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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이번 영상은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원본과 편집본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편집 과정에서 일어난 작품의 분량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원본이라는 건 작가 자신이 탈고를 마쳐서 출간한 상태의 판본이고
편집본이라함은 카버의 전담 편집자 고든 리시에 의해 수정되어 출간된 판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우리가 읽는 소설은 작가가 쓴 최종 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일반 독자인 우리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책이 있다. 지금 살펴 볼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이 바로 그것이다. 원본과 편집본이 정식으로 출간되는 경우는 진짜 희귀한 경우가 아닐까 싶은데 완전 대박인거다.(나만 그런가?)
레이먼드 카버는 단편 소설로 유명한데 그의 단편을 읽다보면 짧아도 너무 짧아서 서너 페이지밖에 안되는 것을 읽고나면 이게 뭐지 스러울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레 끝난다든가 뭔가 상황 전개가 이상하다든가 등등 설마 작가가 이렇게밖에 안썼을까 싶을때가 있는데 편집자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판본을 읽어보면 좀 이해가 된다
어느 판본의 우열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궁금하다면 직접 비교 독서를 해보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술안주거리로 참 좋을 법하다.
참고로 여겨두어야 할 것은 원서가 아니라 번역된 판본에다가 역자 역시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한번 살살 털어보기로 하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레이먼드 카버 전집 가운데
2005년 출간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과 10년 후
2015년 출간된 『풋내기들』 이 두 권을 비교해 볼 것이다.
카버에게서 원고를 받은 편집자는 원고의 거의 50%를 쳐내고 출간했다고 한다.
단순하게 책의 전체 페이지 수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는데 각각 248p와 456p다
거의 200여 페이지 차이가 나는데 만약 여러분이 작가라면 어떤 기분일까
다음 화면은 각 단편들마다 비교해 보고 정리해봤다
편집자본과 원본의 각 단편들의 변화된 페이지 수를 주시해보면 된다
빨간색 밑줄이 쳐진 것은 절반 이상의 차이가 나는 작품들이고
초록색 밑줄은 그보다는 차이가 적지만 무시할 수 없어서 표시해본 것이다
편집자본의 <목욕> 같은 경우는 15p인데 원본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48p 하고도 5줄이다. <목욕>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 이후 약 25페이지 분량을 편집자가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당신이 만약 소설을 써보고 싶다면 어떤 부분이 군더더기 같은지 이런 비교를 통해 조금의 힌트를 얻을수 있지 않나 싶다. 고든 리시라는 내노라 하는 편집자가 거추장스런 부분을 과감하게 삭제했는데 삭제된 부분을 찾아봄으로써 늘어지는 정황과 표현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습작기의 소설들이 재미가 없거나 지루한 이유다. 소설을 썼지만 소설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작품을 직접 쓰는 사람은 주관적으로 몰입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거리두기에 실패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최초 독자는 작가들의 지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들에게 읽혀보거나 글쓰기 수업에서 합평을 거쳐 의견을 들어보는 과정을 통해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군더더기를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편집자본과 원본 가운데 편집자본이 항상 더 나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반드시 작품에 대한 조언이나 편집자의 의견대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두 가지를 비교해 가면서 읽어야 하느냐고 한다면 내 대답은 글쎄요 다
어느 쪽을 읽든 모두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이니까.
한가지 더 비교해 보자
<미스터 커피와 수리공 양반> 과 <다들 어디 있지?>의 첫 문단을 비교해 본다
여섯 페이지와 스무 페이지, 이 작품도 거의 3배의 분량 차이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원서의 문장을 모르는 상태에서 역자도 다른 번역본으로 비교를 한다는게 적절한 비교는 아닐 듯 하지만 가볍게 한번 비교해 보자
번역 문장의 차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도 한번 비교해 봤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번역의 차이가 아니라 원서의 차이로 인해 다른 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금요일 정오에서 금요일 밤으로 바뀌었고
마흔넷이라는 나이가 쉰넷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오리지날 원고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오탈자를 고쳤다는 편집자 서문을 참고하면 될 문제 같다.
이런 식으로 원고의 분량을 기준으로 하는 기계적인 비교를 재미삼아 해봤다
축소 편집된 원고와 오리지날 원본과의 비교를 통해 작품 내적인 변화랄지 아니면 의미의 변화 같은
심층 분석까지 할 깜냥은 없는 사람이라 거기까진 살펴보지 못했다.
소설 읽기와 쓰기에 한층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비교를 통해
의외의 쏠쏠한 재미와 지식을 얻을수 있을 것 같다.
땡기는가?
땡기면 한번 땡기시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