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 / 이태하 / 책세상 / 150
(2017. 7. 12.)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적에 관하여>는 종교 개혁론자로서 영국 이신론자들으 자연 종교와 기독교라는 기성 종교 사이에서 중용을 찾고자 했던 흄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글로서 사이비 종교아 참된 종교를 구분 짓는 시금석을 마련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엿보게 해준다. 이 글이 처음 발표되었던 18세기에는 수많은 학자와 성직자들이 이 글을 기독교의 토대를 파괴하는 반기독교적인 글로 간주해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 비판들은 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이성적 관점의 비판으로 흄이 전개한 논변상의 논리적인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 관점의 비판으로 기적에 관한 종교적 담론이 흄의 불신앙에서 비롯된 편견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P.9)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번진 반이성적, 탈토대주의적 성격의 탈 근대성의 사조는 그것이 주장하는 다원성과 다양성을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키면서 오늘날 규범적 종교다원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 결과 탈 근대성의 담론은 종래 이단과 미신 등 사교로 간주되었던 많은 사이비 종교를 포함하여 그 사회적 유익성을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많은 유사 종교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근대 종교 철학의 효시이자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기적에 관한 흄의 종교 철학적 논의는 참된 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의 긴장과 불안 가운데서 그 어느 때보다 기적을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기적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P.10)


  어떤 사실이 진기하다는 사실이 곧 추론의 규칙을 전복시킬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는 증거에 대해 좀더 조심스러운 검토를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단지 고려되는 사실 그 자체와 관련된 문제점으로 인해 증거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거나 증거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리적인 문제점이 경험적인 확실성에 이르기 위한 증거를 무효화 시킬 수는 없다. 사태에 관한 증거는 논증의 모든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진리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전자의 경우에는 경험적 확실성에, 후자의 경우에는 절대적 확실성에 이른다. 어떤 사실에 대해 불신을 가정하는 것은 그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들이 기적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장애물은 전적으로, 사실을 고려할 때부터 생겨난다. 마음이 불신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어떤 증거에 대한 공정한 경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들이 처해 있는 곤경이다. 좋은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지지 않는 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P.63)


  흄은 "모든  학문은 다소간 인간 본성과 연관을 갖는다"는 전제하에,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 되는 인간학을 세울 때 비로소 학문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바로 이러한 인간학의 이념에 따라 인간 본성에 관한 실험적 탐구에 착수하고 있다.
(P.80)


  흄에 따르면 '모든 관념은 인상의 복사'라는 경험주의의 원리를 따를 때 우리는 사태에 관한 모든 추리가 의존하는 인과 관념이 어떤 인상에 근거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들로부터 우리는 단지 그들 간의 공간적인 인접성과 시간적 연속성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비이락의 경우와 같이 원인과 결과 간의 인접성이나 연속성만으로는 완벽한 인과 관념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참된 인과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를 한데 묶는 필연적 연관성을 경험을 통해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과율의 원리를 주장함에 있어서 공간적 인접성이나 시간적 연속성 외에, 필연적 연관의 관념이 어떤 인상에서 유래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 연관의 관념을 야기한다고 생각되는 어떠한 인상도 물체들의 작용에 대한 개별적 사례들에 대한 경험에서 발견할 수가 업서다. 결국 지각을 기초로 그것의 원인이 되는 물리적 실체를 가정하고 있는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은 경험에 의해 확증되지 않은 하나의 독단적 원리라 할 수 있는 인과율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P.83)


  나는 이미 수학의 토대를 검토하면서 노를 저어가는 배가 일시적으로 노를 젓지 않아도 움직이듯이 상상이 일련의 사유 가운데서 대상이 부재할 때 계속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지속되는 물체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대상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경우에서도 확실한 일관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성은 대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더욱 커진다. 일단 대상들간에 일양성이 연이어 관찰되면 지속되는 존재에 대한 가정은 가능한 한 완벽한 일양성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존재에 대한 계속되는 가정은 이러한 일양성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한편 우리에게 감각이 증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대상들간의 규칙성에 대한 관념을 준다.
(P.88)


  흄이 종교 철학에서 관심을 갖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종교의 토대를 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의 기원을 규명하는 것이다. <종교의 자연사>에서 흄은 인간의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풍요와 빈곤 같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희망과 공포의 긴장 가운데 놓여 있다고 말한다. 흄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긴장을 조성한다고 생각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인을 물상화하고 의인화하여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숭배되는 신이 인간과 같은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지닌 감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기도나 타원, 재물 등에 마음이 움직이는 지극히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점이다. 이처럼 의인화된 유신론에 기초한 기성 종교는 기적이나 계시를 통해 신이 언제든지 자연사에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규칙성과 일양성을 약화시킴으로써 그것에 기초한 우리의 경험이나 관습이나 도덕 등과 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는 안 될 삶의 견고한 원리들을 약화시키거나 붕괴시키는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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