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 박병덕 / 민음사 / 240쪽
(2017. 5. 26.)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운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망므을 열어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만약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사멸된다면, 만약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과 모든 충동이 침묵한다면, 틀림없이 궁극적인 것, 그러니까 존재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것, 이제 더 이상 자아가 이닌 것, 그 위대한 비밀이 눈뜨게 될 것이었다.
(P.27)


  나는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하여 오랜 시간 노력하였지만 아직도 그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P.35)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싯다르타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생판 모르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는 것, 그것은 한 가지 원인, 딱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트만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바라문을 나는 추구하였으며, 자아의 가장 내면에 있는 미지의 것에서 모든 껍질들의 핵심인 아트만, 그러니까 생명, 신적인것,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 나는 나의 자아를 산산조각 부수어버리고 따로따로 껍질을 벗겨내는 짓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나한테서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P.61)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이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이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P.158)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선량하고 마음씨 좋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며, 어쩌면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성자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특성이 아니었다. 자기를 그 초라한 오두막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아 아버지라는 사람이 소년에게는 지겨운 존재였다. 아들이 볼 때 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소년에게는 지겨운 존재였다. 아들이 볼 때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정말로 지겹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하여도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미소로 대하고, 자기가 아무리 막된 욕을 퍼부어도 다정하게 대하고, 자기가 아무리 악의를 보여도 선의로 대꾸하였는데,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소년의 눈으로 볼 때는, 늙고 음흉한 위선자의 가장 가증스런 교묘한 술수였던 것이다. 소년한테는 이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위협을 받는 편이, 학대를 당하는 편이 오히려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P.179)


  누군가 구도를 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은 오로지 항상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는 까닭이며, 그 사람은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려 있는 상태, 아무 목표도 갖고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당신은 어쩌면 실제로 구도자일 수도 있겠군요.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바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P.202)


  나는 사상들을 가졌었지. 그래, 그리고 이따금씩 인식들을 가져본 적도 있었지. 나는 가끔씩,한 시간 정도 아니면 하루 정도, 마치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생명이 고동치는 것을 느끼듯이, 나의 가슴속에서 지식이 살아 있음을 느끼곤 한 적이 있었네, 그것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었지. 그라나 그것들은 자네에게 전달하기란 나로서는 힘든 일일 것 같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업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야
(P.205)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산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하아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P.210)


  말이란 신비로운 참뜻을 훼손해 보리는 법일세. 무슨 일이든 일단 말로 표현하게 되면 그 즉시 본래의 참뜻이 언제나 약간 다랄져 버리게 되고, 약간 불순물이 섞여 변조되어 버리고, 약간 어리석게 도어버린다는 이야기야. 그래. 그렇지만 이것도 매우 좋은 일이며 그리고 내 마음에도 아주 쏙 드는 일이야. 어느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보배이자 지혜처럼 여겨지는 것이 어떤 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린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고 있어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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