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관
(자연의 해석과 인간의 자연 지배에 관한 잠언)
프랜시스 베이컨 / 진석용 / 한길사 / 319쪽
(2016. 2.  8.)



<과학 시대의 전망>(베이컨의 '신기관'과 그의 사상)


  <신기관>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베이컨은 제1권을 '(우상) 파괴편으로 제2권을 '(진리' 건설편'으로 부르고 있다. 제1권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널리 알려진 경구에서 시작해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편견들, 즉 네 가지 '우상'을 하나 하나 논박하고, 자신이 제창한 귀납법의 개요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를 뚫고  솟아나는 근대정신의 파릇파릇한 싹을 만나게 된다. 제2권에서는 우상에서 해방된 인간의 지성이 과학적 발견을 위해 걸어야 할 길, 즉 '참된 귀납법'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의 안목으로 보면 유치한 것도 많고 우스운 것도 있지만, 현대 과학이 달나라를 정복하고 빛의 속도에 육박하기까지 과학사의 위인들이 얼마나 고된 노력을 했는지, 어떤 관점으로 과학을 인도하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P.14)


  1. 인간은 자연의 사용자 및 자연의 해석자로서 자연의 질서에 대해 실제로 관찰하고, 고찰한 것만큼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며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은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
(P.39)


  13. 삼단논법은 학문의 원칙으로도 적합하지 않으며, 중간 수준의 공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의 심오함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삼단논법은 인간의 동의를 얻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대상[자연]에 적용될 수는 없다.
  14. 삼단논법은 명제로 구성되고, 명제는 단어로 구성되고, 단어는 개념의 기호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건물의 기초에 해당하는) 개념들이 모호하거나 함부로 추상된 경우, 그런 개념들을 기초로 하여 세운 구조물은 결코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참된 '귀납법'만이 우리들이 유일한 희망이다.
(P.41)

  
  38. 인간의 지성을 고질적으로 사로잡고 있는 우상과 그릇된 관념들은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리조차도 얻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용의 주도하게 그러한 우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않는 한, 학문을 혁신하려고 해도 곤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39.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에는 네 종류가 있다. (편의상) 이름을 짓자면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요, 둘째는 '동굴의 우상'이요, 셋째는 '시장의 우상'이요, 넷째는 '극장의 우상'이다.
  40. 이러한 우상들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음 참된 귀납법으로 개념과 공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상들을 찾아내는 것만 해도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소피스트의 궤변을 연구하면 논리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우상에 대한 올바른 연구 역시 자연에 대한 해석에 도움이 된다.
(P.48)


  '종족의 우상'은 인간성 그 자체에,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그릇된 주장이지만, 인간의 모든 지각은 감각이든 정신이든 우주를 준거로 삼는 것잉 ㅏ니라 인간 자신을 준거로 삼기 쉽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표면이 고르지 못한 거울은 사물을 그 본모습대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나오는 [반사]광선을 왜곡하고 굴절시키는데, 인간의 지성이 꼭 그와 같다.
(P.49)


  42.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이다. 즉 각 개인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오류와는 달리) 자연의 빛을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동굴 같은 것을 제 나름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 고유의 특수한 본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받은 교육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읽은 책이나 존경하고 찬양하는 사람의 권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첫인상의 차이(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생겼는지, 아니면 선입관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생겼는지)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변덕이 심하고, 동요하고, 말하자면 우연에 좌우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인간은 넓은 세계에서가 아니라 상당히 좁은 세계에서 지식을 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 하겠다.
(P.50)


  43. 인간 상호간의 교류와 접촉에서 생기는 우상이 있다. 그것은 인간 상호간의 의사소통과 모임에서생기는 것이므로 '시장의 우상'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인간은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 언어는 일반인들의 이해수준에 맞추어 정해진다. 여기에서 어떤말이 잘못 만들어졌을 때 지성은 실로 엄청난 방해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학자들이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새로운 정의나 설명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태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언어는 여전히 지성에 폭력을 가하고, 모든 것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인간으로 하여금 공허한 논쟁이나 일삼게 하고, 수많은 오류를 범하게 한다.
(P.50)


  44.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생기게 된 우상이 있는데, 나는 이를 '극장의 우상'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거나 고안된 철학체계들은, 생각건대 무대에서 환상적이고 연극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 각본과 같은 것이다. 현재의 철학체계 혹은 고대의 철학체계나 학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각본은 수없이 만들어져 상연되고 있는데, 오류의 종류는 전혀 다르지만 그 원인은 대체로 같다. 철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철학 이외에] 구태의연한 관습과 경솔함과 태만이 만성화되어 있는 여러 분야의 많은 요소들과 공리들도 마찬가지다.
(P.51)


  46. 인간의 지성은 (널리 승인되고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든 아니면 자기 마음에 들어서이든) 한번 '이것이다' 하고 생각하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을 그것을 뒷받침하거나 그에 합치되도록 만든다. 아무리 유력한 반증 사례들이 있다 해도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그것만 예외로 치부해 제외하거나 배척하고 만다. 이것은 순전히 처음에 내세운 주장의 권위가 손상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은 또한 황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사례보다는 긍정적인 사례에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자극도 더 크게 받는다. 이것은 인간의 지성이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는 오류이다. 긍정적인 사례와 부정적인 사례를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 올바른 명제의 수립을 위해서는 부정적 사례를 더욱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P.53)


  67. 지성은 어떤 철학체계에 동의하기에 앞서, 먼저 그 철학이 무절제한 것은 아닌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무절제한 철학들은 우상을 고착화하고 영속화해서 그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차단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절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엇이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학문을 단정적이고 독단적인 것으로 만들고 마는 사람들의 무절제요, 또하나는 불가지론에 빠져 아누 목표 없이 무턱대고 연구만 하는 사람들의 무절제이다. 전자는 지성을 억압하고 후자는 지성을 약화시킨다.
(P.73)


  70. 경험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우수한 논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실제로 이루어진 실험의 범위 안에서만 그러하다. 왜냐하면 어떤 실험에서 얻은 경험을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례에까지 무분별하게 적용할 경우에는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P.76)


  95. 지금까지 학문에 종사한 사람들은 경험에만 의존했거나 독단을 휘두르는 사람들이었다. 경험론자들은 개미처럼 오로지 모아서 사용하고, 독단론자들은 거미처럼 자기 속을 풀어서 집을 짓는다. 그러나 꿀벌은 중용을 취해 뜰이나 들에 핀 꽃에서 재료를 구해다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켜 소화한다. 참된 철학의 임무는 바로 이와 비슷하다. 참된 철학은 오로지 (혹은 주로) 정신의 힘에만 기댈 것도 아니요, 자연지나 기계적 실험을 통해 얻은 재료를 가공하지 않은 채로 기억 속에 비축할 것도 아니다. 그것을 지성의 힘으로 변화시켜 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능력(경험의 능력과 이성의 능력)이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것보다 더 긴밀하고 순수하게 결합된다면(아직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것으로 희망의 근거를 삼아도 좋다.
(P.107)


  130. 자연을 해석하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제시한 지침이 매우 유용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이것이 필요불가결하고 완전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자연지와 경험지를 앞에 놓고 다만 두 가지만 주의하면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정신 본래의 힘만으로도 우리가 설명한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에 도달할 수 있다. 첫째로 고정관념을 버리는 일이며, 둘째로 적당한 시기가 될 때까지 성급한 일반화의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신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정신이 올바르고 성실하게 활동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자연에 대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제시한 지침을 따르면 그 해석이 한결 수월해지고 좀더 확실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지침에 덧붙일 것이 없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정신의 활동을 정신 그 자체의 본래적 기능에 대해서는 물론, 사물과의 관련에 대해서도 고찰해야 하기 때문에 발견의 기술은 발견 그 자체와 함께 진전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