 아닐까, 막연히 상상했었다(작가를 만나
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사실로서가 아니라 상상으로라도 그와 유사한 어
떤 체험의 순간이 이 작가 속에 깊은 심연을 파놓은 듯하다. ... 2003.4.21
http://www.leeinseong.pe.kr/

고 했다.

그러게 적확하게 짚지 않았나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것이 이 작가의 한계가 될지 아니면 영역을 더 넓고 깊게 구축할 재주를 우리
앞에 펼쳐보일지 아직 예단하지는 않아야지
누구나 속에서 웅얼대는 말들의 편린은 이어진다 그것들은 한번 반짝하고
깊고 어두운 주름 속에 아무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게 가 쌓일 뿐이다 다만 소설가
라고 하는 일종의 부류들만은 그것을 엮어서 건져올리는 족속들이다
소설가 한유주는 그런 재주가 장점인 것 같다 그것이 어떤 개인적 상처에서 나왔다면
안된 것이겠지만 읽는 사람에겐 그것과는 상관없이 좋은 읽을거리가 되는것 같다

개개의 단편들에 대해 왈왈거리기 보다 한편의 단편 소설집을 통째로 받아들여서
말해 보아야 하는건 어떨까 싶다 내적 독백이라는것 자체가 들리지 않는 소리이니
희뿌연하게 한 권의 이야기로 남는것도 이상할리는 없겠다

목소리를 내는 몸은 편편마다 다르겠지만 그 몸의 정신 또는 영혼이 모두 하나라면
결국 하나인 셈
그렇다고 낱낱의 화자들이 몰개성적이다라고 하지는 말 것
   
한 편의 시로 떼어내도 무방할 것 같은 편편들과 많은 문장들이 빛난다
곱씹어 보고 싶은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다
'재미'가 없다고도 하겠지만 내게는 좋은 소설로 남는다

이번 『달로』이후에 묶인 작품들의 목소리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과연 어떻게 밀고 나갈지 어디까지 밀어부칠지 그러한 힘은 있는지 기대되지
않을수 없다 타인의 상처에서 비롯된 힘을 더 기대한다는 것이 한편 비정한 것도
같지만 어찌할 수 없는일 아닐까 그 힘으로라도 써야한다면 그런 힘이라도 있어
야할밖에 다만 그 힘에 압도 당하지만 않기를 
 
김애란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신예 작가가 아닐까 싶다.
만약 다르게 변신한다면 그 모습은 어떤것이 될까? 벌써 변신을 운운하기엔 너무 이
르다는 감이 든다. 오랜만에 관심과 기대를 걸어도 좋을 작가를 발견했다.

개개의 작품에 대한 느낌보다 두루뭉술하게 소설집 한 권에 대한 느낌으로 마감한다.

「지옥은 어디일까」중에서

아침, 저녁, 밤, 새벽, 다시 아침, 다시 아침이 온다는 것이 가끔 믿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고, 짧은 밤은 아침이 되면 정오의 그림자처럼 사라
졌고, 그러면 다시 해가 진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
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암송」 중에서

적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이런 증오를 대체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할까?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명료한 좌표 위에 적들과 적들이 재배치된다.

「죽음에 이르는 병」 중에서

 영화 안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두 죽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증오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고, 심지어는 나와 너와 그들까지
도 모두 죽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숨소리를 낮추고, 내 이유
없는 분노와, 방향 없는 적의가, 문명의 방식으로 말끔히 처리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
나는 청량한 삶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도, 앞
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한
즐거움은 아직 십대라는 것뿐이었다. 아직 삶을 조금도 살지 않
았다는 생각과, 이미 삶을 전부 살아버렸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 번씩 되풀이되었고, 즐겁다면 즐겁고 괴롭다면 괴로운 나날
들이 흘러갔다. 
... 나는 안도했고, 어서 빨리 늙고 또 늙어 노인이 되고 싶었다. 이런
것이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욕망이 아닐까?

 내가 나인 것이 지긋지긋했지만, 아직 십대인 아이가 자기 자
신 말고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시험을 볼 때면 감독을
맡은 선생들이 수그린 아이들의 머리 위로 나직하게 몇 마디 말
을 흘리고는 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라. 나는 코웃음을 쳤
다. 우리가 속일 수 있는 것이 그저 자기 자신들뿐일까?

「그리고 음악」 중에서

내 삶은 일 분의 반복이 계속될수록 허구로 드러났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인 것…… 같았다. 

우리에게 언어는 다만 치장일 뿐이다. 치장된 언어는 윤리
적으로 거짓말보다 더 나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지 않다. 가
상의 세대에 걸맞은 가상의 언어ㅡ우리는 닥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두 입술을 맞물린다. 그러나 이 텅 빈 상태가 사라
지지는 않는다. 거부. 무엇에 대한?

나는 자꾸만 살아남는다. 그것이 나의 삶을 위협한다.
 살아남음으로써 깨닫게 되는 감정은 다름 아닌 수치스러움이
다. 그 수치스러운 감정이 계속해서 깨어 있게 한다. 치욕과 망
각으로 점철된 삶.

「죽음의 푸가」 중에서

사람들은 잠들기 전에 생각하고는 했다: 이 잠이 영원
히 계속되기를.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
이 찾아왔고, 그들은 눈을 뜨고 또다시 절망해야 했다. 꿈 없는
잠, 잠 없는 꿈, 낮이 되면, 그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
을 남몰래 꿈꾸었다.

「달로」중에서

슬픈 일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슬프고 광포한 일들이었다. ...
슬픈 일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슬프고 비참한 일들이었다.

서로가 한 발짝씩 멀어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기나긴 적막의 시작을 견뎌내지 못했고, 삶의 주변을 맴돌면서
저편을 흘긋거리다가, 스스로를 살해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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