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안도현 / 문학동네 / 134쪽
(2017. 8. 14.)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P.7)


  연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마음의 눈을 갖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눈,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입맞춤이 뜨겁고 달콤한 것은, 그 이전의 두 사람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 직전까지의 상상력 때문인 것처럼.
(P.11)


  누나는 늘 걱장만 하는 존재다. 누나는 나를 왜 옆에서 보지 못할까? 불곰과 물수리가 위에서 보려고 한다. 또한 누나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간섭하려고 든다. 간섭하는 게 사랑의 표시라도 되는 듯이. 누나는 사랑이 간섭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묵묵히 바라보거나 나란히 헤엄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정말 누나는 모르는 것이다.
(P.25)


  자기 욕망의 크기만큼 먹을 줄 아는 물고기가 현명한 물고기라고, 그는 생각한다. 연어는 연어의 욕망의 크기가 있고, 고래는 고래의 욕망의 크기가 있는 법이다. 연어가 고래의 욕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연어가 아닌 것이다. 고래가 연어의 옥망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고래가 아닌 것처럼. 연어는 연어로 살아야 연어인 것이다.
(P.30)


  그리움, 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 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래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P.39)


  우리가 강을 거슬러오르는 이유가 오직 알을 낳기 위해서일까? 알을 낳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 그게 우리 삶의 전부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닐 거야. 연어에게는 연어만의 독특한 삶의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가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우리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P.52)


  자신의 외모 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이 생각날 때마다 은빛연어는 부끄러워서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었다. 그는 동물들에게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음을 볼 줄 모르는 동무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마음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 세상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오만으로 가득 찬 생각이었음을 은빛연어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남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라고 은빛연어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마음 속의 또다른 연어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P.65)


  "이유 없는 삶이 있을까요?"
"네 말대로 이유 없는 삶이란 없지.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럼 아저씨의 삶의 여유는 뭔가요?"
"그건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그 자체야."
"존재한다는 게 삶의 이유라구요?"
"그래.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지."
(P.66)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너는 어디엔가 희망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희망이란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럼, 결국 희망을 차지 못했다는 말이니?"
"그래, 나는 희망을 찾지 못했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한 오라기의 희망도 마음 속에 품지 않고 사는 연어들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연어였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연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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