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 <리바이어던>
(Leviathan) (1996)
(철학사상 별책 제7권 제13호)
진병운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228쪽
(2017. 6. 7.)




  한국과 세계 근대사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조성한 전쟁과 전쟁을 통해서, 근대의 인류와 한국인은 무엇이 인간인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전쟁이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모든 지식, 도덕, 명예, 부, 아니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라는 절대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절대 가치를 그것의 절대적인 적으로부터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 상태에서 인간적인 힘으로선 최대의 힘이 다수의 인간이 동의하여 단 하나의 자연적 또는 사회적 인격에 그들의 모든 힘을 집결시킴으로써 탄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리바이어던이라고 부르는 지상의 신, 토마스 홉스의 국가이다.
(P.ii)


  ‘리바이어던’이란 이름의 출처는 다름 아닌 기독교의 성서이다. 성서에서 리바이어던은 여호와의 적이며 혼돈의 원리로서 제시되고 있으며 또 때로는 악어나 고래의 형상이 부여되고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신화적 상상의 소산으로서 추정된다. 홉스의 경우, 만일 그가 리바이어던을 악과 연상하여 생각했다면 이 이름을 그의 대작의 제명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 이름을 부여한 책의 본문 17장 13절에서 “우리 시민이 평화와 안전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불멸의 영원한 신 하나님 아래서 우리를 통치하는 유한한 신, 곧 리바이어던의 덕분이다.”고 명기하고 있는 저자 홉스에게는 리바이어던이란 시민의 생명을 지상의 폭력적인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국가통치권자로서의 정부를 지시하는 이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홉스가 통치권자를 리바이어던이라고 명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은 그들의 자연 본
성에서 오는 자만과 교만으로 인하여 서로 협력하여 질서 있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한 피조물이기에 그들의 순조로운 사회생활을 위해선, 스스로가 본문 28장 27절에서 천명하고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들의 온갖 자만과 교만을 압도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리바이어던을 불러내어 이를 다시 거만(pride)의 왕이라고 명명했던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데에 있기도 하다.
(P.32)


  홉스의 이 저서가 이렇게 세계사적 리바이어던의 위상을 점하게 된 연유는 고대·중세·근대로 분절된 세계사의 결론부인 근대를 그 방법과 내용에 의해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고 있는 데에 있다. 근대의 으뜸가는 특징인 자연 과학의 대두로 한편 전통 철학과 종교의 권위가 근저부터 뒤흔들리면서 다른 한편 인간은 우주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전대미문의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홉스는 그의 <리바이어던>에서 이와 같은 근대적 현실을 철학·종교·과학·정치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하나의 웅대한 시스템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홉스는 동 저서에서 전통 세계의 와해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여 최초의 자연과 인간 질서를 드러내고 이 자연 질서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리바이어던으로 대표되는 정치공동체를 창출할 수밖에 없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철학서로서 분류되는 <리바이어던>은 근대라고 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가 생존하기를 원하는 한 필연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정치체제, 곧 근대국가의 설계도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모든 종교와 철학의 근본적 인 문제였던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해서도 과학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해답을 가져올 것을 자임하고 있다.
(P.39)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상존하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자연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에 따라 맺게 되는 ‘사회계약’의 결과 통치권을 부여받은(authorization) 인공적 인격체(artificial person)로서 우리 시민이 ‘평화와 안전’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불멸의 영원한 신아래서 우리를 통치하는 유한한(mortal) 신, 곧 <리바이어던>의 덕분이다. 홉스에서 리바이어던이라고 칭하는 국가 통치자는 압도적인, 인간으로선 어느 누구도 저항 불가능한 힘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유한한(finite)존재로서 무한한(infinite)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incomprehensible)신과는 엄격히 구별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이 사회계약이란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존재로서 이해되고 있는 만큼 그것의 존재 이유나 힘의 성질 따위가 피통치자 백성이 [자신의 자연 이성에 따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만큼 홉스는 그의 <리바이어던>을 통해 ‘절대주의’의 대명사로 간주되면서도 동시에 ‘사회계약’을 리바이어던 곧 국가통치권자의 구성 원리로서 제시함으로써 ‘근대성’(modernity)의 성격을 규정하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네 가지 이념을 설파하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명실상부한 원조로서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P.41)


  근대 국가의 역사적 해체나 이론적 분석 과정에서 드러나는 <리바이어던>의 현실화로서의 국가 통치 체제의 절대화 경향은, 근대의 대표적인 부르주아 국가 영국에서, 그것도 다름 아닌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시조 로크에 의해서도, 이미 그 위험이 경고되고 있었던 것이다. 로크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맞서 이보다 29년 후에 발간된 자
신의 <시민통치론>에서 실제로 [절대주의 통치체제 대신에] 대의 정치체제(representative government) 및 시민 저항권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홉스에 비해 로크에 이르러 지대한 이론적 발전을 본 것은 사실이며, 이는 후자가 동일 저서에서 주장한 재산권 이론이 오늘날 자본주의 정당화 이론의 골자인 점을 헤아릴 때 더더욱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로크의 시민이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이며, 그러므로 ‘시민 통치론’은 ‘부르주아 통치론’에 지나지 않고 ‘대의 민주주의’란 ‘형식적 민주주의’에 다름 아님을 지적한 루소를 비롯한 마르크스, 레닌의 비평을 고려할 때, 그의 <시민통치론>이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지우고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또한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시민통치론>이 <리바이어던>을 벗어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전자의 구성 원리 중 하나로서 정치 공동체[국가, commonwealth]의 성립 이전에 사람들은 자연적인 권리로서 생명·자유·재산이란 소위 불가양도의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로크 자신의 자연권 이론 자체에 있다.
(P.45)


  홉스 정치철학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전쟁 상태로 정의하는 데 있다. 전쟁 상태라 하면 우선 사생결단의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나 홉스는 여기에다 일종의 냉전이라 할 수 있는 적대 관계도 포함시키고 있다. 즉 홉스에게선 쌍방 중 어느 쪽이나 타방을 공격할 의도가 상존하고 따라서 어느 쪽이나 자기를 지키기 위해선 타방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적대 관계 역시 전쟁 상태로 규정되고 있다.
  “만인이 만인에게적인 전쟁 상태에 수반되는 온갖 사태는 인간이 자신의 힘과 창의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보장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상태에 수반되는 사태와 동일하다. 이런 상태에선 근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근로의 과실이 불확실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토지의 경작도 항해도 있을 수 없으며, 해로로 수입되는 물자의 이용, 편리한 건물, 다대한 힘을 요하는 물건의 운반이나 이동을 위한 도구, 지표면에 관한 지식, 시간의 계산, 기술, 문자, 사회 등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일은 끊임없는 공포와 폭력에 의한 죽음의 위험이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빈궁하고 더럽고
잔인하면서도 짧다.”
(P.54)


  데카르트의 경우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의 입장에서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 반면, 홉스는 물체[물질] 일원론의 입장에서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를 물체의 운동이란 유물론적 기계론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홉스의 철학은 데카르트와는 달리 우선 서양 중세를 지배한 스콜라 철학과는 분명한 단절을 선언하면서 당시 케플러의 지동설이나 갈릴레오의 관성의 법칙에 의해 확립되고 있었던 자연 과학을 자신의 방법론이나 존재론의 바탕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홉스에게서 초자연적 절대자인 신과는 관계없이 가톨릭 교권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연 이성에 따라 리바이어던이라고 하는 인공 인간을 지상의 최고 권위로서 구상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일원론적 기계론 철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P.86)


  일종의 인공 인간으로 생각되고 있는 <리바이어던>의 소재인 인간이 형식적으론 흡사 자연과학의 대상인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질 내용에 있어선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 상태가 아니고 사회 상태에 들어와서 타락하여 그 본래의 모습[본성]을 상실한 인간을 기술하고 있음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홉스가 ‘자연 상태’라는 이름[개념] 하에서 기술하고 있는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실은 중세의 질서를 받치고 있던 기독교의 권위와 스콜라 철학의 붕괴와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선 자신의 이기적인 힘과 지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근대인이었고, 따라서 이는 홉스가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었던 역사적 현실로서의 인간을 기술, 분석하고 일반화했던 결과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귀납적 방법을 거친 결과이기에, 리바이어던이라는 명칭을 갖게 될 인공 인간의 ‘소재’이며 ‘제작자’인 ‘인간’을 독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마음을 읽어보기만 하면 자명한 진리로서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홉스는 권두언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P.93)


  루소의 자연인은 고도의 추상 작업(abstraction)의 결과로서 본인 스스로가 말한 대로 [이성에게만 존재하는] 이성 상의 존재(et̂ re de raison)인 반면, 홉스의 자연인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성찰(introspection)하는 경험적 심리학(empirical psychology)에 의해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양자의 정치학 내지 국가론은 공히 자연
인 곧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자연인 파악에서의 이와 같은 방법론상의 차이는 결국 루소의 국가를 이상주의 국가로 홉스의 국가를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국가로 규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P.101)


  홉스의 <리바이어던> 창조 내지 저술 목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상태로서 규정되는 자연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결과하는 죽음의 공포라고 하는 보편적인 정념을 해결하는 데에 있다. 전쟁 상태나 죽음의 공포가 철학자 홉스의 지적 전유물이 아니고 17세기 인간 일반이 실제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담고 있었기에 지상에 평화를 확립할 수 있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근대 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감각 기능과 무관한 정념은 없으며” “인간 이성 안에 있는 모든 개념은 최초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감각기관에 의해 포착되었던 것이다.”는 인식론 원칙에 입각했던 홉스는 실제로 그 생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대내외의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살았고 따라서 전쟁과 죽음의 공포와 평화라는 것을 두뇌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각과 감성을 통해서도 알고 있었다.
(P.108)


  홉스에서 ‘사회계약론’은 로크나 루소에서처럼 반드시 민주정체에 이르는 절차가 아니고 민주정체, 귀족정체, 군주정체 중 그 어느 정체에로도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자신이 <리바이어던> 도처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홉스의 ‘주제’는 “통치 형태의 여하를 불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데 충분하기만 하면 모든 권력은 마찬가지이다.”라는 점을 증명하고 “어떻게 사회계약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권력으로서의 주권이 탄생하는가를 논증”하는 것이었다. 즉 홉스에서 사회계약론 ‘국가의 종류’나 ‘정부 형태’에 관한 논의를 넘어서 그의 ‘절대주권론’에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학자들이 <리바이어던>의 저자에서 굳이 민주주의자의 면모를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근대사를 민주주의 이념의 실현사로 보는 역사관의 필연적인 소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신이 몸소 군주정에 대한 의회주의자들의 도전과 후자의 전자에 대한 승리를 목격했었기에 근대와 더불어 대두한 민주주의 이념의 혁명적 기세를 실감하고 있던 홉스 자신은, 정작 정치와 국가를 민주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당대의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그것이 군주정체든 민주정체든 이유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못하는 것은 자기들로선 참가의 희망이 없는 군주 정체보다도 그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민주적 합의체에 호의를 품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의 야심이 그 까닭이다.”(18장 4절, p.117) 이렇게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원천인 사회계약론을 공유하면서도 그 결과가 도무지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홉스의 독창성이고 그의 대작 <리바이어던>의 특징이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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