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 해냄 / 400쪽
(2017. 7. 23.)


  온갖 꽃이란 꽃은 다 피워놓고 4월은 이울고, 꽃과 함께 유록색 새싹들을 돋아 올리며 5월이 오고 있었따. 학교 울타리에도 개나리도 샛노랗게 물들었던 꽃들이 지고 어린 새잎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잎 먼저 피운 덩굴장미는 진초록 잎들을 떠받치며 새빨간 꽃들을 송이송이 피워내고 있었다. 그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과 잎 들은 아름다움의 극치였고 생명감 넘치는 악동이고 환희였다. 봄은 그렇게 찬란하고 황홀하게 온 천지를 수놓고 있었다.
  그런데 바깥의 눈부신 봄 풍경과는 반대로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복도는 분위기를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P.11)


  교육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은 자기들이 머리 좋게 타고난 공부를 수월하게 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할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내심에는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시하는 의식까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들을 무조건 편애하고......, 그건 교육자로서의 바른 뱡심일 수가 없습니다.
(P.20)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6.25 직후의 폐허의 가난 속에서 미국의 원조에 그저 감읍하고, 동물 사료용 가루우유마저 서로 많이 받아먹으려고 허겁지겁했던 거지 군상이 아니었다. 40~50년 동안 밤낮없이 뼛골 빠지게 일해서 1인당 GDP 2만 5천 불대의 배부름을 향유하고 있는 자존심 제대로 갖춘 존재들이었다. 그런 대상들에게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값싸니까 먹어라'하는 식으로 말을 해댔으니 그게 통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트라우마(상처)를 열등감으로 심층 깊이 감추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리는 얼마나 난해하고 복잡한가. 우리 한국 사람들은 거지꼴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먹어야 했던 아픈 과거를 공도의 부끄러움과 열등감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미국을 대할 때는 그 부끄러움과 열등감이 미국에 대한 선망과 같은 비중으로 엇갈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그 말은 바로 그런 열등감을 정통으로 찔러버린 것이었다.
(P.26)


  이 세상에서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영국 교육자 알렉산 닐>
(P.46)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P.48)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박노해)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봄녀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뼉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P.77)


  그 1점의 경쟁은 같은 수준에 있는 애들끼리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까지 동원되고 괜히 고통당해 가며 체력을 소모하고, 막대한 재력을 탕진해 댄다는 사실입니다.
(P.133)


  왕따와 학교 폭력은 초,중,고등 학교에서 발생하는 2대 사건인데, 왕따는 80퍼센트 이상이 여학교나 여학생 사이에서, 학교 폭력은 80퍼센트 이상이 남학교나 남학생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 문제들은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병적 증상이야. 아마도 제일 큰 게 과도한 공부 스트레스 인 것 같도, 그다음이 약자를 괴롭혀 자기 힘을 과시하는 인간의 악한 지배욕의 발동 같고, 한 공간을 자기네 세계로 장악하고자 하는 패거리 의식이 또 하나고,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고통스러움을 보면서 점점 승리감과 쾌감이 커져가는 악마적 가해 의식, 이런 것들이 뒤섞여 있는게 아닌가 싶어
(P.245)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100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그걸 따지자면 복잡해지고,부정확해진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주 미안한 얘기지만, 쉽고 정확하게 따지는 방법이 하나 있다. 미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무관심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건 얼마나 될까? 한국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무관심은 100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무관심은 저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잠비아 같은 나라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쓰러운 것은 한국 사람들은 결코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일반은 그렇다하더라도 식견있는 지식인들까지도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국적 착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진단했다.
  "치유 불가능한 열등감과 선망." "분단 상황이 야기한 의존성."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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