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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삶,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또 그래, 솔직히 인정하거니와,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이것은 충격까지는 아니라 해도
놀랄 만한 깨달음이었다. 전에는 나 자신을 단검을 입에 물고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맞서는 해적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망상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다.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
그래서 과거란 나에게 단지 그러한 은둔일 뿐이다. 나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것이, 과거가 어떤 존재를 가지고 있을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도. 62p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95p
나 역시도 당장에 떠나서는 본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
다만, 산다는 오랜 습관 때문에 죽기가 싫어질 뿐이다.
134p
2005년 맨부커상 수상 당시 "참사" 라거나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할 책이라는 독설을 퍼부은 이도 있었다고 한다. 책읽기의 진도가
느렸기에 하는 말도, 재미가 없어 하는 말도 아니지만 읽은 사람
입장에서 절반 동의. 나머지 절반은 어떤 찬사에 동조한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것 같다.
막연한 생각이지만 이대로 읽고 말 것은 아닌 한 번은 더 읽지 않을까
하는 예감, 물론 틀린 예감이겠지만. 어떤 책은 반납하거나 팔아버
리기가 조금은 아쉬운데 이 경우가 그렇다. 또 어떤 책은 그것을
읽음으로써 단 한번도 떠오른 적 없는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전혀
상관없는 예감이나 충동을 불러온다면 충분히 읽은 가치를 한 것이다.
어쩌다 정영목 번역가의 번역물이 얻어걸리곤 하는데, 그가 이견이
없는 좋은 번역가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의 번역물을 읽다보면 굳이
이런 단어를 써가며 번역을 해야하나 싶은 곳들이 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이런 걸 쓰게 된다.
제2의 창작이라고 하나 번역자의 번역 문장들은 매끄러운 읽기가 첫째
조건이 아닐까 싶은데 남들이 안쓰는 단어나 특유의 표현들을 구사해
자기만의 냄새를 피워 자기를 드러내는건 번역가의 오지랖이 아닐까
나는 생각 한다. 물론 무시해도 될 문제라해도 무방하다.
실재로 국어사전을 씹어 삼켰다는 고 김소진 작가처럼 1차 창작자가
국어 고유의 결을 살려 자신만의 문체로 쓴다면 모를까 번역가라는 2차
창작자는 자신의 스타일을 전달할 게 아니라 오역 없는 정직한 문장을
구사하고 자신은 그 뒤에 숨어야 한다고 본다.
오번역이 심심찮은 번역물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정영목 번역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정영목만의 특징도 아닐 것이며 제2 제3의 또다른 번역가 역시
이런 번역을 하고 할 수도 있겠지. 그때마다 나는 불편을 불평하겠지.
참고로 이 책은 2007년에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랜덤하우스코리아)로 한번 출간된 적이 있었다. 절판된
작품이 다시 출간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운 점은
같은 번역자의 번역본이라는 점이다. 번역의 아쉬움을
토로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번역을 기대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같은 번역자가 과연 다른 번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런 결정을 한
출판사 측에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