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 해냄 / 400쪽
(2017. 7. 27.)


  너,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또,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가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P.42)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테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부모들의 공부 절대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는 여론조사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기 자식이 1등 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50퍼센트를 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욕심은 그대로 사교육 창궐로 이어지고, 아이들에게 무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심각함은 상상월 초월하는 상태였다. 아이들의 95퍼센트가 부모의 기대에 늘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성적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고, 눈치가 보이고, 글서 대면하기가 싫다고 했다.
  이건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부모 자식의 사이가 피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P.90)


 부모들은 출세와 편안한 삶을 위한 무한 경쟁을 향해 질주할 생각뿐이었다. 그 거침없는 질주가 바로 무작정 학원 보내기였다. '남들보다 먼저 하면 이길 수 있다!' 부모들의 이 기대와 믿음을 확실하게 실행해 주는 것이 학원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선행 학습'이었다. 그것은 '남들보다 먼저 해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딱 받아 '남들보다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더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교육을 1퍼센트나, 10퍼센트만 받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의 경우 100퍼센트이니 선행 교육은 '선행'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완행 교육'이 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학원들만 배불려주는 부모들의 어리석은 탕진과 고맙다는 소리 듣지 못하는 자선을 베풀며 애들만 학대하는 잔혹극이 계속 공연되는 것이었다.
(P.91)


  학생들이 나열한 '듣기 싫은 말'
  빨리 공부해, 공부는 언제 할 거냐!
  겨우 이것밖에 못해? 멍청하게.
  ㅇㅇ는 잘하는데 넌 왜 이 모양이냐.
  넌 안 돼, 넌 못해.
  너 커서 뭐가 될래?
  니가 뭘 알아!
  아유, 창피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어?
  도대체 넌 잘하는 게 뭐니?
  돼지 새끼처럼 살만 쪄가지고
  아니, 그것밖에 못해?
  야휴, 꼴 보기 싫어 남들 하는 것 좀 봐!
  너도 사람이냐!
  그따위로 할 거면 다 집어치워!
  아유 병신, 차라리 나가 죽어.
(P.135)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수고했어.
  잘했어.
  열심히 하는구나.
  괜찮아, 괜찮아.
  사랑해.
  푹 쉬어.
  그 정도면 충분해.
  자, 용돈 받아.
  좀 놀아라.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네 맘대로 해.
  그래,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래, 그렇지. 네가 맞아.
  아니야, 걱정 마. 아빠도 네 나이 때 그런 실수 숱하게 했어.
  실수는 누구나 다 하는 거야. 그건 좋은 경험이야.
(P.136)


  바다는 메꾸어도 사람 욕심은 못 메꾼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없다는 사람은 있어도 돈 남는다는 사람은 없다. 돈 있어 못난 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
  돈과 사람 욕심에 대한 이런 속담들은 사람의 심리와 세상 인심을 속속들이 꿰뚫고 갚하는 예리한 칼이고, 따로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사실 속담 백여 개만 잘 간추려 반추하며 산다면 인간관계에 무리할 일이 없고, 탐욕으로 심신을 상할 리도 없고, 삶의 지혜가 궁해질 리가 없었다. 그건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자식들을 가르쳤던 생활교육이었고, 인생을 바르게 터득하게 하는 철학 교육이었다.
(P.324)


  주입과 암기는 학국 교육의 핵심이고, 그들은 거기에 완전히 습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암기법은 한국 교육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도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식 암기 교육으로 일본과 똑같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모방해가며 급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이 그렇듯 한국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돌파구는 서양식의 토론 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P.3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