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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32
이영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평점 :
매번 그런건 아니지만 어떨 때 시집을 사러 가거나 읽고 싶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기승전결과 인과로 짜여진 소설의 숲 같은 빽빽함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거나 심드렁한데 그럼에도 어떤 활자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때가 그렇다고 하겠다
단박에 어떤 상황 속으로 내던져지는 느낌이고 싶을 때라고 하겠다
소설과 같은 산문은 늪에 빠지듯 서서히 빠져들지만 시는 순식간에
허공에서 수중이라는 다른 세계로 내리꽂히는 다이빙과 같은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다이빙대에 한번도 서본적은 없지만
시는 그렇게 단박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게 마약같은 중독성이라고 해두자
책꽂이의 시집 가운데 읽지 않은 것도 많고 읽었다 하더라도 그걸
모두 외우고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한두 번 읽었더라도
언제 읽었냐 싶은 시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기시감을 안고 있는 책꽂이의 시집에 선 듯 손이 가지 않을 때
그럴 때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시집이나 신간 코너에서 아무거나 뽑기를 하듯 펼쳐 본다
어떤 문장이나 시 한 편이 꽂히는 시집이면 앞뒤 보지않고 그 시집을 구입한다
뒤쪽부터 보든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든 아니면 차례의 제목만 훑어 보다가
눈길이 멈추는 제목의 시부터 본다
한 권의 시집에 묶인 시들 가운데 단 한 편의 시만 좋아도 괜찮은 시집 읽기였다고 생각한다
설령 단 한 편의 시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해도 시집을 붙들고 있는 그 시간만은
나는 여기에 있지 않고 문장을 따라 어딘가를 배회하거나
나를 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말로 개이득인 것이다
무턱대고 서점에 가서 최근 발간된 이영주 시인의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이라는 시집을 발견했다
차례를 거꾸로 훑어가다가 제목에 끌려 읽은 <우물의 시간> 이란 시의 일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우물의 시간
나는 잡고 있던 너의 손을 버리고 문밖으로 나왔지. 홀로 있을 때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는데 함께 있을 때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둘이 된다.
신발을 벗고 우물을 들여다본다. 물속 깊은 그림자 속에 빠져들어 있으면 바닥이 되고 싶다. 불행은 물속으로 녹아드니까. 자신의 그림자를 죽은 자 위에 놓아두면 안된다는 옛말은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감추려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는 잠에서 흘러나와 잠으로 가는 것이니까.
_부분
전체를 모두 읽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시지만 감질맛 나라고
궁금하면 시집을 사보라고 일부를 읽었다.
그렇다면 왜 이 <우물의 시간> 이란 시에 감응했을까 하는 것을 말로 옮기는 것은
道可道非常道인 것과 같다고 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건가.
일찍이 조용필 옹께서도 이렇게 노래하셨다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_조용필
살다보면 때론 몰라도 그냥 닥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 마디 보태보자면 오래된 우물이거나
더이상 물이 올라오지 않아 입구를 닫아놓은 인적 끊긴 우물이거나
여하튼 우물가에 서서 어둡고 서늘한 우물 바닥을 내려다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우물이 등장하는 소설의 한 장면을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거나
가슴 속에 오래된 우물 하나가 있어 틈날 때마다 그 우물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괜찮겠다.
그런 경험이나 상상을 하고 있다면 이 시에 감응하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읽히는 게 시라서 뭐라 말은 못하겠다.
4월의 해변
해변을 걷다 보면 내가 자꾸 떠내려온다. 발이 많으면 괴물처럼 보이지. 나는 편지를 쓰러 해변에 자주 온다. 무엇인가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 젖어버렸다. /.../
오래된 과자 봉지를 뜯으며 다 죽었는데 발처럼 많아지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너무 살려고 애쓰지 마. 물을 뚝뚝 흘리며 소녀들이 모래사장을 걸어간다.
_부분
내륙 분지 출생인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이었다.
탁 트인 수평선을 처음 본 꼬꼬마에게 바다는 그야말로 네츄럴 쇼크였다.
한산도를 가기 위해 탄 작은 배에서 내려다 본 검푸른 바다에서는 금방이라도
짙푸른 손이 스윽 하고 수면 위로 올라올 것 같은 무서움의 기억도 선명하다.
한편으로는 신발을 벗고 걸어본 백사장의 느낌과 쉼없이 밀려왔다 가기를
반복하는 파도와 하얀 포말의 느낌 역시 신기하기만 해서 한참을 바라봤던 것 같다.
바다에 대한 처음의 기억과 그 이후 한참이나 지나 찾아갔던 겨울바다의 상념이
어지럽게 뒤섞여 바다나 해변이라고 하면 고착된 한 장의 이미지가 되었다.
어떤 시는 오래된 기억을 굳이 끄집어내 준다. 멀어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다시 가까워지는 파도처럼 잊었는가 싶은 기억을 불쑥 단박에 끼얹어 준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꾸 떠내려 온다’.
한번씩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다는 것은 잊었다는 것조차 잊은
어떤 기억이 튀어나오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많은 페이지를 접었지만 그 가운데 두 편의 일부를 소개해 본다
우유 급식
이렇게 깊고 깊게 파고드는 날이면 연필을 깎고 또 깎습니다. 저는 이제 편지를 쓸 사람이 없네요. 제게는 도착할 편지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아무에게도 쓸 수가 없는 걸까요. 너무 미안해서 죽이고 싶은 걸까요. 다른 세상은 없으니까. 다른 너도 없으니까. 미안하면 미안한 채로 이를 갈며 뜬눈으로 잠이 들어야 하니까. 여기에는 여기도 없으니까. 어두운 시간은 어두운 곳에 없고, 쌓인 편지를 어느 시간 안으로 버려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_부분
여름에는
내가 아는 밑바닥이 있다. 물이 가득하지. 나는 한 번씩 떨어진다. 물에 젖어 못 쓰게 되는 노트. 집에는 빈 노트가 너무 많다. 버릴 수가 없네. 밑바닥이 들어 있다. 자꾸만 가라앉지. 어디도 내 집은 아니지만. 첨벙거리며 잔다. 베개가 둥둥 떠내려간다. 괜찮아. 어차피 바닥이라 다시 돌아와.
_부분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괜한 말로 감상에 방해가 될까 싶어 부분만 소개했다. 다음으로는 이 시집을 열고 있는 첫 시와 닫고 있는 마지막 시를 소개해 본다. 아무렇게나 시를 배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 같은 걸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십대
불과 물. 우리는 서로를 불태우며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는 망해가는 나라니까. 악천후의 지표니까. 우리는 나뭇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고, 오줌을 쌌고, 자주 울었고, 나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_전문
연대
어둠이 쏟아지는 의자에 앉아 있다. 흙 속에 발을 넣었다. 따뜻한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나는 망가진 마음들을 조립하느라 자라지 못하고 밑으로만 떨어지는 밀알. 옆에 앉아 있다. 어둠을 나누고 있다.
_전문
아주 간략하게 살펴본 이영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뭔가 코드가 맞다 싶다면 일독,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