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 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이인규 / 민음사 / 351쪽
(2018. 1. 13.) 


  “나도 정말 뭔가를 나눠주고 싶어요."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나에겐 허용되어 있지 않은 일이에요. 요즘은 모든 것이 값을 받고 팔려야 하게끔 되어 있거든요. 당신이 방금 말한 그 모든 것들 역시, 라그비나 시플리가 사람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남기고 파는 것일 뿐이지요. 당신은 심장의 박동 한 번만큼도 진정한 공감을 나누어주지 않지요. 게다가,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버린 게, 그러곤 이 끔찍한 산업의 현실을 대신 안겨준 게 과연 누구죠? 그런 짓을 한 게 과연 누구냐고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그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어서 와서 다 약탈해 갑쇼, 하고 그들에게 부탁이라도할까?"
  “테버설이 왜 이렇게 추하고 끔찍한 거죠? 왜 광부들의 삶이 그토록 절망적이냐고요?"​
  “그들 자신이 그렇게 테버설을 지은 거야. 그리고 그건 바로 그들이 누리며 표현한 자유의 일부인 셈이야. 그들은 자신들의 그 꼴좋은 테버설을 스스로 지은 것이고, 자신들의그 꼴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내가 그들을 위해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거잖아.
(P.46)


아냐. 그들은 날 미워하지 않아!"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잘못 생각하지 말라고.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맞지 않아. 그들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또 결코 이해할 수도 없는 동물일 뿐이야. 당신의 착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마. 하층 노동 대중은 언제나 똑같았고, 또 앞으로도 언제나 똑같을 거야. 그 옛날 네로의 노예들, 그러니까 네로의 광산이나 논밭에서 일했던 노예들은 말이야, 지금 우리 탄광 광부들이나 포드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고. 그들은 모두 하층 노동 대중으로, 변하지 않는 존재들인 거야. 어떤 한 개인이 좀 특출 나서 그 하층 대중 계급에서 벗어나 는 경우가 있긴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나 둘 벗어나 봤자 하층 대중 전체는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하층 대중은 바뀔 수가 없는 거야. 이것은 바로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야. '빵과 오락(panem et circenses)'! 바로 그것만 있으면 되는 거라고. 그런데 오늘날에는 교육이 오락을 잘못 대체해 버린 거야. 오늘날의 잘못된 문제는 바로 우리가 '빵과 오락'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오락 부분을 온통 망쳐놓고는 그 대신 약간의 교육으로 하층 대중의 마음에 해독을 끼쳐놓았다는 사실에 있어."
  하층민들에 대한 클리퍼드의 감정이 이렇게 정말로 자극을 받아 터져 나왔을 때, 코니는 좀 무서워졌다. 그의 말에는 뭔가 거역하기 어려운 강력한 진실이 담겨 있긴 했 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진실이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채찍을 집어 들 필요가 있어." 그는 다시 말했다. “칼 대신 말이야. 하층 대중은 유사 이래 다스림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다스림을 받아야만 할 거야. 그들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자 터무니없는 소리야.“​
​(P.48)


  "중요한 것은 누가 우리의 부모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우리를 어느 자리에 갖다 놓느냐 하는 것이야. 어떤 애든지 지배 계급 사이에다 갖다 놓아봐. 그럼 그 아이는 자라서 그 나름의 능력껏 지배계급이 될 거 라고. 왕이나 공작의 자식들을 하층 대중 사이에다 던져 놓아봐. 그러면 그 아이들은 하찮은 평민이라는 대량 생산물이 되고 말 테니. 그건 환경의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인 거야."
  “그렇다면 하층민은 본래 타고난 종족이 아니고, 귀족이란 것도 타고난 혈통이 아니겠군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 여보! 그런 생각은 다 낭만적인 환상일 뿐이야. 귀족 계급이라는 것은 하나의 역할로서, 운명의 한 부분을 맡은 존재인 거야. 그리고 하층 대중이란 것도 운명의 또 다른 부분을 맡아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야. 개개인은 거의 중요하지가 않아. 문제는 우리가 어느 역할을 하도록 길러지고 길들여지는가 하는 점이야. 귀족 계급을 만드는 것은 개인이 아냐. 그건 바로 귀족 계급 전체의 역할과 기능인 거야. 그리고 평민을 평민의 존재로 만드는 것 역시 하층 대중 전체의 역할과 기능인 것이지."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공통된 인간성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겠군요!"
  “그런 셈이지. 우리 모두 자신의 배를 채워야 할 필요가 있긴 하지. 하지만 표현이나 실천의 역할과 기능의 문제에 있어서는, 지배 계급과 섬기는 계급 사이에 심연이, 그것도 절대적인 심연이 존재한다고 난 믿어. 이 두 계급의 역할과 기능은 서로 서로 상반된 것이거든. 그리고 바로 그 기능이 개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지."
(P.50)

​​​
​  인간의 존재는 외적 상황이라는 기계적 힘에 의해 크게 지배되고 있다. 코니도 이 기계적 힘의 손아귀 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그 손아귀에서 자신을 오 분만에 벗어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P.173)


  “하지만 넌 얼마 안 있어 곧 그 사람에게 싫증이 나고 말 거야." 그녀는 말했다. “그러곤 그 사람과 관계한 것을 부끄럽게 여길 거야. 하층 노동자 계급과는 조화롭게 섞일 수 없는 법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언니는 열렬한 사회주의자 아냐! 언니는 언제나 노동자 계급 편을 드는 사람이잖아?"
  “정치적인 위기에 있어서는 내가 그들의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편에서 보고서 나는 우리의 삶을 그들의 것과 함께 섞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를 또 한 알게 되었어. 이건 속물근성에서 나온 생각이 아냐. 바로 살아가는 리듬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야.”
(P.181)


  시인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 얼마나 거짓말쟁이들 이었던가!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부드러운 정감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우리가 진정 최고로 원하는 것은 바로 꿰뚫듯 찔러오고, 모든 걸 불살라 없애버리며, 좀 끔찍하기까지 한 이 관능인데도 말이다. 수치심이나 죄의식 또는 마지막 한 줌의 불안감도 없이 그 관능을 감히 실행할 수 있는, 그런 남자를 찾아내다니! 만약 그가 나중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어 여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면, 그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참으로 안타깝게도, 섬세하고 관능적인 남자는 정말 드물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너무나 겉치레뿐이 고 왠지 모르게 수치스러운 존재였다 바로 클리퍼드처럼, 그리고 심지어 마이클리스처럼 말이다! 두 사람 모두, 관능적인 면에서 어던지 모르게 겉치레뿐이고 굴욕감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정신의 지고한 즐거움이라고! 그게 여자한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사실, 그걸 뇌까리는 남자 본인에게조차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 자신마저도 정신에 있어서, 그저 엉망진창에다 겉치레 뿐인 존재가 되고 마는데, 정신을 순화하고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조차도 바로 순전한 관능은 필요한 것이다. 엉망 진창이 아니라 불꽃같은 순전한 관능이 말이다. 아, 하나님, 진정한 한 사람의 남자란 그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요, 남자들은 모두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코를 킁킁거리고는 교미나 해대는 개들이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진정한 남자를 찾은 것이다.​
​(P.197)


  "얘야, 내 진심을 말해도 좋다면, 그건 이렇구나. 세상은 계속되는 법이야. 라그비도 그대로 계속 존재할 테지. 세상이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것에 순응해서 살아야 하는 법이야. 사적으로야, 물론 이것도 내 사적인 의견이지만,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다. 감정이란 변하는 법이니까 말이야. 올해엔 한 남자를 좋아하다가 내년엔 다른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라그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거란다.
라그비가 너를 버리지 않는 한 라그비를 버리지 말거라. 그런 한에서 네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관계를 끊고 나와버리는 것으로 네가 얻는 것은 거의 없을 게야. 물론 네가 정 원한다면, 관계를 끊고 나올 수도 있겠지. 너에겐 독립된 수입이 있고, 그것만은 절대 너를 저버리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네가 얻는 것은 별로 없을 게야. 그러니 라그비에 꼬마 준남작을 안겨주도록 하려무나. 그렇게 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고 나서 맬컴 경은 뒤로 기대고 앉아 다시 미소를 지었다. 코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에게 마침내 진짜 남자다운 남자가 생겼기를 바란다.” 그가 잠시 후 그녀에게 말했다. 관능의 촉각을 세우고서 던지는 말이었다.
  “예, 그런 남자가 생겼어요. 그게 문제예요. 그런 사람은 주위에 많지가 않거든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 정말로 그렇지!" 그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런 남자는 정말 별로 없지! 글쎄, 얘야, 너를 보니 그는 행운아인 것 같구나. 분명코 그는 너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겠지?”
   “그럼요! 그 사람이 저를 속박하려 들거나 하는 것은 정말 전혀 없어요.”​
  “그래, 그래, 진정한 사내라면 그릴 거야."
(P.254)


  남자란 모름지기 최선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며, 그런 다음 자신을 초월한 어떤 다른 존재의 능력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법이오. 미래에 대한 어떤 확신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존재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진정으로 믿고, 나아가 그것을 초월한 다른 존재의 능력을 진정으로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오. 그래서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그 조그만 불꽃을 믿고 있소. 지금 나에게 있어,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오 친구가, 즉 진정한 내면의 친구가 하나도 없소. 오직 당신뿐이오. 그리고 지금 그 조그만 불꽃은 내가 삶에서 마음을 쏟는 유일한 대상이오. 물론 아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요. 그 불꽃은 나의 오순절 불꽃. 나와 당신 사이의 갈라진 불꽃이오. 이제까지의 낡은 오순절 불꽃은 정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오. 나와 하나님 사이가 불꽃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건방진 생각이오. 하지만 나와 당신 사이에 갈라진 자그만 불꽃이 존재한다고 할 때는, 그건 정말 진짜요!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굳게 지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켜가고자 하는 것이라오. 클리퍼드나 버사 같은 인간 들, 탄광 회사나 정부(政府), 또는 돈에 사로잡힌 대중 등,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말이오.
(P.318)


  로렌스가 말년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이렇게 두 차례나 다시 새로 써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가 작가로서 이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따라서 온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창작에 임했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 소설에는 현대 문명과 인간에 대한 로렌스의 생각이 그의 다른 어느 소설에서보다도 강렬하고 분명한 결정체로 집약되어 있으며, 독자도 소설을 읽어가면서 그런 점을 쉽게 느끼게 된다. 즉, 이 작품은 로렌스의 소설들 가운데 주제 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인물과 줄거리도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것은 바로 위와 같이 반복된 재창작의 손질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P.324)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이렇게 남다른 과정을 거쳐 출판된 상황은 작가와 작품을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는 하였지만, 모순되게도 작가로서의 로렌스와 작품 자체에 대한 정당한 이해의 측면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렌스가 죽음과 싸우면서 심혈을 기울여 현대 문명과 인간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 진단과 처방으로 제시한 작품이, 출판 과정에서의 논쟁으로 인해 작품의 노골적인 성 묘사 측면만이 대중적으 로 부각되고 선전됨으로써 작품 자체의 전체적 성격이 왜 곡되어 알려지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음란한 호색 문학 또는 에로티시즘의 고전쯤으로 알고 있거나 로렌스를 성 문학의 대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꼼꼼히 제대로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이 작품은 음란한 호색 문학은 물론이고 에로티시즘 문학 작품과도 아주 거리가 멀다. 물론 이 작품에는 솔직하고 대담한 성행위 장면과 성적 묘사가 여러 차례 나오면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추잡한 성적 흥분과 충동을 조장하거나 성애 그 자체의 아름다운 미화나 탐닉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P.326)


​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로렌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상당히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것은 기계적 관념성과 물질적 탐욕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산업 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기부이며 이에 대응할 구원적 가치로서 살아 있는 인간적 관계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다. 작품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중부 탄광 산업 지대인 테버설이라는 마을이지만 로렌스는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산업 사회의 비인간적 본질을 집약하고 있는 전형(典型)으로서의 성격을 그곳에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서 움직이는 세 주인공, 즉 클리퍼드와 코니 그리고 멜러즈 역시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로 창조되고 있는 동시에 문명과 시대의 본질적 문제를 대변하거나 대응하고 있는 전형들로 형상화되거나 의도되고 있다.
(P.327)


  이 작품이『무지개』나『사랑하는 여인들』과 같은 로렌스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상적 복합성이나 풍부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의 집중성과 명료성 그리고 그것의 응축된 형상화의 측면에서 앞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남달리 '의도적' 이라는 리비스의 말은 분명 맞다. 그러나 그 의도가 리비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상상적 감수성의 감정에 호소하지 못할 만큼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한 무엇보다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일 것이다. 왜냐하면『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첫인상 또는 선입견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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