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 임홍배 / 민음사 / 494쪽
(2016. 11. 27.)



이성과 열정
학자와 예술가
양립되는 두 끝단의 방향에 서있는 인물들
우리는 왜 꼭 이들을 구분하고 분리해서 생각을 하는 것일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합친 내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당연한 걸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VS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골드문트의 애정을 일깨운 또 다른 존재인 나르치스는 수도원장보다 더 날카롭게 관찰했고 더 많은 것을 예감하긴 했으나 워낙 속을 터놓지 않는 성격이었다. 나르치스는 마치 황금의 새처럼 너무나 멋진 소년이 자기한테로 날아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 닮은데가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어두운 성격에 깡마른 체격이었다면 골드문트는 눈부시게 화사한 존재였다. 또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의 그러한 대립적 측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둘은 훌륭한 인격자였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재능과 개성은 다른 생도들에 비해 두드러졌으며, 또 둘은 숙명적으로 그 어떤 특별한 경고를 받으며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P.31)



  "골드문트. 난 너와 같은 부류가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냐. 물론 나도 말로는 하지 않은 서약을 간직하고 있지. 그런 맞아 그렇지만 단연코 너와 같은 부류는 아냐. 오늘 너한테 해줄 말이 있는데, 언젠가는 이 말이 생각날 거야. 모름지기 우리의 우정에는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나와는 다른 존재인가를 너한테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목표도 의미도 없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야"
(P.56)




  나르치스가 말했다. "자, 보라구. 내가 너보다 나은 점이라곤 단 한 가지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나는 말짱하게 깨어 있는데 너는 반쯤은 졸고 있거나 때로는 완전히 잠을 자고 있단 말이야. 내가 깨어 있다고 일컫는 사람이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자신을, 즉 자신의 가장 내면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열이나 충동 혹은 약점까지도 인식하고 처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지. 네가 나를 만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다면 바로 그런 태도를 배운다는 것이겠지. 골드문트 너한테는 정신과 본능, 의식과 꿈의 세계가 매우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너는 어린 시절을 잊어버렸지만, 네 영혼의 깊은 바닥에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갈망이 꿈틀대고 있지. 너는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말했다시피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내가 너보다 더 강해. 그런 면에서는 너보다 우월하고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하지만 다른 모든 면에서는 네가 나보다 더 우월해. 아니, 스스로 네 자신을 발견하기만
(P.72)



  나르치스가 말했다. "너 같은 기질의 사람들, 그러니까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성을 지녀서 영혼으로 느낄 줄 아는 몽상가나 시인들, 혹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보다는 거의 예외없이 더 우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그런 사람들은 말하자면 모성의 풍요로움을 타고난 존재들이야. 그들의 삶은 충만해 있고, 사랑의 힘과 체험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지. 그 반면 우리 같은 정신적 인간들은 너 같은 살마들을 곧잘 이끌어가고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충만된 삶을 전혀 모르고 메마른 삶을 살게 마련이야. 과일의 단물처럼 넘쳐흐르는 삶의 풍요로움, 사랑의 정원과 예술의 땅은 바로 너희들의 것이지. 너희들의 고향이 대지라면우리네의 고향은 이념이야. 너희들이 감각의 세계에 익사할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진공 상태의 대기에서 질식할 위험에 처해 있지. 너는 예술가고 나는 사상가야. 네가 어머니의 품에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는 셈이지. 나에겐 태양이 비치지만 너에겐 달과 별이 비치고, 네가 소녀를 그리워한다면 나는 소년을 그리워해......"
(P.74)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렇지는 않아. 나는 가야만 한다고 느끼기에, 그리고 오늘 너무나 놀라운 일을 경험했기에 기꺼이 떠나는 거야. 그렇지만 순전히 행복감과 만족감에 젖어 달려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내 생각에는 힘든 길이 될 거야 그렇지만 멋진 길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P.128)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뿌리는, 또한 어쩌면 모든 정신의 뿌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덧없이 사라져가는 것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슬픔에 빠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 자신의 가슴속에서도 우리 역시 덧없이 스러져갈 것이며 조만간 시들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술가로서 어떤 형상을 창조하거나 사상가로서 어떤 범칙을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할 때면 우리는 그 무엇인가를 거대한 죽음의 무도로부터 구해 내려고 애쓴다. 우리 자신보다도 오래 지속될 무엇인가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P.245)



  사랑의 환희가 더없이 행복한 긴장의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에 확실해졌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사멸할 수밖에 없듯이, 너무나 내밀한 고독과 슬픔에 잠겨 있는 순간도 다시금 인생의 밝은 측면에 새로이 몰입하고픈 욕구에 의해 느닷없이 삼켜지고 마는 것이다. 죽음과 쾌락은 하나였다. 사랑과 욕망을 인생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면 무덤과 사멸 또한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골드문트의 어머니는 이브였다. 그녀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죽음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녀는 영원히 낳고 또 영원히 죽이는 존재인 것이다. 그녀에게 사랑과 공포는 하나였다. 그녀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뭔가를 말해 주는 비유가 되었고 신성한 상징이 되었다.
(P.265)




  "좋은 예술 작품의 원형은 실제로 살아 있는 형체는 아니지. 몰론 예술 작품의 단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야. 예술 작품의 원형은 피와 살이 아니라 정신적인 어떤 것인지. 그것은 예술가의 영혼 속에 깃들여 있는 형상이라 할 수 잇지. 나르치스, 나의 영혼에도 그런 형상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네. 언젠가는 그런 형상들을 표현해서 자네한테 보여줄걸세.
  "바로 그거야! 이제 자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철학의 영역에 들어와 있고, 철학의 비밀 가운데 하나를 이야기한 셈일세"
(P.414)




  사상가는 인간의 이성과 그 이성의 도구인 논리가 불완전한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네. 마치 제혜로운 예술가가 자기의 붓이나 조각칼로 천사나 성인의 빛나는 본질을 결코 완벽하게 표ㅕ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듯이 말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가든 예술가든 모드 나름의 방식대로 그런 시도를 하지. 양쪽 다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일세.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선물로 받은 자신의 재능을 실현하려고 애씀으로써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을 행하는 셈이지.
(P.427)


  "자아 실현이란 대체 뭘 말하는가?"
  "그것은 철학적인 개념이지. 달리 표현할 길이 없네. 우리처럼 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배운 사람들 한테는 모든 개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은 <완벽한 존재>라는 것일세. 완벽한 존재는 곧 신이지. 그 밖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미완의 것이고, 부분적이고, 변화하고, 여러 가지가 섞여 있고,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그렇지만 신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게 아니라 단일한 존재이고, 가능성이 아니라 순전한 현실성 그 자체지. 하지만 우리 인간은 사라질 존재이고, 변화하는 존재이고, 가능성의 존재지. 우리 인간에게는 완전함도 완벽한 존재도 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잠재적인 것이 실현되고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뀔 때 우리 인간은 참된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네. 완전한 것. 신적인 것에 한 단계 더 가까워지는 셈이지. 그것이 곧 자아 실현이라 할 수 있겠지."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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