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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2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평점 :
김혜순 시인의 시집이 2016년 출간된 두 시집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이후 대략 3년 만에 출간 되었다. 거두절미 하고 이 시집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려면 우선 ‘새 하기’라는 말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의 서시라고 할 수 있는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시의 첫 연을 살펴보자
새의 시집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 새하는 순서 라고 했다. 물론 ‘새 하기’라는 말은 없다.
시집에 붙는 해설은 잘 안보는 편인데 이 시집에 첨부되어 있는 해설은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시집을 읽어나가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해설 부분을 읽어보자
이 시집은 새하는 시집이다. 새-하다 가 어떤 움직임을 말하는 것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라고 하는 명사에 하다 라는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는 술어가 붙어 있는 것은 어색하다. (...) ‘새’의 위치가 주어도 목적어도 될 수 없거나 혹은 둘 다 될 수 있는 이 모호함이 이 문장을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 주체와 대상 혹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지워버리는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수행문’이야말로 이 시집을 관통하는 동력 장치이다.
다시 한번 첫 시를 조금 더 읽어 나가보자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공기는 상처로 가득하고
나를 덮은 상처 속에서
광대뼈는 뾰족하지만
당신이 세게 잡으면 뼈가 똑 부러지는
그런 작은 새가 태어나는 순서
새 하기 라고 하기 전에 무엇 무엇 하기라는 걸 떠올려야 한다. 운동 하기 책 읽기 밥 먹기처럼 무엇무엇 하기 앞에 올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 새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새 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 새가 나타내는 모든 것을 떠올려보면 조금 쉬울지 모르겠다
이 시집의 제목은 날개 환상통이다. 날개란 무엇인가. 새가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뛰어들 때의 그 날개짓을 떠올려 보자. 그 다음 환상통이란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환상통은 있지도 않은데 있는 것에서 오는 통증이다. 그렇다면 날개 환상통이란 날개는 없지만 없는 날개가 느끼는 통증이다.
다시 새 하다를 떠올려 보자. 여기에서의 새는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날개 없는 새가 허공으로 뛰어든다
이 두툼한 시집 곳곳에 새 라는 낱말이 있는데 새 하다 라는 게 뭔지 어슴프레하게라도 느껴진다면 시 읽기는 한결 수월할 것이다. 이 시집의 첫 시 새의 시집을 유의해서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 시 역시 주의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별부터 먼저 시작했다 라는 시의 2연을 읽어보자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왠만한 소설책 분량의 시집을 이런 짧은 영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 모른다. 아주 극히 일부분 코끼리의 꼬리 정도를 더듬거려 보았을지 모른다.
다른 영상에서 말한적 있듯이 시를 이해하려 든다면 오리무중에 빠질수도 있다. 물론 모든 시가 그런건 아닐 것이다. 이 두툼한 시집 한 권을 나역시 얼마나 제대로 느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중요한건 오독이 되더라도 한 편 한 편 천천히 읽어나가보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시집 덕분에 새 하다 라는 어색한 문장이 품을수 있는 범위와 그 느낌을 처음 대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이 시집을 읽는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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