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통치론>
(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
(철학사상 별책 제2권 제4호)
정윤석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37쪽
(2017.03. 22.)


  로크의 Two Treatises of Government를 <통치론>이라 번역 하였다. 원래 영어 제목에 충실하다면, <통치이론>(統治二論) 혹은 <통치에 관한 두 논문>이라고 옮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 학계의 관행에 따라 <통치론>이라고 번역하기로 한다. 로크의 <통치론>은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발발한 이듬해인 1689년에 출판되었으며, 그해 11월에는 서점에서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통치론>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주석가 중 한 명인 래슬릿이 밝힌 것처럼, 로크는 1679년에 이미 통치에 대한 연구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1681년 또는 늦어도 1683년경에는 이미 실질적으로 <통치론>의 거의 대부분을 완성한 상태였다(P. Laslett, 1956, pp.40-55). 이렇게 이미 완성된 책을 로크는, 오늘날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다음 해의 신모델을 그 전년도 말에 이미 시장에 내놓듯이, 당시 출판계의 관행에 따라 <통치론> 역시 1690년도를 출판년도로 하여 간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필자는 <통치론>이 1689년에, 또 어떤 필자는 1690년에 출판된 것으로 기술하는 혼란은 이러한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다.
(P.8)


  로크의 <통치론>은 시기를 달리하여 쓰여진 두 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통상 첫 번째 논문을 <제1론>(“The First Treatise of Government”)으로, 두 번째 논문을 <제2론>(“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으로 부르는 것이 영미학계의 관행이다. <제1론>은 「로버트 필머경 및 그 추종자들의 그릇된 원칙과 근거에 대한 지적과 반박」(“The False Principles and Foundation of Sir Robert Filmer and His Followers are Detected and Overthrown”), 그리고 <제2론>은「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시론」(“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d, and End of Civil-Government”)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1론>은 영국 내전 시기의 왕당파 저술가인, 켄트주의 시골 귀족 로버트 필머 경의 정치적 저술에 대한 장문의 비평이다. 필머는 그의 정치적 권위 이론의 비타협적 성격으로 인해 다른 왕당주의 이데올로그들 중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필머에 대한 로크의 비판을 담고 있는 <제1론>은 오늘날 그 자체적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로크 당대에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에서는 주로 <제2론>만이 번역, 출간되었고, 오늘날 영미에서도 <제2론>만을 대학의 교재로 사용하는 것이 주된 관행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통치론>은 <제1론>을 제외하고, 로크가 서양의 근대 정치사상에 건설적으로 기여한 바를 담고 있는 <제2론>만을 다루고 있다.
(P.9)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 있는 한, 그 누구도 타인에 대해 독점적인 사적 지배권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용되도록 주어진 이상, 그것이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데 유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주어진 공유물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로크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노동이다.
“노동이야말로 그것들(사유물)과 공유물간의 구별을 가져온다. 노동이 만물의 공통된 어머니인 자연보다 더 많은 무엇을 그것들에 첨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그의 사적인 권리가 된다.”(28절)
(P.31)

 
  로크는 화폐를 도입하기 이전에는 아무도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폐의 도입은 인간의 욕망 확대와 연관된다. 이에 따라 불평등한 재산을 정당하게 축적할 수 있는 가능성과 정당성이 동시에 열린다(캐롤 페이트만, 1995. pp.249-250 참조). 그런데 왜 인간은 화폐의 도입 이후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가? 로크가 화폐의 도입과 함께 생겨난다고 본 인간이 필요 이상으로 가지고자 하는 욕구란 무엇인가?
(P.39)


  로크의 자연상태에 대한 일반적 이해는 홉스와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이 주된 오해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홉스에게 자연상태는 ‘격정과 적의에 의해 산출된 폭력적 충돌의 상태‘이며, 이러한 치명적 위험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성향을 극복하게 하여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게 한다. 반면 로크에게 자연상태는 좀더 온건하고 이성적인 상태이며,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반사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한 모습으로 묘사된다.홉스가 ‘자연상태‘의 개념을 통해 공권력의 부재 상황 즉 정치적 권위가 없는 상태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면, 로크는 ‘자연상태‘의 개념을 통해 ‘하느님 자신이 인간들을 세상에 둔 조건‘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이에 근거해서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이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해 로크의 자연상태 개념은 홉스의 그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홉스의 자연상태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술이라면 로크의 자연상태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인 것이다.
(P.43)


  자연상태에서 자연법의 위반을 막을 권리와 의무를 맡는 역할은 개인이외에는 수행할 주체가 없다. 만일 누군가 자연법을 어길 때, 즉 다른 무고한 사람을 공격할 때, 이를 저지하여 자신을 보존하지 못한다면, 혹은 이미 행해진 해악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자연법은 유명무실한 법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합법적으로 다른 인간에게 해악을 가할 수 있는 권리”(8절)를 뜻하는 처벌권을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개인이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해 권력을 갖게 된다. 이때 권력이란 침해에 비례하여 보복을 가할 수 있는 권력을 뜻하며, 이미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아 내고, 앞으로 있을 지도 모르는 범죄를 예방하는 목적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상태에서의 만인이 다른 만인에 대해 갖는 권력은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른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이며 자의적인 권력과는 구분된다. 로크의 경우 자연상태에서도 자연법
즉 이성과 양심이 이 모든 것을 이끌기 때문이다.
(P.49)


  자연상태와 인간본성에 대한 로크의 이중성은 로크가 살던 사회관과 인간관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것은 형식적 평등을 요구하면서도 권리의 실질적인 불평등을 동시에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홉스의 이론은 이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이어서 이를 정당화 이론으로 삼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인간의 자연적 평등을 공언하고 그러한 평등을 자연법에 부과하면서도 동시에 불평등에 대한 자연법적 정당화를 발견하는 이론이 필요했는데, 바로 로크의 이론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맥퍼슨, 1990).
(P.53)


사회 계약론의 기원
사회 계약 관념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다. 이 개념은 B.C. 4세기인 플라톤의 시대에도 널리 유포되어 있었고, 19세기말 스펜서(H. Spencer)의 저작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회 계약론의 위대한 시기는 무엇보다도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가 자신의 사상을 개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651년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출간부터 1689년 로크의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거쳐 1762년 루소의 <사회 계약론>(Du Contrat social)이 나오기까지 약 1세기 동안에 사회 계약론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등장하여 이후 정치 사상사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된다.
(P.60)


  사회계약은 두 개의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관념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구분되어야 한다. 하나는 ‘통치 계약‘(혹은 ‘정부 계약‘: the contract of government, pacte de gouvernement, Herrschaftsvertrag)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계약‘(the contract of society, pacte d'association, Gesellschaftsvertrag)이다. 통치 계약이란 통치자와 신민 간에 맺어지는 계약을 말한다. 이러한 통치 계약은 논리적으로 사회 계약을 전제한다.
  통치 계약이란 권력(potestas)만을 창출하는 계약이며, 사회 계약이란 오직 사회(societas) 자체를 창출하는 계약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홉스, 로크, 루소가 관심을 가지고 강조했던 것은 통치 계약이 아니라 바로 사회 계약이었다. 홉스의 사회 계약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는 일단 형성된 후에 자신의 모든 권리와 권력을 비우고 주권자인 리바이어던에게 넘겨줄 수 있으며, 리바이어던은 공동체와 아무런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통치 계약의 어떠한 한계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크의 사회 계약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는 일단 형성된 후에 정부와 계약을 맺지 않지만, ‘수탁자‘(fiduciary, trustee)로서 정부를 임명하고, 신탁의 성격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에 근거하여 신탁 위반을 이유로 정부를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의 사회 계약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 계약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는 통치자와 신민의 구분 없이 자치적이고 따라서 서로간에 통치 계약을 체결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P.63)


  사회 계약론에 대해서 비판자들은 이 관념이 정치적 삶의 해석에 있어서 유기적이 아니라 기계적이며, 정치적 의무의 정당화에 있어서 윤리적이 아니라 법률적이며, 정치적 사회와 정치적 권위의 설명에 있어서 역사적이 아니라 선험적이라고 비판한다.
  비록 사회 계약론이 기계적이고, 법률적이며, 선험적일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사회 계약론을 통해 사람들은 두 개의 가치를 항상 마음속에 신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유와 정의의 가치이다. 즉 힘이나 강제적 물리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가 통치의 기초가 된다는 자유의 가치와, 무력이 아니라 정당함이 모든 정치 사회와 정치 질서의 기초가 된다는 정의의 가치가 사회 계약론을 통해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을 규제하는 일반적 가치로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P.69)


  로크에게 정치 사회란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자신이 자연적으로 갖는 권리에 대한 집행권을 공공체에 양도한 것을 말하며, 모든 정치 사회는 반드시 자유로운 성인의 자발적 동의와 협정을 토대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 이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이러한 자유를 포기하고 일정한 법률의 지배를 받는 정치 사회를 결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크는 자연권이 보장하는 권리를 자연 상태에서는 향유하는 것이 불확실하고 또 끊임없이 침해당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P.91)


  인민들에 대한 전쟁상태를 초래하는 자들에 대한 인민의 저항은 반란이 아니다. 정당한 권리 없이 무력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든지 법에 근거함이 없이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며, 그가 무력을 사용하는 상대방에게 전쟁상태를 도발하는 셈인데, 이 상태에서 이전의 모든 유대는 취소되며, 그 밖의 모든 권리가 중지되며,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침략자에게 저항할 권리가 있다. 로크는 군주에 대한 모든 저항이 반란이 아님을 분명히 강조한다(232절). 무질서를 야기하는 것,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고자 정당한 정부의 구조와 틀을 전복시키는 것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악 가운데 가장 커다란 죄악이라고 단정짓고 나서(230절) 이러한 죄악에 대해서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이며, 이는 자연법이 허용하는 것이라고 옹호한다(233절).
(P.126)


  월린이나 아렌트가 지적하는 로크와 이를 계승하는 자유 민주주의에 내재된 역설, ‘정치성의 승화’와 ‘사회성에 의한 정치성’의 흡수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자유 민주주의 이론의 라이벌이었던 마르크스주의는 후보 자격을 상실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 역시 ‘정치성’의 핵심을 ‘사회성’ 즉 경제적 문제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자율적 영역으로서 정치성을 부인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쌍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시민에 의한 정치적 판단과 활동이라는 자연적 권리의 유지와 양립 가능한 ‘정치성’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인데, 자유 민주주의가 대의제, 간접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참여, 직접 민주주의의 이념이 대안의 후보로 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사회 계약에 대한 루소의 해석과 자주관리적인 평의회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에서 이러한 대안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루소에 따르면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결성하는 계약에서 다수의 인민이 소수의 대표자에게 권리를 위임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 포기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이고 자연적인 정치적 권리를 상이한 자격, 새로운 정치 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집단적 자격을 가진 자신들에게 양도하는 것이다(J.J. Rousseau, 1968. p.62).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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