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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sf소설 독자라면 모를리 없는 테드 창의 소설집이 최근 출간 되었다는 것도 모를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표제작 숨을 포함한 9편의 단편 소설 가운데 6번째 작품인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이 한 편을 콕 찝어 이야기 하고 싶은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영상을 통해 말하게 하는 유튜브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다음과 같은 키워드의 내용이 전달될 것이다.
#기록 #기억 #망각 #병렬적구성 #기억의전달방식 #유튜브
왜 유튜브 이야길 하냐면 먼저 소설의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 먼 미래는 아닐것으로 보이는 소설 속의 세계는 몸에 장착된 개인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가 사용되고 있다. 그 저장된 기록에서 사소한 장면까지 검색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내가 친구 아무개와 서점에 간 날 이라고 검색하면 과거 아무개와 서점 간 날의 녹화 영상이 모두 시야의 좌측 하단에 영상으로 뜬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개인의 생체적 기억, 그러니까 인간이 뇌로 하는 기억이라는게 무용한 세계라는 것이다. 기억이 기록되고 그 기록은 디지털 기억으로 저장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기억되는 세계여서 더 이상의 망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축복이고 망각은 저주일까? 이 지점에서 저자는 한 사례로 러시아의 솔로몬 셰레셰브스키(Solomon Shereshevskii)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허구의 인물인지 실재 인물인지 궁금해 찾아봤다.
솔로몬 셰레셰브스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192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기자로 일한 실재 인물로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연설문을 따로 메모하지 않고도 나중에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 주위 사람들을 놀래켰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특이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 셰레셰브스키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력이 낮았고 자신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망각하는 능력이 없어 과거의 현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던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남자를 연구한 러시아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아(Aleksandr Luria) 박사의 책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세계최초로 과잉기억증후군 진단을 받은 미국의 질 프라이스의 자서전적 기록물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라는 책으로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유튜브와 무슨 상관이냐 할 것이다
유튜브가 지금은 구독자 1000명 시청시간 4000시간이라는 수익창출 플랫폼을 기본으로 많은 사용자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고 업로드 하는 vlog 채널이 있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이라면 자연히 이런 연관성을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의 vlog채널들은 초기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모르긴해도 가까운 시기에 소설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일상이 업로드 가능할 날이 올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들은 더 이상 넌 어려서 모르겠지만 이라거나 또는 유소년기나 청소년기의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망각이라는 서랍 속에 감출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황을 작가는 아주 그럴듯하게 상상하는데 그 내용들이 과연 축복일지 저주일지.
이 작품은 병렬적 구성으로 기억의 전달 방식과 그 방식의 한계점 등을 대비해 이야기 하고 있다. 테드 창의 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역시 병렬 구성이었는데 개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끊기고 또다른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되다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져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작가의 전략적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의 역량 부족인건지 이야기의 전달 방법에 있어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문자가 없던 시대의 구전 문화에서 기록 문화로 바뀌는 장면을 소설적으로 압축해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소설 속 현재의 세계를 대비하면서 기록이라는 기억의 전달과 디지털 기억으로 탈바꿈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소설화한 솜씨는 탁월하다고 본다. 괜히 유명상을 휩쓴 작가가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했다.
정리 겸 이야기해 보자면
많은 sf소설은 정말이지 현재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이 그랬다. 특히나 유튜브라고하는 플랫폼이 전지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이렇게 나 역시 내 생각이나 기억들을 유튜브에 담아놓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소설 속의 기억력을 잃어버린 인간사회에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리는 어떤 지나간 기억을 그리워하고 아름다웠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기억이 망각과 함께 어느 정도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고호가 그린 해바라기나 별빛 가득한 밤의 그림과 그 정물과 밤풍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언제든 리플레이해보는 것 가운데 아름답다고 할만한 건 어느쪽일까? 소설 속 현실에 우리가 있게 된다면 아름다웠던 추억이라는 말은 더는 쓰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의미를 아는 인간도 없을 것이다. 더는 기억의 필요가 없어진 미래, 망각의 염려가 사라진 미래. 궁금키도 하지만 거기에 가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이래저래 이야기해볼 거리가 많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