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1762)
(철학사상 별책 제2권 제5호)
전병운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42쪽
(2017. 8. 20.)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민주주의 이념을 땅 끝까지 실현해낸 세계사의 최종적 결과이다. 이 민주주의 역사의 사상적 시조가 다름 아닌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이다. 양자 공히 천부인권과 주권재민 원칙을 토대로 정치사회[국가] 이론을 세웠다. 특히 루소는 그의 사후 그의 소책자<사회계약론>을 가지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 사부가 됨으로써 그의 주권재민 사상의 과격한 역사 추진력을 입증하였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대혁명을 뿌리로 해서 출발한 근대 사상과 사회 운동 일반에는 대체로 루소의 영감과 정신이 어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그의 법치국가 사상과 주권 이론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헤겔의 법과 권리의 철학에서 완성을 보게 된다. 그러나 루소의 정신과 저작은 다양하여 법과 주권이라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머리로 알기 전에 가슴으로 느끼는 인간을 아마도 루소보다 강력히 주장하고 입증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낄 줄 아는, 특히 동정이라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 오직 인민이 주권자인 법치국가에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다재다능한 저술가의 결론이다.
(P.i)


사회계약론은 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편은 제사회의 형성과 사회계약을 다루고 있다. 사회 질서라는 것은 그 자체가 여타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신성한 권리이다. 이것은 그러나 자연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사회 질서라는 것의 근원을 찾는다면 최초의 약속, 곧 만장일치의 원시적 합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자연 상태에 살던 인간들이 각자가 혼자서 삶의 역경을 처리해 나갈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때까지의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까지 없던 새로운 힘과 능력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닌 이상, 그들은 각 개인의 힘과 능력을 결합하여 삶에 대한 장애를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제기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개별 구성원의 재산과 신체를 전체의 공동 힘으로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형태의 결합체를 찾아내는 것이다. 또 개인 구성원은 이러한 형태의 결합체를 통하여 자신을 전체에 결합시키면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고 결합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유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다. 이 문제의 해결이 다름 아닌 사회계약이다. 사회계약에 의해서 각자는 자신의 모든 힘과 존재를 일반 의지의 절대적 지도 하에 전체의 공유물이 되도록 양도한다. 이 계약 행위로부터 하나의 정신적 집단이 결과하고, 이 집단은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 수만큼의 구성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각자는 자신을 유보 없이, 송두리째 양도하였기 하였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조건에 있어서 평등하며, 따라서 결합 자체가 완벽하다. 또 각자는 구성원 전체에게 자신을 양도하였기 때문에 구성원 중 어
떠한 누구에게도 자신을 양도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집단을 국가 또는 주권자라고 명명한다. 구성원들은 하나의 전체로서 인민이라고 부르며,또한 이와 동시에 주권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시민이며, 법에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신민이다. 바로 이 사회계약에 의해서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시민 사회로 이행하며, 본능으로부터 풀려나 도덕성과 정의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이행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적 자유와 그의 손이 닿는 한의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의 자연적 권리를 상실하게 되는것 또한 사실이지만, 대신에 공공 재산의 일부를 위탁받은 자가 됨으로써 그가 갖고 있던 모든 것에 대한 공인된 소유권과 시민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P.1)


  주권과 입법을 제2편은 주제로서 다루게 된다. 주권, 곧 일반의지는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의지라는 것이 넘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권은 또한 불가분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상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지가 일반적이다 라고 할 때 그것은 인민 전체의 의지를 지시하며, 의지가 일반적이 아니다 라고 할 경우 그것은 전체 중 한 분파의 의지를 지시한다. 전자의 의지를 말과 힘으로 옮기는 것이 주권행위이며, 이때 의지는 법이 된다. 후자의 경우, 의지는 하나의 특수의지이거나 일개 행정 조치다. 또는 기껏해야 그것은 일개 행정 법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정치 이론가들은 주권의 원천을 분해할 수 없는 나머지, 주권을 주권이 적용되는 제 방식으로 분해하여 왔다. 즉, 주권을 힘과 의지로, 입법권과 집행권, 조세권과 사법권과 교전권, 내치와 외치 등으로 분해하여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이론가들은 주권자를 별개의 부품들로 구성된 공상적 존재로 만들었다. 마치 한 신체에선 두 눈을 떼어 내고 또 다른 한 신체에서 양 팔을, 또 다른 신체에선 발을 취하여, 이것 모두를 함께 모아 한 사람을 만든 것처럼. 일본에선 요술사들이 어린아이한 명을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여러 조각들로 잘라 낸 다음, 그 조각들을 한 개씩 공중으로 던지면, 이것들이 떨어지면서 조립되어 그 어린아이가 살아온다고 하는데, 우리 이론가들이 하는 일이 미상불 이런 종류의 요술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정치 이론가들이 했던 방식에 따라, 주권의 여러부분들에 의해 행사된다고 생각되었던 권한들은 실재에선 하나의 나눌 수 없는 주권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예외 없이 최고 의지를 예상하고 있으며, 단지 이 의지를 할당된 관할 구역 안에서 집행할 따름이다.
(P.3)


제3편은 정부와 그 운영이 본편의 주제다. 국가 존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법을 제정하여야 하나, 이로 충분치 않고 제정된 법을 집행하는 것이 또한 필수적이다. 입법권은 주권자, 곧 일반의지에 속하나, 그렇다고 해서 주권자 자신이 집행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선 주권자는 별도의 대행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 대행자는 주권자와 신민의 사이에 서는 매개자로서 일반의지의 지도 하에 법을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기능이며, 정부는 그러니까 주권자의 관리이지, 주권자 자신은 아닌 것이다. 정부를 구성하는 한 명 또는 수 명의 행정관은 집행권의 수탁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주권자의 공무원이며, 그들의 직책은 사회계약의 결과가 아니고, 위탁된 책임이다. 행정관은 주권자로부터 명령을 받아 이를 인민에게 전달하며, 주권자는 이들의 권한을 자기 뜻대로 제한, 수정, 취소할 수 있다.
(P.5)


  기하학적 논증 체계를 갖춘 이 고도의 이론적 추상적 작품이 어떻게 사변 철학의 영역을 넘어 유럽 전역에 걸친 광범위한 독자층을 발견하고, 급기야 세계를 바꾸는 프랑스 대혁명의 ― 철학자 헤겔에 의하면 ― 사상적 사부의 저술이 되었을까? 오늘날 정치 사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루소의 이 저술이 1762년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까지 20여 판을 거듭했고, 혁명 전야의 이데올로기에 폭넓게 배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1) 사실, 루소 자신이 정치적 권리의 원리들에 관한 ‘소론’(작은 논문, petit traité)이라고 부른 이 저술은 광범위한 일반 독자층을 통하여 결국 <공산당 선언>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는 혁명가들의 소책자 내지 입문서, 심지언 정치 팸플릿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헤겔, 셸링, 피히테, 칸트가 프랑스 대혁명을 인류사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한 대사건으로 기념하고 그것의 사상적 바탕을 조성하는데 루소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하더라도, <사회계약론>이란 제명을 단 이 소책자의 역사적 사명은 이 혁명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P.11)


  루소에 있어서 인민주권은 국가의 최고 권위일 뿐 아니라, 동시에 국가구성 원리로서 모든 정치적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다. 루소 정치학에서는 따라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국가만이 ‘참된’ 국가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민이 자기 자신을 직접 지배,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주권자인 인민은 자신의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 general will)의 표현인 법의 제정과 자신의 고유한 이 입법권에 종속시킨 행정부의 집행권을 통하여서만이 신민(臣民; sujet, subject)인 자신과 국가를 통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루소에게 있어선 겉보기와는 달리 직접 민주주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란 일반의지의 표현인 만큼 개별적인 대상을 그 내용이나 목적으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법의 집행도 입법권자인 인민 총회와는 별도의 행정부(gouvernement,government, 정부)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인민은 주권자로서 법을 제정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제정한 법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인 것이다. 이렇게 국가 생활에서 법의 보편적 지배 원칙에 대한 신념과 이 원칙에 의해서만이 시민(citoyen, citizen, 그리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사상에 주목할 때, 우리는 루소를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치사상의 후계자이면서 동시에 칸트와 헤겔의 법철학 선구자로서 생각할 수 있다.
(P.15)


  루소에 있어서 주권이 양도될 수 없고 그 행사가 오로지 인민에 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권이란 본질적으로 일반의지이며, 인민이 자유롭다함은 다름 아닌 인민이, 개인의 경우와 꼭 마찬가지로, 타자의 의지가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자유의 정의 때문에 루소에게 있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곧 인간의 자격을 포기하는 자며, 인민이 자기 자신의 의지인 주권을 양도하는 행위는 곧 인민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동시에 정치통일체(corps politique, body politic, 국가)의 해체를 초래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자유는 자신의 의지의 행사에 있기 때문에, 의지의 행사는 양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나 자신 말고 타인에게 대행(represent)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P.18)

  
  홉스의 경우에서도, 그의 사회계약 조항들이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들의 비참한 정황에서 불가피하게 도출되었음은 자명하다. 그에게서 자연상태는 다름 아닌 전면적 전쟁과 광폭한 혼돈의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들의 자연적 자유를 유보 없이 양도하여 절대적 권력에 순종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런 계약 조건은 누가 보더라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보다는 유리할 것이고, 그러니까 삶의 본능, 곧 죽음의 공포뿐 아니라, 이성 역시 모든 수단을 다하여 이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논리에 의해, 로크의 자유주의적 계약론 역시 자연상태에 관한 그의 사상에 의해 설명된다. 로크에 있어서 자연상태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이미 자연법에 따른 의무 사항들이 있으며, 이로 인해 이 원시적 인간 조건은 벌써 상호원조와 평화의 상태인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시민사회에 들어와 제정되는 법의 목적도 자연법을 비준하고 자연법에 따른 의무사항들을 공고히 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크에 있어서 국가의 제 기능이 극단적으로 제한되고 그 역할이 자연법
에 의해 인정된 개인적 제 권리의 보호에 한정되는 것이다. 또 무릇 도덕성 자체가 시민사회 형성에 선행하는 만큼, 국가는 달리 수행할 도덕적 사명이 없으며, 그 활동은 구성원의 재산, 자유, 생명의 보호에 한한다.
(P.31)


루소에게 있어서도 이 전쟁상태가 정치사회의 설립을 불가피하게하고 부자들의 발의와 주도에 따라 사람들은 협약에 의해 결합하여 공동 권위에 순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정치사회와 법의 기원이고 기원일 수밖에 없다”고 루소는 <불평등기원론>에서 설파하고 있다. 루소에 있어선,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은 어디까지나 고립인 만큼 인간이 타인과 충돌하게 될 까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상태가 나타나고 또 이 전쟁상태를 끝내기 위해 정치사회가 창설되기 위해선 먼저 인간들은 고립을 떠나 서로 가까워지고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고독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적이 되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 되고 난 이후의 일인 것이 사회성의 발전과 욕정의 발전은 쌍을 이루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때만이 홉스가 말한 전쟁이 일반적인 상태로서 생겨나는데, 홉스가 이런 전쟁을 자연상태로 간주한 까닭은 전쟁이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내부에서만 발전할 수 있는 욕정에 기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적 독립이 인간들 사이에 전쟁상태를 빚어내기 위해선 인간들이 서로 가까워지고 그들의 욕정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P.76)


루소에게서 총체적(total)양도는 개인의 자연권을 폐지하는 데 귀착되지 않고, 자연권을 시민의 권리로 환원시키기 위한 인위적 장치로서 작용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각 구성원은 그의 천부의 자유를 시민적 자유와 바꾸고, 만물에 대한 무한하지만 불확실한 권리를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과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니만치 개개인은 사
회계약 이후에도 여전히 자연상태에서같이 자유롭다고 루소가 강변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은 ‘사회적 삶’을 살면서도 더 이상 타인의 지배를 당할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즉 개개인을 모든 종속관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회계약의 목적인 것이다.
(P.111)


시민들이 자유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들처럼 독립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법에의 복종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사회계약 이후의 인간이 시민적 자유의 형태 하에 그의 자연적 독립과 대등한 가치만을 재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것 이외에도 정의, 도덕성, 덕성이 시민적 상태의 자산에 속한다. 도덕적 삶은 오직 사회적 삶과 함께 시작하며, 인간의 법에 대한 복종은 그를 온갖 사적 개인적 종속으로부터 지켜주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이성과 상의하고 자기의 욕정을 지배하고 자신의 성향에 저항하는 권능을 부여한다. 다시 말하면 사회계약에 의해 자연 상태에서 시민 상태로 이행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지적 도덕적 진보를 위한 제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홀로 떨어져 살았을 때는 단지 가능태로서밖에 존재하지 않던 그의 가장 고귀한 기능들, 곧 이성과 양심은 훈련되고 발휘되는 과정을 거쳐 발전하고, 그의 존재는 좀더 높은 단계의 자유에 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소가 설파한 사회계약의 참된 존재이유이고 그 정당성의 근거이다.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