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 / 김화영 / 민음사 / 508쪽
(2017. 11. 8.)
절망이나 고난, 시련에 처했을때
인간들 사이에서 보여지는 행동의 양식은 시대.공간을 초월하는것 같다.
시대나 환경에 좌절하여 순응적인
인간으로 남는 가 하면
반대로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사회를
탱해왔던것 같다
문제는 그런 사람 인간들이 그 시대의 지도자나 상위계층이라기 보다는 주로 시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실인가?
인간 본연의 본능인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메르스 사태를 생각나게
한다.
전염병에 대한 국가의 대처 능력이라든지 대자본이 운영하는 병원의 업무처리 안일함을 운운하기보다는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두려움에
앞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인간 본연의 두려움들과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의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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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시에서 보다 더 독특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에 이르러 겪는 어려움이다. 사실 어려움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못 된다. 불편함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병을 앓는 것이 기분
좋을 적은 결코 없지만 어떤 도시나 고장은 병을 앓는 동안에 의지가 되어서, 거기서는 이를테면
마음을 푹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병자란 부드러움을 필요로 하며 무엇엔가 기대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오랑에서는 지나치게 거센 기후, 거기서 거래하는
사업의 중요성,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황혼, 쾌락의 특질 등 모든 것이
한결같이 건강한 몸을 요구한다. 이곳에서 병을 앓는 사람은 아주 외롭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 시간에 전화를 붙잡고서, 혹은
카페에 앉아서 어음이니 선하증권이니 할인이니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더위로 불꽃이 튀기는 듯한 수많은 벽들 뒤에서 덫에 걸린 채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상상해 보라. 비록 현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메마른
고장에 죽음이 그처럼 들이닥칠 때 그 불편함이 어떠할 것일지는 이해가 갈
것이다.
(P.13)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우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당장에는 특별한
주의도 하지않은 채 그 동물을 발로 밀어 치우고 층계를 내려왔다. 그러나 거리에 나서자 쥐가 나올
곳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발길을 돌려 수위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미셸 영감의 반응을
보자 자기가 발견한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한층 실감했다. 쥐가 죽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그저 괴이하게 보였을 뿐이지만
수위에게는 빈 축을 살 만한 난리였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위의 입장은 단호한 것이어서 이 건물 안에는 절대로 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층 층계참에 한
마리가 있는데 필경 죽은 것 같다고 의사가 분명히 말했지만 아무 소용 없이 미셸 씨의
신념은 조금 도 흔들리지 않았다. 건물 안에는 쥐가 없으니, 그렇다면 누가 밖에서 그 쥐를
가져왔을 것이다. 요컨대 이건 누군가의 장난이라는
것이었다.
(P.17)
'물음: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 시간의
길이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것. 방법: 치과 병원 대기실에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여러 나절을 보낼 것. 일요일 오후를 자기 방 앞의 발코니에서
보낼 것.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로 하는 강연을 경청할 것. 가장 길고 가장 불편한 철도의 코스를 골라 가지고 물론 입석으로 여행할 것. 공연장
의 매표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오면 표를 사지 말 것 등등.' 그러나 이러한 언어 혹은 사색의 일탈에 바로 이어서 수첩은 우리들
도시의 전차, 그것의 조각배 같은 형상, 그 어정쩡한 색깔, 일관된 불결함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로 시작해 아무런 설명도 되지 못하는 '그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라는 말로 관찰을 끝맺고 있다.
(P.40)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그의 망설임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가 불안과 믿음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고 있었던 것도 그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
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P.54)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 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P.55)
담배 가게 여주인이 있는 데서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한참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그 여자가 알제에서 한창 떠들썩하던 당시의 어떤 체포 사건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어떤 상사의 젊은 사무원이 바닷가에서 한 아랍인을 죽인
사건이었다.
(P.79)
그때부터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이 빚어 놓은 놀라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서술자 자신도 포함해)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 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 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처음 몇 주일부터 당장
모든 사람들 전체의 감정이 되었고, 공포심이 가세하면서 저 오랜 귀양살이 시절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P.93)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만큼,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네.”
타루가 끄덕거렸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리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일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유가 말했다. “끝없는
패배지요.”
타루는 잠시 의사를 보고 있다가 일어서서 무거운
걸음으로 문 앞까지 갔다. 리유도 그의 뒤를 따랐다. 의사가 이미 그의 곁에까지 갔을 때 자기
발등을 보고 있는 것 같던 타루가 리유에게 말했다.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으로
니짰다.
“가난입니다”
(P.172)
훌륭한 행동에다
너무나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악의 힘에 대해 간접적이며 강렬한 찬사를
바치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런 훌륭한 행동이 그렇게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 행위들이 아주 드문 것이고, 인간 행위에 있어서 악의와 무관심이 훨씬 더 빈번하게
원동력이 되기 때문 이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것은 서술자가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이다.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선의도 총명한 지혜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러다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의 총명을 다하지 않으면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P.176)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 대 리유.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다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 노릇을 그만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그들을 해방해
줄 것 같지 않은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P.329)
사실상 페스트는 그다음 날로 당장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겉보기에 의당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는 더 빨리
약화되어 가고 있었다 정월 초순에는 추위가 보통이 아닌 맹위를 떨치며 버티고 있어서,
도시의 하늘은 그대로 얼어 붙은 성싶었다. 그러면서도 그때만큼 하늘이 푸르렀던 적은
없었다. 며칠 동안을 두고 내내 싸늘하면서도 활짝 갠 채 요지부동인 찬란한 하늘이
계속적으로 쏟아붓는 광선으로 온 도시가 가득했다. 페스트는 그 깨끗해진 대기 속에서
삼 주일 동안 계속적인 하강 상태에 있었다. 페스트로 말미암은 시체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페스트는 힘을 잃어 가는 듯싶었다. 수개 월 동안 축적해 놓았던 힘을 단시일 안에
거의 전부 잃고 있 었다. 그랑이나 리유가 돌보았던 그 처녀처럼 완전히 점찍었던 미끼를
놓쳐 버린다든지, 또 어떤 동네에서는 이삼일간 병세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또 다른
동네에서는 완전히 사라진다든지, 월요일에는 희생자의 수를 부쩍 늘려 놓았다가
수요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한자를 다시 살려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처럼
숨을 몰아쉬거나 허둥지둥 서둘러 대는 꼴을 보면 마치 페스트는 신경질과 싫증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으며, 그것 자체에 대한 자제력과 동시에 그의 힘의 바탕이었던 그 수학적이며
위풍당당한 효율성마저 상실해 가고 있는 듯싶었다. 카스텔의 혈청은 갑자기 여태껏
한 번도 거둘 수 없었던 성공을 여러 차례 이루게 되었다. 전에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 했던, 의사들의 몇몇 조치들 하나하나가 갑자기 확실한 효과 를 거두는 듯도했다.
이번에는 페스트 쪽에서 몰리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힘이 약해진 그 덕에 여태껏
그것을 향해 겨누었던 무던 칼날에 힘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다만 가끔가다가
병세가 완강해지면서 일종의 맹목적인 폭발을 일으키는 가운데 들림없이 완쾌할 것으로
기대했던 환자를 서너 명씩 앗아가곤 했을 뿐이다. 그들은 페스트에 운이 나쁜 사람들,
희망에 가득 찼을 때 살해당한 사람들이다. 격리 수용소에서 나은 오통 판사가 바로
그런 경우였는데, 사실 타루는 그에 대해서 운 이 나빴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판사의
죽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판사가 살았을 때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알 길이
없었다.
(P.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