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 가장 먼저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 네덜란드에서 전하는 완성된 삶에 관하여
마르셀 랑어데이크 지음, 유동익 옮김 / 꾸리에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갑작스럽게 안락사 옹호론자들로 바뀐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장벽을 넘지 못했으며, 사명감 따위를 갖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단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다면,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참을 수 없다면,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진심으로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죽음이 구원이라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죽는 데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결국엔 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을 주든지 안 주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다.

이념이나 신앙 혹은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이기적이다. 오만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죽기를 원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은 의무가 아니다.

(...)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내 동생이 쉬운 길을 선택했다고 아우성쳤다. 그게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그가 간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붕에서 뛰어내리거나 기차 앞에 서 있는 것, 그런 것이 빠른 길이다. 똑같이 무시무시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안락사를 조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동생의 경우 약 16개월이 걸렸다. 간절히 죽기를 원한다면 그 시간은 매우 오랜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_174p




이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안락사를 더욱 옹호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더욱 반대의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직까지 동양권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한국에 도입되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 개인의 죽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유교적 가치관이나 종교적 입장에서는 허용되기 어려운 제도가 아닌가 싶어 과연 한국에 안락사가 도입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미래의 사회적 상황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의 여지는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중의 누군가는 죽음을 맞기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원정 안락사라는 서글픈 편도 여행을 가고 있을 것이다.


최근 3년간 스위스에서 한국인 두 명이 조력자살 기관의 도움을 받아 원정 안락사를 했다고 한다. 한국은 알다시피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20182월부터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법은 시행 중이다. 존엄사법은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지 않고 자연사의 범주 내에서 연명 치료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다르다.

_233p

 

독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의 안락사가 시행되는 날의 상황을 형의 시각을 통해 비교적 상세히 보게 된다. 옮긴이는 번역을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많이 울어야할 책은 아니다. 물론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마르크가 죽는 날 부분을 읽어갈 땐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다.

몇 시간 후 의사가 도착하는데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마르크의 언행이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이라도 자신의 안락사를 취소하고 다시 한번 재활을 시도해보면 될 것도 같은데 굳이 스스로 안락사를 통해 자신을 죽음이라는 끝으로 몰고 가야할까.

지켜보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면 안될까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가족들이 말려보는건 어떨까,와 같은 온갖 생각이 내게도 밀려드는데 이런 생각은 당사자인 마르크가 겪었던 고통과 죽지 않는다면 겪을 고통을 모르고 하는 걸 수도 있다.

나는 한국에도 네덜란드와 같은 안락사가 도입되어야 하고 안락사라는 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지만 마르크가 죽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봤을 때 온전히 받아들이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자식들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업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주택과 고급 차, 사우나를 갖추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르크는 치료될 수 없었다.

그에게 안락사가 승인되었던 이유다.

그가 죽은 이유다.

_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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