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1847)
에밀리 브론테 / 김종길 / 민음사 / 572쪽
(2017. 8. 6.)

같은 거미라도 보통 집에 줄을 치면 반갑지 않지만, 감옥에서 줄을 치면 거기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것처럼 나로서는 도시 사람들은 재미가 없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매우 재미있소. 그러면서도 이 고장 사람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처지 때문은 아니오. 이 지방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좀 더 깊숙한 자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처럼 껍데기뿐인, 분주하고 하잘것없는 외적인 사물에 별로 마음 쓰지 않으면서 살고 있소. 이런 데서는 한평생 연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소
(P.103)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가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이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P.133)


  우리 인간이란 결국은 자기 본위가 되고 마는가 보죠.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거만한 사람보다는 더 정당하게 이기적이라는 차이뿐이지요. 그리하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로 상대가 자기의 이해를 자기 위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그들의 행복은 끝장이 났던 거랍니다.
(P.152)


  저이는 잠시 동안이라도 나를 가엾게 여겨 살리려고 하질 않아. 내가 받은 사랑이란 저런 것이야. 하지만 괜찮아. 저런 것이 나의 히스클리프는 아니니까. 나는 그래도 나의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것이고, 저승까지도 데리고 갈 거야. 그는 내 맘속에 있으니까.
내가 싫어하는 것은 결국 이 부서진 감옥 같은 육신이야. 이런 육신 속에 갇혀 있는 것에 지칠 대로 지쳤어. 나는 한시 바삐 저 영광스러운 세계로 피해 가서 항상 거기에 있고 싶어. 눈물을 통해 어슴푸레하게 보고, 아픈 가슴의 벽을 사이에 두고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과 함께 있고 그 속에 있고 싶은 거야.
(P.261)


  이제야 당신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선적이었는지 알겠어. 왜 나를 경멸했지? 왜 당신 마음을 배반했어, 캐시? 나로선 위로할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없어. 당신에게는 그래 마땅해. 당신은 자기 마음을 죽인거야. 그래, 나에게 입 맞추고 울려면 울어도 좋아. 나는 입맞춤과 눈물을 빼앗으려면 빼앗아도 좋아.그러면 당신은 더욱 시들 것이고, 자신을 저주하게 될 거야.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 그러면서도 무슨 권리로 나를 버리고 간 거지? 무슨 권리로. 대답해 봐. 린튼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어? 불행도, 타락도, 죽음도, 그리고 신이나 악마가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우리 사이를 떼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나를 버린 거야. 내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찢어놓은 거야.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내 가슴도 찢어놓은 거야. 건강한 만큼 나는 분리하지. 내가 살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이 죽은 뒤에 내 삶이 어떨 것 같아? 아, 당신 같으면 마음속 애인을 무덤 속에 묻고도 살고 싶겠어?
(P.263)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나도 얼마든지 보복을 하겠어요. 하지만 배반이나 폭력은 양쪽 끝이 뾰족한 창과 같아서, 그것을 쓰는 사람이 그걸 받는 사람보다 더 크게 다치는 법이지요.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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