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에 관한 편지

존 로크 / 공진성 / 책세상 / 171쪽
(2017.04.19.)

 

로크는 종교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지만, 그것을 국가의 간섭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로크는 무엇보다도, 당시로서는 모든 종교인이, 그리고 세속화한 오늘의 상황에서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공존의 정치적 형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 공존의 틀을 파괴해가면서까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고, 그 틀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구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 일을 위해 중요한 것이 영역의 구분이다. 이 영역은 공간적으로, 시각적으로, 개념적으로 깔끔하게 선을 긋듯이 구분되지 않는다. 교회와 국가, 종교와 정치라는 영역의 구분은 그 두 영역 모두에 걸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각각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고,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해석해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업은 일회적이지도 않다. 평화적인 공존을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을 미세하게 구분하는 해석의 작업이 필요하다. 로크는 우리에게 그 해석 작업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P.8)



   국가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이 구분되어야 하고, 교회와 공화국 사이의 경계가 제대로 정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혼의 구원을 걱정하고 공화국 의 안녕을 걱정하는, 혹은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분쟁에도 한계가 정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P.21)



  어느 누구도, 자유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이익을 일부분조차 자발적으로 박탈당하지는 않으므로, 통치자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들에게 처벌을 가하기 위해서 무력, 곧 자신의 모든 신민들의 신체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통치자의 모든 사법권은 오로지 이 세속적 이익에만 미치고, 세속 권력의 모든 권리와 지배는 오로지 이 세속적 재산의 보호화 증진에만 국한되며, 영혼의 구원에까지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확장되어서도 안 되고 확장될 수도 없습니다.
(P.22)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신성에 적합하다고[신이 받으신다고] 그들이 믿는 방식에 따라 신을 공적으로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입니다.
(P.26)



  어떤 개인도, 어떤 교회도, 심지어 공화국도 시민적 재산을 침해하고 강탈할 그 어떤 권리를 종교의 구실 아래 가질 수 없습니다.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한 권리 주장이] 인류에게 끝없는 분쟁과 전쟁의 원인을, 그리고 강탈, 학살, 영원한 증오를 향한 선동을 얼마나 공급해왔는지를 스스로 숙고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지배가 [신의] 은총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종교가 무력과 무기로 전파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게 된다면, 우애는 물론, 안전과 평화도 결코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P.37)



  통치를 신의 은총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일종의 지배이다. 정치에 대한 종교의 지배이고, 그것도 특정 종파의 지배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교 자체의 파괴이고 구원의 실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크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로크는 구원에 대한 열심으로 위장된 지배를 향한 욕망을 비판하고,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순수성을 회복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지배 현상이 정치와 종교, 공화국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 구별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고 로크는 주장했다. 국가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 교회와 공화국 간의 경계가 올바르게 확정된다면 위선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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