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
이준호 / 살림 / 288쪽
(2016. 7. 9.)



  진리라고 것이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성은 회의주의로 귀결되고, 몽상은 진리라고 믿고 있으면 독단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흄은 독단과 회의의 뿌리는 동일하다고 한다. 즉 이성의 필요 없는 사변 때문에 독단과 회의가 발생한다. 불완전힌 이성의 한계를 자각해야한다. 이성의 한계는 경험이다. 이성이 경험을 넘어서면 필요 없는 사변에 빠질 수밖에 없고, 독단과 몽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흄 철학의 기초이다. 근대 유럽철학은 흄에 이르러 비로소 형이상학적 몽성과 이 몽상에 바탕을 둔 독단의 잠에서 벗어난 것이다.
(P.15)


  흄은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감각, 정념 그리고 정서 등을 가리킨다. 흄은 이 인상들이 사라진 뒤에 남은 잔상을 관념이라고 하지만, 관념에서도 반성 인상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상이 관념보다 먼저 발생한다는 것은 오부 대상에 대한 감각 지각으로 국한된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관념은 논리적, 수학적 개념까지 포함한다. 인상과 관념의 종류는 발생 순서, 형태, 그리고 그 원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구분된다. 흄은 모든 지각의 기원을 감각 인상이라고 하지만, 감각 인상의 발생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P.36)


  진리 문제에서 철학적 관계는 사실과 논증의 두 영역으로 구분된다. 흄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실의 영역에서 철학적 관계는 그 관념들의 변화가 전혀 없어도 변할 수 있고, 논증의 영역에서 철학적 관계는 우리가 비교하는 관념들에 완전히 의존한다. 따라서 논증의 영역에서는 관념이 변하지 않는 한 관계도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 총리가 말로써 한국을 침탈했던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강조해도, 그 말의 진위에 대한 판단은 반성했다는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것처럼, 사실의 영역에서 진리는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의존한다. 반면에 논증의 영역에서는 수학 공식에 따라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처럼 오직 개념들의 관계만 고려한다.
(P.48)


  논증의 영역에서 사실과 무관하게 개념들의 관계를 추론함으로써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추론을 사실 문제에 적용할 때에는 지식일 수 없고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대상들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 결론은 틀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논증의 영역에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실 문제에 적용할 경우에 그 지식은 신념의 단계로 전락하게 된다.
  흄이 지식을 이와 같이 구분햇던 것은 당시 라이프니츠가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를 구분햇던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두 진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차이가 있다. 라이프니츠의 경우 궁극적으로 이성의 진리가 사실의 진리에 대해 우위를 차지한다. 반면에 흄의 경우 이성의 진리, 즉 논증을 사실 문제들에 대해 적용할 수 있지만 논증은 사실의 영역에서 대상과 판단의 불확실성 때문에 개연성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흄과 라이프니츠의 이런 차이점을 하찮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유럽 지성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P.51)


  흄의 인식론에서 감관을 통해 지각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역도 성립된다. 따라서 감각적 지각의 대상은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유하거나 사유할 수 있지만, 사유하거나 사유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대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유와 대상은 정확히 일치하는 대응 관계가 아니다. 즉 사유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유할수 없는 것은 존재할 수도 없다. 사유의 원천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감각 경험은 모든 인식의 원천이다. 감각 경험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던 물질적 실체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의 구성해 낸 창조물이며, 경험적을 정당화 될 수 없다면 이성이 독단적으로 구성한 허구이다. 이와 같은 논증은 실체로서 정신 및 신의 존재에도 적용되며, 이것이 곧 형이상학적 허구에 대한 비판이다.
(P.60)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는 <오성에 관하여>, <정념에 관하여>, <도덕에 관하여> 등 총 3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에서 흄은 인간의 인식 능력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정념들의 작용과 사회 제도의 성립 과정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흄은 당대의 자연 과학이 구축한 방법론을 자신의 학문 체계에 차용하여 자연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서 회의적 태도를 고수한다. 인간의 감각에서 직접 유래하는 감각 인상 이외의 것을 상상력이 구성한 관념이라고 여기는 흄의 인식론은 바로 자연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흄의 인식론의 방법은 인간의 갖가지 정념과 사회 제도를 설명하는 데까지 적용되며, 이 때문에 흄은 대표적인 자연주의자로 분류된다.
(P.121)


  나의 유일한 희망은 철학자들의 사변에 전환점을 제공함으로써, 또 오직 철학자들만이 확증과 확신을 기대했던 주제들을 그들에게 더욱 뚜렷이 지적해 줌으로써, 지식의 진보에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에 관한 유일한 학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본성은 여태까지 가장 무시되어 왔다. 이것을 내가 조금만 더 유행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때때로 나를 억누르던 저 나태로부터 나의 기질을 드솟게 하는 데, 또 그 같은 울분에서 나의 기질을 가다듬는 데 이런 소망이 도움이 되었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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