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유영미 / 갈라파고스 /
201쪽
(2017. 11. 14.)
이 책은 전체적으로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할수 있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랑 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 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수
있는 전 세계적 식량 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제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지도자를 만나고, 그것을 참회록의 느낌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현재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항을 제시하고
있다.
(P.16)
1990년에는8억 2,200만 명, 그 후 1999년에는 8억 2,800만 명
(2005년에는8억 5,0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어. 이런 수치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 첫 째는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특히 남반구에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극심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인구증가율과 비교하면 기아
인구의 비율이 약간 줄어들었음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지 .
1990년에는 세계 인구의 20퍼센트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렸는데,
1999년에는 19퍼센트로 비율상으로는 줄어 들었단다.
(P.32)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단다.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 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고 믿는 것 이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부족과 과잉 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자연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디는 거야.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 란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논리지. 지신들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을 거리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벵골이나 소말리아, 수단의 엄미들이 그 아이들의 죽음과의 싸움이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니?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이나 정치가,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엉터리 신화, 즉 기근이
지구의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작용 을 한다고 믿고 있단다.
(P.38)
FAO는 원인에 따라 '경제적 기아' 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고 있어. 대략 설명하자면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를 말한단다. 이를
테면 가뭄이나 허리케인이 덮쳐 마을과 경작지, 도로, 수원지가 파괴되거나, 혹은 전쟁으로 집들이 불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상점들이
파괴되고, 다리가 폭파되기도 하지. 그러면 갑작스럽게 식량이 바닥나고 수백만의 인구가 다음 날이면 금세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거야.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이 재빨리 미치지 않으면 많은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지.
그리고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를 말해. 그 나라의 경제발전이 더딘데 따른 생산력 저조, 급수설비나 도로 같은 인프라의 미정비, 혹은 주민 다수의 극도의 빈곤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단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비타민 결핍이나 단백질 부족에 따른 소아 영양 실조 등의 다양한 질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게되지.
그러니까 구조적 기아 는 간단히 말해서 외부적인 재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 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란다.
(P.48)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약 20년 전부터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회를
경험하고 있다. 1991년 8월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3분의 1정도의 인류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렸던 부패한 국가자본주의체제
아래 있었다. 냉전체제가 국제 사회를 지배했다. 다국적성과 독점성에 대한 충동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 충동은
양극구도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내재하는 논리에 따라 자본은 단기간에 지구를 정복했다.
또 한 가지 패러다임의 변회는 바로 글로벌화한 자본주의 내부에서 한 가지 자본, 즉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리하여 금융자본의 이윤극대화법칙은 오늘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P.159)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이런 패러다임 변화-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과 숨막히는 기술혁신-는
금융자본의 거의 완전한 글로벌화로 이어졌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99년에 유통된 금융지본은 이 해에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
재화와서비스의 가치보다 63배나더 많았다.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이제 사람들은 그 기동성을 꾸준히 강화하여 투자의
결정과정을 단축하는 한 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수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증시는 매일
24시간 돌아간다. 증시를 돌아가게 하는 엔진은 이윤극대화, 손실에 대한 공포, 파산 리스크에 따르는 신경전, 그리고 정신착란과 황홀경을
되풀이하는 무제한의 이윤추구 등이다.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P.160)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 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이제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세계시장밖에는...... 신자유주의 원리는 자본의 흐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그 유동성이 완전하게 용인되면 이윤이 가장 많은 쪽으로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세계시장에 맡기면 진정으로 공평한사회가 실현된디는
것이다.
이런 시장원리주의의 주장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주장의 자세히 검토되지도 않은 채 세계에 침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 합리성' 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P.162)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 한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서로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수는 없을 것이다!."
(P.171)
산업혁명 이후 경제활동이 매우
활발해진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런 방임적 '자유주의' 논리는 처음에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자유주의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지배담론이자 하나의 도그마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방임적 자유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런 자유주의는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자유를 빙자한 자본의 횡포와 독점이
발생하고 빈부격차가 커짐에 따라 서민의 구매력이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빚어진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와 역할에
회의를 느끼며 방임적 자유보다 정부의 적극적 관리와 개입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그런 흐름에서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수정되는 길을
걸었다.
(P.187)
1912년에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월슨은 무분별한 부당 경쟁을 통해 경제의 독점현상이
나타나고 부작용이 만연하는 것을 억제하고자, 새로운 방식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 로운 자유' (New Freedom) 정책을 제시하며
당선되었다. 1930년대 세계경제공횡을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도 '새로운 자유'정책의 흐름으로 꼽힌다. 이때
이야기되는 '새로운 자유 정책'(New Freedom policy)을 가끔 '신자유주의'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오늘날 세계화 담론과 결부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앞에서 말하는 '새로운 자유'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경제문제를 챙기는 것이고,
뒤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는 가급적 나서지 말고 민간자본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와 후자를 구별하기 위해 전자를
'새로운 자유주의' (New Liberalism)라 부르고 후지를 요즘 부르는 용어 그대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면
좋을 듯하다.
(P.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