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2
조지 엘리엇 / 이봉지, 한애경 / 민음사 / 445쪽
(2016. 3. 14.)




  근심의 첫 충격에 동반되는 바로 그 동요에는 결딜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마치 예리한 고통이 가끔 자극되어, 순간적으로 강렬한 흥분을 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변화된 삶이 다른다. 슬픔은 김이 빠져버리고, 더 이상 고통에 맞설 만큼 강렬한 감정도 없고, 기대할 것 없이 지루한 하루하루가 반복되며, 시련도 지루한 일상사가 된다. 바로 이때 절망이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때 영혼의 절대적인 갈망이 느껴지고, 눈과 귀는 뭔지 알 수 없는, 인내에 만족을 줄 수 있는 우리 존재의 비밀을 찾느라 바짝 긴장하게 된다.
(P.19)



  한 개인의 역사란 아무리 그 사람의 성격을 잘 안다 하더라도 결코 점쳐질 수 없다. 우리 인생의 비극은 결코 완전히 내적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격이 운명이다." 노발리스는 이렇게 말했지만 그것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성격이란 결코 우리의 운명 전체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생각이 너무 많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위대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장수하고 삼촌이 요절했다면 그는 오필리아와 결혼하여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P.225)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빠져나와 안전지대에 도달했지만 아지깍지 그 정열의 기억을 잃거나 관조에만 빠지거나 하지 않는 중년이란 일종의 세속적인 성직자와도 같다. 인생의 경험으로 무장한 그들은 비틀거리는 젊은이들과 내면적 절망의 희생자에게 안식을 주고  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청춘의 어느 순간, 그와 같은 성직자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물론 그 성직자는 정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종교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아무런 도움 없이 열아홉 살의 어려움을 혼자서 뚫고 나가야 한다.
(P.280)



  인생이란 참 어려워요. 나도 가끔은 우리의 가장 강렬한 감정을 따르는 것이 옳게 느껴져요. 하지만 그런 감정은 우리가 이전에 맺었던 관계들과 끊임없이 상충하지요. 그런 감정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의존하게 했던 바로 그 관계들은 두 동강으로 잘라버려요. 만일 인생이 낙원에서처럼 쉽고 단순한 것이라면.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마음이 끌렸던...... 내 말은 사랑이 오기 전에 이미 의무가 생겨나 있지 않았다면 사랑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가 되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인생에는 우리가 포기해야만 할 것이 있어요. 때론 사랑을 포기해야 하죠.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아요. 때론 사랑을 포기해야 하죠.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아요. 그렇지만 하나만은 분명해요.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내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죠.
(P.305)



  열정과 의무 사이의 가변적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제 체념이 불가능한 단계, 즉 죄라고 생각하여 맹렬히 저항했던 자신의 열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단계에 도달하였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 경우, 우리에겐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만능의 해결책이 없다. 궤변론자들은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세세하게 구별하려는 그들의 생각은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진리를 나름대로 포함하고 있다. 물론 궤변론자들의 논리는 이 진리를 마음대로 왜곡하는 까닭에 진리라기보다는 진리의 허상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진리란 바로 개인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도덕적 판단은 거짓되고 공허하다는 사실이다.
(P.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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