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장경명 / 은행나무 / 248쪽
(2016. 6. 8.)



소설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진실보다 더 진실같은 허구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숨기고 싶은 진실들을 부끄러워 한다.
댓글부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지금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이에게 소설을 읽는 이에게 주는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다.




  대체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이 운영한 댓글부대를 1세대로 본다.
  1세대 댓글부대가 조악하고 원시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논리보다는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는 점을 알랐고, 대형포털과 중소포털, SNS에 서로 달리 대응할 줄도 알았다. 이들이 주로 사용한 반복법, 강조법은 무식한 테크닉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전략 전술이다.
(P.6)



 인터넷에서는요, 올라오는 글이나 그림, 영상의 99.9%는 그냥 묻힙니다. 돈을 들이든지, 팬들이 도와주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던지 해서 처음에 어느 정도 궤도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P.32)



  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독재 국가에서는 지금도 인터넷이 그런 고발자, 감시자 역할을 해.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런가? 인터넷신문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아니지.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작,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그런 대신에 인터넷신문들과 블로거가 기존 언론이 쓰지 않던 무슨 좋은 기사를 내놓느냐 하면, 이런 거야. 누구누구 아찔한 뒤태, 남녀 생각 차이 열네 가지, 노래 따라 부르는 일본 강아지 화제......
(P.54)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추측, 잘못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래도 좋은 정보가 많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 생각들을 고칠 줄 알았어.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TV를 보는지 보라고, 채널 돌리는 것도 귀찮아서 광고를 그냥 참고 보잖아. 인터넷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P.56)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더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P.57)



  저희가 386 씹는 문화를 십 대들 사이에 일으킬 겁니다. 그게 쿨해 보인다 싶으면 금방 유행이 될 거예요. 다른 세대로 퍼지는 것도 시간 문제예요. 애들이 몇 년 뒤면 이십 대가 될 거잖아요. 대중문화에서는 사십 대가 삼십 대 따라하고, 삼십 대는 이십 대 따라하거든요. 이십 대가 핵심이에요.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