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문학동네 시인선 122
배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부재하는 이의 책은 숱하게 차고 넘치지만 그 부재가 최근의 일이며 그

부재의 당사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 듯한 느낌이라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건 인지상정의 일 아니겠나. 물론 일면식 없는 이를 단지 책으로

첫대면을 하는 일일 지라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우연히 신간 소식으로 저자가 이미 지병으로 고인이 되었음을, 그리하여 유고

시집임을, 그 가운데 훗날의 장례식같은 시가 눈에 띄어 그의 시집을 구해보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병을 이길수 없음을 직감하고 쓰지 않았을까 싶은 시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 심정은 참담이었을까 달관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 올리는

애도였을까. 시집을 들고 오는 길 횡단보도 옆으로 지는 노을을 보는데 왜

갑자기 모두가 이별이예요 라는 가사의 노래가 날벼락처럼 입가에서 터지던지


시집 뒤편에 부쳐진 이영광 시인의 발문을 먼저 읽어봤다 뭔가 각별한 사연 같은게 있나 했다 그런게 있다면 한줌이라도 더 나눌수 있지나 않을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배영옥 (1966~2018)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뭇별이 총총2011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2019

여행 산문집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2014

201861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뒷표지에 촛불 하나 밝히고 있는 이 시집은 시인의 1주기 기일에 발간 되었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 70편의 시가 있다

유고 시집의 목차를 시인이 손수 가지런히 나열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가장 훗날에 와야할 시를 첫 시로 앉혀놓았는데

그 시를 읽고 있자니 한없이 아득해지는건 뭔지


첫 시 훗날의 시집의 첫 연이다


필자는 없고

필사만 남겨지리라


시인은 단 두 행으로 생과 사, 유와 무를 표현하고 있다

짐작하듯이 시인은 없고 시만 남으리라는 전언이다

없는 시인을 기리며 남겨진 시집을 읽는 독자는 그저 헛헛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이미 자신의 부재가 상정되어 있다

유고 시집을 가지게 되는 시인은 어쩔수 없는 불완전한 완결을 이루어 놓는다



훗날의 시집



필자는 없고

필사만 남겨지리라


표지의 배면만 뒤집어보리라


순환하지 않는 피처럼

피에 감염된 병자처럼


먼저 다녀간 누군가의 배후를 궁금해하리라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나의 전생이여


마음이 거기 머물러


영원을

돌이켜보리라



또다른 시를 읽어본다



훗날의 장례식


주인공인

나만 없을 것이다

벅찬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찍 떠났으므로

엉킨 실타래 같은

검은 부재의 바람이 불고

태극기 휘날리고

잿빛 비둘기들만 구구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무거운 공기가

이제 진짜 안녕이라며

작별을 고할 것이다

새 없는 공중으로 검은 비가 내릴 것이다

한가한 사람들도 오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인 나만 홀로

슬플 것이다



두 시의 공통점이랄수도 있는 점이 있는데 눈치 챘는지 모르겠다. 훗날의

시집과 훗날의 장례식 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자신이 부재하고

맞을 훗날에 대한 생각이 많았나 보다. 우리도 그런 생각 살다보면 하지

않는가. 내가 없는 세상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 특히나 자신의

장례식장엔 누가 올까 같은 어찌보면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부질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게 사실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나만 없을 것이다


그러게 내 돌잔치에 내가 있었고 내 졸업식장에도 내가 있었는데

왜 내 장례식장이라고 주인공인 내가 없을까

절을 꿉벅꿉벅 두 번 씩이나 하고 일어나는 저 사람들은 누굴 위해 우는걸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끌어안고 병마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장례식장 풍경을

그려봤을 것이다. 나도 없는데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꼽아봤을 것이다.


시인을 알았던 이들에게나 뒤늦게 검은 시집을 집어든 나같은 독자들에게나

이제 시인은 추억만이 가능하다 그러라고 쓴듯한 시를 소개해본다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을

 

나는 끝내

의자 아래 묻힌 신전을 모를 것이고

의자 또한 나를 모를 것이고

의자 위의 사과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데

나는 오늘도 의자를 기다리는 사람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애써 소환하는 사람

의자를 관()처럼 떠받드는 사람

오래도록 동행해야 할 목숨과

매일매일 불화하는 사람

짙어지는 어둠과

푸르른 이끼를 끌어다 덮는 사람

그러니 나날이 봉분을 쌓는 어지럼증이여

의자를 경배하라

나는 오늘도

또다른 누군가의 추억으로 남을

뿌리 깊은 의자에 묻히노니,

아무도 나를 찾지 마라


1년전 611일 시인은 영면에 깊게 들었다 그리고 1년 후 611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와 그를 알던 모르던 뭇사람들에 의해 그의 이름이 다시

호명되고 있다 그런 이름 부름을 깊고 깊은 뿌리 내린 어딘가에서 듣고는 있을까

아니면 단호한 일갈처럼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가 있을지

살아 있는 우리야 알 수 없지만 시인의 사정에 아랑곳 없이 우리는 이렇게 시인을 찾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 말하지 않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발설하였으므로,

 

내가 끝내 영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2018611

 

배영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