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
(I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
(철학사상 별책 제5권 제5호)
윤선구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226쪽
(2017. 7. 11.)



  데이비드 흄은 근대경험론의 완성자이자 현대 영미철학의 선구자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경험론과 현대 영미철학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철학이다. 그러나 흄의 철학은 칸트의 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칸트가 합리론의 완성자인 라이프니츠의 철학으로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것도 흄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흄의 철학은 칸트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상인 것이다. 흄의 주저는 <인성론>이다. 그러나 그 자신
이, 그 책이 너무 어렵게 쓰여져서 사람들이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까 걱정하였을 정도로 이 책은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흄이 <인성론>의 내용을 쉽고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새로 쓴 책이 바로 <인간지성의 탐구>이다. 이 책은 매우 체계적이고 간결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특히 흄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인성론> 보다 <인간지성의탐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P.i)


  흄의 철학은 근대 시민 사회이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계약론적 윤리설뿐 만 아니라 공리주의의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담스미스와 절친한 친구였던 그는 스미스와 함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이론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아직 성숙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 제체제로의 발전이 필요한 우리 사회는 철학 전공자뿐 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흄 자신이 <인간지성의 탐구> 1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철학은 정밀하고 난해한
사변적인 철학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탐구하여 사회적인 이득이 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P.ii)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는 <인성론> 제1권인 “지성에 관하여”를 재구성하여 서술하고, 여기에 기적에 관한 문제와 신 존재 논증 등 종교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경험론적인 관점에서의 비판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의 핵심 과제는 사실과 존재에 관한 추론의 원리 및 필연적 연결 관념의 근원을 규명하는 것이다. 흄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대상은 이미지일 뿐 실재가 아니라고 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지각이라 명하고 지각을 생생함의 차이에 따라 생생한 인상과 그의 모사인 관념으로 나눈다. 필연적 연결 및 의지 자유의 문제를 비롯하여 대개 철학적인 문제들은 관념이 모호하거나 개념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 흄은 이들 문제가 다루는 관념의 근원이 되는 인상을 규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념은 인상의 모사이기 때문에 때로 모호하기도 하지만 인상은 생생하기 때문에 명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11)


  흄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과거의 반복적인 경험으로부터 미래에도 동일한 관계가 발생하리란 추론을 하는 이유를 탐구하여, 이러한 추리는 이성에 근거한 추론이 아니라 습관에 의한 추리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추론은 동물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므로 더욱 진리임이 입증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검토하여, 대상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동일한 사건들에 대한 경험이 반복되면 습관에 의해 관념들 사이에 연결이 형성되고 이로부터 필연적 연결의 인상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의지자유는 불가능하고, 이 문제는 단지 개념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본다. 그리고 흄은 이러한 입장을 종교철학적 문제에 적용하여 기적에 대한 증언은 기적을 증거할 수 없고, 결과로부터 원인으로서의 신을 추론하는 신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P.11)

  
흄은 외부 물체세계에 대하여 데카르트 및 로크의 실재론적 입장과 라이프니츠 및 버클리의 관념론적 입장 모두 입장 부정한다. 그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는 정신 외부에 물체 세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각 경험으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의 대상은 정신 안에 있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 대상은 이성으로도 알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성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단지 관념 사이의 관계만을 탐구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P.13)


  흄은 정신 외부에 관념에 대응하는 물체세계가 존재하는가 여부를 탐구하는 대신, 정신 안의 지각을 관념과 인상으로 구분하고 관념에 대응하는 인상을 탐구하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삼는다. 인상은 원초적이고 생생한 지각이다. 이에 대해 관념은 인상의 모사이며 덜 생생하다. 흄은 인상을 알 수 없는 근원에서 발생하여 우리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감각인상과 관념이나 인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반성인상으로 구분한다. 감각인상의 근원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근원을 탐구할 수 없고, 반성인상의 근원은 탐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흄은 모든 관념은 단순관념으로 분해될 수 있고, 단순관념은 그에 대응하는 인상의 모사라고 본다. 즉 인상을 모사함으로써만 관념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흄이 본유관념의 존재를 부정하며 경험론적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P.13)


  흄에 의하면,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할 때는, 결과를 산출하기에 꼭 필요한 정도의 능력만을 원인에 부여해야지 그보다 더 큰 능력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원인이 반드시 결과를 산출하기에 적당한 정도의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경험으로 인식하는 원인은 결과를 산출하는 정도의 능력밖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에서는 악과 무질서로 가득 찬 이 세계로부터 그것을 창조한 원인이 선하고 전능하다고 추론한다, 이것은 결과가 함축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인에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추론이라는 것이다.
(P.16)


  흄은 모든 관념은 인상의 모사라고 본다. 인상은 우리의 외부에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정신 안에 존재하며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일종의 관념이다. 그러나 보다 생생하다는 사실에 의해 흄이 의미하는 인상의 모사로서의 관념과 구별된다. 관념을 다루는 학문은 관념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오류에 빠질 수 있지만, 인상은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인상을 다루는 탐구는 오류에 빠질 수 없다. 따라서 관념을 다루는 탐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그 탐구에서 다루는 관념이 어떤 인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가를 밝히면 된다. 만일 관념의 원상에 해당하는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관념은 허구에 불과하다. 흄은 신 존재나 영혼불멸과 같은 전통 형이상학은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을 다루는 철학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관념을 다루게 되면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형이상학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흄에게 있어 참된 형이상학과 폐기해야할 형이상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것이 다루는 관념이 기원하는 인상이 존재하는가 여부이다. 그가 부정하는 일반적 의미에 있어서의 형이상학이란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을 다루는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P.30)


  일반인들은 우리 감각기관에 나타나는 것이 실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철학자들은 우리의 감각기관 앞에 나타나는 물체 세계가 실재가 아니라 정신 안에 존
재하는 일종의 관념 또는 표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실재로서의 외부 대상은 우리의 태도와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해, 우리 지각에 나타나는 것은 우리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P.32)


  흄은 보다 생생한 지각을 인상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인상이란 용어는 일상 언어에서의 인상과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일상 언어에서의 지각이 흄이 인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내용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흄뿐만 아니라 근대철학자들에게서 지각은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정신 안에 존재하는 일종의 상이다. 그들이 지각대상을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로 여기지 않고, 정신 내의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것이 관념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관념이란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에 대하여 정신 안에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흄에게서의 인상도 정신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대철학의 일반적인 용어에 따른다면 관념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흄에게 있어 인상이나 관념은 정신 안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생생한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인상은 관념의 원상이므로 보다 더 생생하고 관념은 인상의 모사이기 때문에 인상 보다 덜 생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상과 관념 사이의 차이는 단지 생생함의 정도 차이만은 아니다. 관념이 인상의 모사이며, 주관에 의해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한데 비해 인상은 관념의 원형이며,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P.32)


  기적이란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사건인 까닭에 우연적인 사건이다. 물론 그 원인이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신에게 조차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적적인 사건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세계에서 기적의 원인과의 관계는 필연적이 아니고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흄은 우연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것은 원인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할 때 그 사건을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적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의가 가능하다. 기적이란 자연 세계 안에서는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건인데. 우리가 원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흄은 구체적으로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의 논의는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기적을 경험하였다고 증언한다면, 그 증언이 과연 기적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P.37)


  흄의 <인간지성의 탐구>는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형이상학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밀한 추리를 시도하기는 하지만, 탐구과정이 고통스럽고 사람을 지치게 할 뿐만 아니라, 불확실하고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흄은 형이상학이 불확실하고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형이상학적 탐구를 중단하도록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형이상학적 탐구가 대중적인 견해와 모순되는 결과에 이른다 하더라도 결과가 오류가 아니라 대중의 견해가 오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앞선 철학자들의 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성공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흄은 인간 지성의 능력을 탐구하여 인간에게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탐구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흄은 모든 형이상학적 탐구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간본성의 탐구를 통하여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문제와 탐구할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구분하고 단지 우리가 탐구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대한 탐구만을 배제하였을 뿐이다.
(P.58)


  흄은 모든 관념은 인상의 모사라고 본다. 인상은 우리의 외부에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정신 안에 존재하며 그 기원을 알 수없는 일종의 관념이다. 그러나 보다 생생하다는 사실에 의해 흄이 의미하는 인상의 모사물로서의 관념과 구별된다. 관념을 다루는 학문은 관념의 불확실성으로 인하여 오류에 빠질 수 있지만, 인상은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인상을 다루는 탐구는 오류에 빠질 수 없다. 따라서 관념을 다루는 탐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그 탐구에서 다루는 관념이 어떤 인상으로부터 기인하는가를 밝히면 된다. 만일 관념의 원상에 해당하는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관념은 허구에 불과하다. 흄은 신 존재나 영혼불멸과 같은 전통 형이상학은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을 다루는 철학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관념을 다루게 되면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형이상학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흄에게 있어 참된 형이상학과 폐기해야할 형이상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것이 다루는 관념이 기원하는 인상이 존재하는가 여부이다. 그가 부정하는 일반적 의미에 있어서의 형이상학이란 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관념을 다루는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P.61)


  흄이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흄은 이를 위해 인간 본성, 정확히 표현하면 인간지성의 능력을 탐구하기로 한다. 즉, 흄은 형이상학이 불확실하고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것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형이상학을 불신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하여 인간지성이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대하여 탐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인 후, 결론적으로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P.65)


  경험론은 모든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온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로크와 버클리도 또한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은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등 경험론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 흄은 경험론적 원리를 끝까지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간 최초의 철학자이다. 합리론자들은 본유관념의 존재를 인정하고 본유관념을 통하여 사실이나 존재에 대한 인식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런데 모든 인식이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경험론의 원리는 본유관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흄도 본유관념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는 모든 관념은 인상의 모사를 통하여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경험론적 원리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며, 관념의 기원이 되는 인상을 조사하여 관념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사실과 존재에 관한 흄 철학의 주요 방법인 것이다.
(P.69)


  일반인들의 소박한 견해는 우리의 지각 대상들이 실재하는 사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조금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흄은 두 가지 사실을 근거로 지각 대상이 정신 외부에 실재하는 사물이라는 견해를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째 이유는 외부의 사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위치나 시각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항상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각 대상들은 지각 주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데카르트 및 로크 같은 일부 철학자들은 물체의 성질에 대한 관념들 중 소리, 색, 맛, 냄새 등과 같은 제2성질의 관념은 우리 주관에 의해 형상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모양, 크기, 수와 같은 제1성질의 관념은 주관에 의해 임의로 형성된 것으로 간주할 수 없고, 이에 대응하는 외부사물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관념 사이에는 본질적이 차이가 없고, 따라서 제1성질의 관념도 정신 안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P.72)


  우리가 직접 지각하는 것이 사물이 아니라 정신 안에 존재하는 관념이라고 해서, 이러한 견해가 바로 우리가 감각하는 현상의 배후에는 실재로서의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감각 내용이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적 사물의 표상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엄밀히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 안에 존재하는
물체의 관념과 대응하는 외부의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물체의 관념에 대응하는 외부의 물체가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데카르트와 로크가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이 경우에는 정신 안에 존재하는 지각은 정신 외부의 물체세계를 표현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입장은 버클리와 라이프니츠의 입장인데 정신 외부에 물체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정신 안의 관념뿐이라는 입장이다. 세 번째 입장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정신안에 존재하는 관념 또는 지각의 존재만 알 수 있을 뿐, 정신 외부에 이에 대응하는 물체 세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흄과 칸트가 이러한 입장의 대표자이다.
(P.73)


흄에게서의 관념의 의미는 일상언어에서의 관념과 거의 비슷한 것이 되었다. 흄이 데카르트나 로크가 무차별적으로 관념이라고 부른 것을 관념과 인상으로 구분한 이유는, 데카르트와 로크가 정신 안에 있는 관념의 존재를 기정사실화 하고 그에 대응하는 외부 사물의 존재여부를 탐구하는 것을 철학적 탐구의 과제로 삼은 데 대해, 흄은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외부 물체는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알 수 없고 철학은 단지 정신 안에 존재하는 혼란스런 관념을 명확히 하는 것을 탐구의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관념은 인상으로부터 모사를 통하여 생겨나므로 본성 상 불확실하지만 인상은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불확실한 관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그 관념이 기원하는 인상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고, 그 인상에 대응하는 외부대상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탐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P.87)


  흄은 모든 관념은 인상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본유관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흄의 경험론적 입장에 대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상은 우리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그 근원은 알 수 없다. 흄은 <인성론>에서 인상이 우리의 주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지, 외부의 사물로부터 오는 것인지, 또는 우리를 창조한 신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인성론> 제1권, 제3부, 제5절참조). 데카르트나 로크에게서는 인상이 우리의 외부에 있는 사물로부터 온다. 버클리와 라이프니츠는 신이 우리에게 넣어 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변이성에 의한 형이상학적 주장인데,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주장이다. 따라서 흄은, 우리는 인상의 근원을 밝힐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P.88)


  인상은 단순 인상이든 복합인상이든 우리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가 이것을 복합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상을 우리의 자의에 의해 변형하면 이것은 이미 관념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리는 관념을 자의적으로 변형하거나 여러 다른 관념들을 합성할 수 있다. 이 때 우리의 상상력은 무제한의 자유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단지 주어진 자료를 합성하고 변형하는 자유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관념들을 합성하거나 변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재료들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흄은 이러한 기본적인 재료들을 단순 관념이라고 부른다. 단순관념은 우리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상상력에 의하여 만들어 낼 수 없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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