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바보들
(틀린데 옳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의 심리학)
크리스 무니 / 이지연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 394쪽
(2017. 1. 9.)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심리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 이라는 기본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과학적 주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옳지 않을까?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최소한 지 금 이용 가능한 증거들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론 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위협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가 인간 본성의 오래된 부분이라고 시사한다. 그 말은 진보주의자들이 그저 소동을 일으키고 난리법석 피우기를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애기다.
그들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인용한 장 자크 루소에 관한 글처럼 말이다. “그 무엇도 그가 세상에 불을 지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진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가능할까? 보수와 진보는 기본적인 인간의 전통이다. 진보주의자가 한계를 초월해 지나친 개방성이라는 오류를 범하면 보수주의자는 우리를 다시 끌어다놓고 지나친 폐쇄성이라는 오류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보수주의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P.9)​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을 보수주의자들은 왜 부정하는지 그 밑바닥에 깔린 이유를 조사하면서, 나는 핵심 결론을 가리키고 있는 분명한 증거들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 증거들은 정치학, 사회심리학, 진화심리학, 인지신경과학, 유전학에서 나은 것들이다. 심리와 성격이라는 차원에서 보수주 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이것은 두 집단이 논쟁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이것은 지능에 관한 주장이 아니다. 나는 보수주의자가 일정 방식으로 진보주의자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집단은 그냥 다르다. 진보주의자들 역시 심리에 뿌리를 둔 자신들만의 약점이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P.24)


   그럼에도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차이점 중에는 그들이 왜 정치적 토론을 할 때 증거 앞에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힌트가 있다. 예를 들어, 두 집단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성격 척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부분에 대한 증거는 상당히 확고하다. 전체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은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호기심이 많고 표현에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폐쇄적이고 고정되어 있고 자신의 관점에 대해 확고한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개방성이라는 것은 성격의 핵심 측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의 차이를 조사하려면 정치적 뇌 분야를 검토해야 한다. 이 분야는 이제 막 시작된 학문이지만 과학자들은 진보적인 뇌와 보수적인 뇌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차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유전자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유전자라는 것은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팩트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정치에만 의존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곳에 있는 심리적·인지적 요소들까지추적해 보아야 한다.
(P.25)
​​

​  나는 진보주의자 친구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수도 없이 듣는다. “보수주의자들이 x도 믿지 못 할 만큼 멍청하다니 믿을 수 없어!” 우리는 거짓말과 잘못된 정보에 격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반박하고 싶어 한다. 어째서 우리가 옳고
보수주의자들이 들렸는 지를 논증하고, 논증하고, 또 논증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마치 우리처럼) 더 현명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더 가르칠 수만 있다 면, 정확한 정보라는 치료제를 먹일 수만 있다면, 보수 진영의 잘못된 정보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해 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P.28)


  우리는 보수주의의 비非이성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에서 비이성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아야 한다. 유행 지난 계몽주의 이성의 힘 에 관해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는 망상들도 모조리 걷어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 이성이 어떤 식으로
작동한다고 보는가에 관한 비극적 스토리로 1부의 문을 연다. 이 참담한 진보주의 이야기는 혁명기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이 시기는 정치적 차이가 처음으로 좌우 스펙트럼으로 정의된 시기다. 우리는 이성의 시대 일부 선인들이 믿있던 것처럼 추론히지 않을 뿐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 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동기회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계몽주의 이상을 생각하면 슬픈 소식이겠지만, 인간이성이 진실을 얻는데 그다지 좋은 도구가 아님을, 어찌면 인간 이성은 에당초 그런 목적으로 (진화에 의해) 설계되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P.30)


  진보주의자라면 콩도르세를 찬양할 수밖에 없다. 과학에 기반을 둔 계몽주의에 관한 진보주의적 이상향을 그렇게 또박또박 써내려갈 수 있었던 콩도르세의 열정과 명석함은, 축구장 몇 개 분량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동시에 이성의 함성을 지르는 것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과학적 진보주의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점에서 틀렸다. 이성적 주장을 널리 전파하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수용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또한 거짓 주장을 반박하면 인간이 그 주장을 버릴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었다. 왜일까?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 의견이 다르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그냥 돌아서서 가버린다. 팩트나 숫자를 보여주면 그는 당신자료의 출처를 의심한다. 논리에 호소하면 그는 딩신의 논점을 보지 못한다.
(P.46)


  동기화된 추론 이론은 신경과학의 핵심 통찰에서 나왔다. 사고와 추론 위에는 감정이 얼룩진다(연구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 자극과 정보에 대한 우리의 만용은 많은 부분 깊이 생각한 결과라거나 냉철한 판단이 아니며 오히려 감정적이고 자동적이다. 우리의 반응은 의식적인 생각보다 먼지(의식적 생각이 부재하는 상태로) 나온다.
  이제 신경과학자들은 뇌 활동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뇌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사항의 작은 일부만을 자각할 뿐이다. 고작 2%밖에 모른다는 추정도 있다.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느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생각의 단계에 이르지도 않는다. 생각을 하는 경우에도 자주 감정이 추론을 좌우한다.
  우리의 사전 감정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온갖 종류의 증거들을 잘못 읽게 만든다. 또 한 이미 믿고 있는 것에 유리하도록 증거들을 선택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반응은 심리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과학적•기술적 증거에 대해서조차 자신의 기존 신념을 정당화하는 쪽으로 읽고 반응한다.
(P.50)


  동기화된 추론에는 단계가 있다. 심리학 실험에서 급격한 감정적 충동을 느껴 자신의 신념을 방어하는 것과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반대되는 정보를 접하는데도 반복적으로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들은 불편한 팩트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어느 지점이 되면 졌다고 시인하고 받아 들인다 마지막으로 각 개인은 자신의 신념을 방어하고 싶은 필요성에서 차이가 있다. 확고부동하고, 바뀌지 않으며, 바뀔 수도 없는 확신을 가지려는 내적 욕망에 차이가 있다. 원가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확신하고, 그것만큼은 결코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한 사람들은 내 집단은 옳고 남의 집단은 들렸음을 확신해야 하는 필요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속이나 통일성에 대한 필요, 또는 세상을 볼 때 집단의 내부와 외부로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할 필요성이 다르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이 부분에서 큰 차이가 있다.
(P.59)


  우리가 어떤 것에 관해 강한 감정적 확신이 있으면 그 확신은 뇌의 물리적 실체처럼 간주되어야 한다. 그 확신은 개별 뇌 세포(또는 뉴런)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포들 사이의 복잡한 연결 속에 있다. 이전에 수없이 발생했던 신경 활성화의 패턴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다. 특정 연결 네트워크를 많이 활성화할수록 그 연결 네트워크는 더 강력해진다. 기타 치는 능력이나 축구공으로 저글링을 하는 능력처럼 그 연결 네트워크는 점점 더 우리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논리적 • 이성적 논거를 가지고 그 신념을 공격하여 뇌에 서 그 신념이 사라지거나 멈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뇌를 바꾸려 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도,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P.60)


  열성 지지자들이 편향된 정치적 추론을 하고 있을 때는 뇌에서 논리적 사고와 관련된 부분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감정처리 및 심리적 방어와 관련된 부분을 사용했다. 이 뇌 부분들을 다 열거하면 독자들이 복측 같은 단어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기에 핵심 결론만 강조하겠다.
  웨스턴은 실험 대싱자들이 자신의 당파적 충동을 활성화시키는 논리적 모순에 마주쳤을 때 감정 지향의 뇌 회로로 보이는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을 포착했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심사숙고는 포착하지 못했다. 대상자들은 수학문제를 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은 주먹으로 가습을 치는 것과 똑같은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P.66)


  동기화된 추론의 가장 간교한 측면이 아직 남았다. 이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하는 보수주의와 관련된다. 나는 이것을 똑똑한 바보 효과라고 부른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유식하고 잘 아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편향되고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에 관해 스토니브룩대학교의 밀턴라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정책에 대해, 예를 들어 낙태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유식하지 않다면 그 사람들은 이유 없이 거부합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 걸음 더 나가서 반론을 내놓지요.” 이 반론에는 감정이 실려 있고 기억과 뇌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부다. 그러면 그 반론은 더 정교하게 스스로를 설득하게 되고 심지어 처음에 확신했던 것이 옳다고 더 강하게 믿게 만든다. 이 똑똑한 바보 효과 때문에, 특히 이 효과가 정치적 우파에서 계속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과학과 팩트에 관한 논쟁을 다르게 생 각하게 됐고 결국 이 책을 쓰게 되었다.
(P.74)


  그러면 똑똑한 바보 효과는 어떻게 설명될까? 우선 정보가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보수주의자일수록 보수적 뉴스나 의견들을 더 많이 소비할 것이다. 폭스뉴스를 보는 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이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자기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가능성이 크다. 그 관점을 지지하는 논거나 이유에도 더 익숙하니 누가 반박을 하면 그 논거들을 기억해서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그런 논거를 자기 정체성과 뇌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특정 팩트와 정치적 가치관 사이에 강한 감정적 연결망을 만들었다. 이것은 앤드루 슐래플리 같은 유식한 보수주의자들이 유식하지 않거나 정보가 별로 없는 보수주의자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정보가 별로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설득하기 더 쉽고 새로운 정보나 상충하는 정보에도 더 잘 반응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P.77)


  진보주의란 모든 의문을 자기 자신의 관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하는 것을 중시 여기는 이데올로기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한, 진보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르면 이들은 가끔 지나치게 뒤로 물러선 나머지 빤한 도덕적 판단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한 때가 있다. '우리가 뭔데 이 독재자, 저 독재자를 심판하는가?, '범죄자들은 나쁜 환경의 산물일 뿐이다.'와 같은 식이다. 어지 되었건 '진보주의자는 논쟁에서 자기편도 못 들 사람이라는 농담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원칙에 대한 확신에 찬 주장과 기꺼이 자기주장을 굽힐 수 있는 태도는 각자 그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흑백논리의 상황이나 같은 회색에서 명암차만 있는 상황,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보수주의자들은 흑백논리의 세계관이라는 우를 범하고 진보주의자들은 회색 명암차의 세계관이라는 우를 범하는 것 같다.
(P.93)


  진보주의는 계몽주의라는 관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계몽주의란 우리가 이성을 사용할 수 있고 경험을 사용할 수 있고 팩트들을 분류할 수 있고 과학적 방법(역사는 핵물리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것을 사용해서 탄탄한 기반을 가진 진실에 대한 일치된 시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우익이 생각하는 진실과는 다르다. 우익의 진실은 훨씬 신화적이고 내집단 확인에 기반하고 직관과 전통에 의존한다. 하지만 학계에서 전문가들의 정전에서 그런 종류의 역사는 경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역사로 대체되었다.
(P.279)


  진보주의자들은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진실을 얻는데 뛰어 나다. 이들의 심리적 형제인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상당 부분 그들이 그에 맞는 기질과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매모호함이나 불확실성을 잘 참아내고 깊은 사고를 하는 것을 좋아 한다. 따라서 휴전을 위한 조건의 하나는 보수주의자들이 지식이 필요할 때는 실제로 그게 뭔지를 결정하는데 능숙한 사람(개인이 아니라 과학계 같은 집단이면 더 좋다)에게 가야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옳다고 확신한다고 해서 혼자서 만들어내고 전문가들의 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결단력 있고, 가던 길을 고수하고, 흔들리지 않는 점에 있어서는 보수주의자들이 더 뛰어나다. 따라서 휴전 조건의 일부는 선택안이 결정될 수 있도록 다양한 리더십 위치에 보수주의자들 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진보주의자들이 인정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현실에 기초하는 방식으로 리드한다는 조건이 선행된다면 말이다. 나는 진지하게 우리가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인정하고 각자가 강한 영역에 대한 경의를 보여준다면 정치가 훨씬 더 건강해지리라 본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이 내 주위에서 뭐가 진실인지를 알려주면 좋겠고, 우리 팀안에 보 수주의자가 있어서 내가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가던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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