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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소설
몇 번의 실패를 하다가 여러 번 포기했다는 소설
이 책을 사놓은 건 까마득한데 읽은 건 최근이다. 그러니까 10여 년 그 이상 책꽂이에 꽂혀만 있었는데 한번씩 꺼내 초반 몇 페이지 읽다 포기했었다.
아마 제목만 보거나 골때리는 첫문장에 압도되어 나처럼 미리 포기하거나 초반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감히 단언하는데 제목에 쫄 필요도 없고 속는셈 치고 초반만 넘기면 여느 소설처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따라 읽다보면 소설이 끝나가는게 아쉽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디가서 이 소설 읽어봤다고 하면 폼도 좀 난다.
박상륭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서라벌 예대를 졸업했다. 1963년「사상계」신인상에 '아겔다마'로 입상하였다. 1969년 캐나다 이주 후에는 병원 시신 안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서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 출국 전날 광화문 우체국 화단의 흙을 씹어 먹으며 자신이 버린 조국을 한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1998년에는 소설집 《평심》을 발표하여 이듬해 표제작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서고금의 종교와 신화,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유체계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스케일, 독보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장시켜왔다. 주요 작품으로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열명길>, <아겔다마>, <평심>, <산해기> 등이 있다.
2017년 7월 1일 캐나다에서 향년 7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 소설은
바닷가에서 창녀로 일하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노승의 제자가 된 주인공이 '유리'라는 공간에서 40일간 구도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생명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놓고 40일 동안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으로, 1995년 양윤호 감독에 의해 박신양 주연의 《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격인 4부작 《칠조어론》은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참고로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이 소설에 대해
『무정』 이후에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어봤거나 읽다 포기한 독자라도 첫문장 만큼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
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
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
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
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
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
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
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이게 첫 문장이자 하나의 문장이다. 뭔가 좀 감이 오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율리시즈'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앞부분만 보다가 덮어버리는
많은 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언젠간 완독하겠지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쳐다만 보는 작품. 단어 하나하나도 쉽지 않고 보기로 따온 첫 문장처럼 한 문장의 길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아서 번번히 실패를 안겨주는 박상륭 선생의 걸작.
많이 아는 만큼 많이 보이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동사양의 철학과 종교적 지식이 작품안에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사자의 서라든지 신약과 구약의 내용 그리고 불교적 내용까지. 이런 점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읽었다.
‘있어 보이는’ 제목에 일단 구입했다는 어느 독자의 말대로, 제목이 주는 무게만큼 죽음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냐 하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제목에 딴지를 걸자는 건 아니다만.
23~26일의 내용, 즉 매장 전 망자에게 해탈하는 법을 읊어주는 '티벳 사자의 서' 내용 일부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작품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유리'라는 한 인간으로 대표되는 본래 인간의 번뇌에 관하여 쯤이려나.
관념소설이라고 해서 어렵다고만 하기에는 유리인 '나'를 비롯 등장인물들이 인간적으로 너무 절절해서 이렇게 끝나버릴수밖에 없다는 게 필멸을 받아들여야 하는 심정과 같아 먹먹하기만 했다.
오직 읽은 이만이 고 김현 선생이 왜 벅찬 감정 가득한 감상을 실었는지 알 것이다. 그 감상에는 스포라기보단 기본 줄거리가 누설되어 해설부터 보는 편인 나는 멋모르고 봤다가 살짝 김이 피식.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끝을 알고 보니 애잔해서 책장 넘어가는게 다 안타까웠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그보다 특유의 '썰'의 음미도 이 소설의 매력이므로 따박따박 읽는것이 재미일 것이다.
후려친 한 줄 오독 요약.
마른늪이 있는 유리라는 바르도에서 40일간 머물며 고기 낚기, 그 고기의 이름은 무의미여라.
유리는 '바르도'이며 유리는 물고기다.
'티벳 사자의 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죽은 다음 그 영혼이 잠시 머무는 중간 세계를 바르도라 하고 그곳에서 49일간 머문다 그 기간 동안 영혼의 선택에 의해 해탈을 할 수도 환생에 접어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환생으로 빠져든다. 유리에서 '마른늪에서 고기 낚기' 즉 무의미 낚기를 터득한다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그러므로 고기는 무의미하다.
197p
초,중,종반으로 나누어 읽을수 있는 '제 17일' 에서, 초반은 '창세기' 3장 1절에서 7절까지의 기사에 대한 화자의 분석과 비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반의 원죄 개념이나 삼위일체 등에 관한것은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글자 구경하는 심정으로 따라 읽었다. 묵시록 등에 관한 종반의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그럴듯해보이는 이론들의 조합에 혀를 내두를만 했다.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그럼에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희미해지고 인물의 감정선만이 오롯하게 가슴을 적신다.
공즉시색이라고 유리란 사내가 내뱉듯 죽음이 곧 사랑이요 사랑이 곧 죽음이란 말도 통하는 것이니 결국 죽음으로 사랑을 하여내었고 사랑으로 죽음을 이루어내었네. 아 진작에 읽을것을, 하는 후회 반 벅참 반.
곁다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나는 유리羑里 라는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첫 문장에 나오는 지명으로써의 유리는
중국 은상의 군주 주왕이 주 문왕을 잡아 가둔 곳으로 지금의 하남성 탕음현의 지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이 유리이고 그 다음으로 우리가 흔히 따로 떨어지다의 뜻으로 쓰는 유리되다의 그 유리란 말이 있다. 박신양 주연의 영화 제목도 유리였다. 좀 억지스럽게 하나 더 갖다 붙여보자면 투명해서 없는 듯 하다가도 쉽게 와장창 하고 깨져버리는 성질의 유리도 생각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소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고, 작가는 어떤 의도와 의미로 유리라는 말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절묘한 작명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두서 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뭔 소리를 하냐고 한다면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잔말 말고 일단 읽어보시라!
쫄지 말고 읽어보면 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재밌는 작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