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
유시민 / 생각의 길 / 368쪽
(2017.04.23.)


  누가 쓴 책이든, 무엇에 관한 책이든 비판적으로 읽는 게 기본입니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라 기업인, 교수, 평론가도 거짓말을 하거나 틀린 주장을 하니까요. 책은 모두 사람이 쓴 겁니다. 가방끈이 얼마나 길든, 하는 일이 뭐든, 사람은 다 비슷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잘 속이고, 쉽게 속아 넘어가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지고,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동물, 우리는 모드 그런 불완전한 존재로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그래서 누가 쓴 어떤 책이든 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P.30)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P.42)


  절대적 진리를 내세워 생각이 다른 이를 말살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마치 그런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려면 불관용을 부추기는 생각, 논리, 태도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게 보기 싫다는 이유로 이런 싸움을 못 하게 하면 안됩니다. 권력자가 내린 명령을 국민이 일사불란 따라가는 바람에 융악한 범죄가 일어나 나라가 망한 사례가 허다합니다. 싸우는 정치가 나쁜 게 아니라 '싸우는 정치는 나쁘다'는 주장이 나쁩 겁니다. 무엇을 두고 어떻게 싸우는지 따지지 않고 싸운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인을 비난하고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을 늘어놓는 지식인과 언론인을 믿지 마십시오.
(P.55)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풀은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며 황폐한지 보여 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남의 문제를 가지고 왜 내가 고민합니까?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요. 저는 그저 이렇게 생가합니다. "악플 다는 데도 열정이 필요한데, 나름 참 애쓰면서 열심히 사는구나." 그러면서 제가 해야 할 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합니다. 악플과 싸우는 데는 단 1초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댓글이라고 모두 악플로 취급하는 건 현명하지 않습니다. 표현 방법이 적절치 않거나 거칠어도 비판으로 인정할 수 있는 댓글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정말 그런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있고요. 그렇지만 해명을 하거나 반박을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똑같은 글을 여기저기 반복해서 올리는 경우는 '온라인 스토커'로 간주해서 무플로 대응하는 게 맞습니다.
(P.74)


  저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가진 종을 전적으로 신회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욕망을 다 가진 존재입니다. 욕망은 아름답고 또한 추악합니다. 이성은 고결하지만 때로 나약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빛나는 선과 끔찍한 악을 다 저지릅니다. 저는 인간의 사악함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악함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여서 악한 사람 자신도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악이 생기면 그 원인을 나쁜 사람한테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악이 악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P.101)


   소개서도 모범 답안이나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 쓴 자기소개서와 그렇지 않은 자기소개서가 있다는 것을 분명합니다. 어떤 것이, '잘 쓴 자기소개서'일까요? 저는 자개소개를 할 때 두 가지를 반드시 챙깁니다.
  첫째,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거짓 없이 그리고 명확하게 요약합니다. 자기소개서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심각한 '정보 불균형'이 있어요. 쓰는 사람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닌지 다 알지만, 읽는 사람은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는 읽는 사람이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어야 합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과장한다는 느김을 주지 말아야 하는 거죠. 자기 자랑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일수록 소박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둘째, 자기소개서는 글쓴이가 읽는 사람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써야 합니다. 읽는 사람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느낄 만한 사실을 중심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철저하게 읽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자기 인생을 요약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내가 그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능, 경력,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도드라지게 강조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나의 인생을 발췌 요약하는 거죠.
(P.108)


  글쓰기 실력 향상을 목적으로 삼아 책을 읽는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는 간접 경험이에요. 제대로 간접 경험을 하려면 글쓴이에게최대한 감정을 이입한 상태로 글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는 타인이 하는 말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한 감정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겁니다. 평가와 비판은 그 다음에 하면 됩니다. 저자에 대한 에의를 지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글 속으로 들어가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읽어야 평가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입해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다음, 자기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그 간접 경험을 반추해 보는 작업이 비판적 독해라는 말이지요.
(P.153)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책을 많이 읽는 데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책 속으로 젖어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읽어도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 책을 굳이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책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는 하지만 공감 할 수 없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글슨이가 잘못 섰거나, 잘 쓴 글이지만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책은 덮어 두는 게 현명합니다. 억지로 읽으려면 괴롭기만 할 뿐 남는 게 없을 겁니다.
(P.161)


  기쁜 일이 있을 때 저는 책을 읽지 않습니다. 기쁠 때는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느라 아예 책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나 슬플 때, 분할 때, 억울할 때,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책을 펼칩니다. 그런 감정을 대면하는 방법, 그것과 공존하는 방법, 그 무게를 견디는 방법을 책에서 찾습니다.
(P.168)


  어린 시절에는 무엇을 배우려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배움보다 느낌어었어요. 여러분도 '배우는 책 읽기'를 넘어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넓고 깊고 섬세하게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자 텍스트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생길 겁니다.
(P.169)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 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리,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근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에요. 체력, 돈,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희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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