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 문학동네 / 404쪽
(2017. 1.  11.)

 

 


  속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빠르기, 또 일정시간 동안 움직이는 물체가 이동한 거리. 빠르기에는 여러 사람이 고찰한 대로 도취가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말에는 느린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지도'나 '느리기'라는 명사는 없고 그저 '느림보'라는 느리기의 속성을 가진 생물의 대표성만을 허용하고 있다. 느리기가 없으므로 당연히 거기에 함유될 그 무엇도, 도취든 죽음이든 망각이든, 없다.
(P.10)



  어찌 된 일인지 새로 들어선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일본치하에서 헌병 조수, 순사 끄나풀을 지낸 사람이나 면서기, 군인, 관리들을 모두 옛날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아니, 일본인들이 가고 없는 빈 자리에 몇 계급씩 높여서 그들을 재기용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남긴 광복 후 초대 정부의 국부가 자신이 광복 전의 자리로 돌려보낸 사람 가운데 마사오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아버지라는 점에다 이제 모두 망자가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지하에서 통성명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P.13)



  역사는 신화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다만 신화의 주인공은 신이고 역사는 인간이 라는 점이 다른데 격변하는 시대 교체기에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영웅이 바로 마사오였다.
(P.19)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인물로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내 생각에 인물은 나,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 만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 그는 정말로 그리운 인물이 되고 내가 그를 증오하면 그는 누구에게도 증오를 받는 인물이 된다.
(P.35)


  이야기 자체의 흥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사실의 목을 비틀고 쥐어짜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나아가 사실의 존재를 부정하면서까지 이야기에 매달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 이야기의 중독성에 한번 당해 본 사람은 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그 이야기의 그물을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 그물은 하늘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징치하기 위해 짜 놓은 그물인데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제 재주로 짠 줄 알고 좋아하다가 제 목을 그 안에 집어넣는 것이다.
(P.219)


  돌아오는 길, 고개 정상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지역은 여전히 회오리바람과 함께 피어오르는 비안개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은 눈부시도록 화창하다. 화창함은 이렇게 좋은 날씨에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의 표정 같고 비안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시치미 떼는 사람의 얼굴 같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왜 망원경을 전망대 한쪽에만 설치하는지 휴게소 주인에게 물어 볼 생각이다.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에 공평하게 설치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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