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 / 문학동네 / 242쪽
(2016. 11. 23.)



  아동 문학은 어른이 없는 사이의 어린이를 다룬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의 보호가 없으면 어린이는 생존하지 못한다. 어린이를 잘 먹이고 재우고 위험으로부터 돌봐야 하는 것은 어른의 몫이다. 그러나 어른이 항상 지켜보고 잇으면 어린이는 꿈꾸지 못하고 자라지 못한다. 어른의 마리오네트로 살아갈 뿐이다. 어린이에게 좋은 세계는 어른이 얼마쯤 눈길과 손길을 거두어도 편안하게 놀 수 있고 이것저것 마음껏 해 볼 수 있는 세계다. 좋은 아동문학에는 어른 문지기가 없다. 어린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P.4)



  좋은 동화는 감쪽같은 거짓말이다. 어른이 만들었지만 어른이 만들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어른이 지켜주고 있지만 어른이 간섭하지는 않는 태평한 섹다. 어린이들은 이런 동화를 읽으면서 비로소 어른 없는 미래를 용감하게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P.7)



  사람들은 어떤 불편하고 부족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불운하기 때문이라고 여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서 무작정 행운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전에 나오는 뜻으로만 봐도 행복과 행운은 뚜렷이 다르다. 행복은 '몸과 마음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 데 비해 행운은 '좋은 운수'를 뜻한다.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행복'은 점점 더 '행운'에 의존하는 것 같다. 어른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로또에 당첨되면 좋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아이는 '운이 없어서' 시험을 못 보았기 때문에 죽을 만큼 '불행하다'고 말한다.
(P.35)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행복은 '성취'를 '욕망'으로 나눈 값이라는 것이다. 성취(분자)를 키우거나 욕망(분모)을 줄이면 행복의 값은 커진다. 자본주의사회는 쉼 없는 경쟁을 권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든 돈을 많이 벌어 물질적 성취를 늘리든 성취를 키움으로써 행복을 키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늘리기 위한 또다른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욕망을 줄이면 당연히 행복의 값은 늘어난다. 우리는 왜 더 많은 욕망과 성취를 위해 달려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욕망과 성취인가. 약분하면 같아질 그 값을 위해 오늘 내 앞에 놓인 웃음도 챙길 여유를 없애는 것이 더 나은 삶인가.
(P.40)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잘 가르치겠다면서,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묻지 않는 어른 앞에서 어린이는 입을 잃어버린다. 이 경우 입은 오직 대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훈련된 대답은 말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입은 몸에서 사라진 기관이나 다름없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은 아이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진행된다. 소통을 무시할 때면 아무리 현명한 주장도 본건적인 통제와 다름없는 폭력이 된다.
(P.91)



  변신 이야기는 읽는 사람이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의 마음에 위력을 발휘한다. 겉모습의 변화를 매개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읽는 사람의 정신적 변화와 성장을 끌어내고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변신 이야기는 주인공의 변신 전후의 삶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독자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안전한 탈바꿈 체험이기도 하다. 변신 이야기는 우리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준다.  미래가 아직 불확실한 어린 시절에 읽는 변신 이야기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P.98)



  추리 이야기, 탐정물이 어린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리적 사고는 해방적이다. 추리는 오직 자신의 논리력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구속시키지 않을 수 있다.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누가 범인일까 파고드는 순간만큼은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추리에는 권력이나 권위가 개입하지 못한다. 타당한 추리와 부당한 추리가 있을 뿐이다. 직접 보거나 들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어린이는 어른 못지않은 관찰의 눈을 지녔다. 힘센 어른에게 꿀릴 여유가 없으니 추리의 과정에 재미있다.
(P.109)


  어린이들의 생활에서 슬픔의 자리를 '화'가 차지한 지는 꽤 되었다. 슬픔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감정이라면 화는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다. '슬픈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슬픔을 권하는 사람은 드물다. 되든 말든 일단 화를 내고 나면 "그 녀석 똥배짱이다."라는 말이라도 듣지 않는가. 얼핏 눈물이라도 비쳐서 상대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보다 똥배짱이 되는 것이 나은 세상이다. 흐느끼는 어런이는 별로 없고 떼쓰고 울부짖는 어린이들로 가득하다. 약육강식이 인간의 규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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