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 강유원 / 이론과실천 / 132쪽
(2016. 03. 11.)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기조(Guizot),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은 이 유령에 대항하는 신성한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정권을 잡고 있는 적들에게서 공산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반정부당이 어디 있겠으며, 공산주의라고 낙인찍는 비난을 더 진보적인 반정부 분자들과 반동적인 적에게 도로 던져주지 않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사실에서 다음 두 가지가 이끌어져 나온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들에 의해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견해와 자신들의 목적 그리고 자신들의 경향을 전 세계에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공산주의의 유령이라는 소문에 당 자체의 선언으로 맞서야 할 때이다.
  이러한 목적에서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 모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로 발표될 다음과 같은 선언을 기초하였다.
(P.7)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인과 노예, 로마의 귀족과 평민, 중세의 남작과 농노, 동업조합회원과 직인, 간단히 말해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맞섰으며, 더러는 은밀하게 그리고 더러는 공개적으로 투쟁했는데, 이 투쟁은 언제나 사회 전체의 혁명적 변형이나 투쟁하는 계급들이 공동으로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P.8)



  부르주아 시대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상황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동을 통해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된다. 견고하고 녹슨 모든 관계들은 오래되고 존귀한 생각들 및 의견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것들도 모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신분과 관련된 것들과 정체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증발해 버리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하며 마침내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의 지위와 서로의 관계를 냉철하게 응시해야만 한다.
(P.13)



 자신의 처분을 사회에 맡긴 생산력은 더이상 부르주아적 소유관계의 촉진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산력은 이 관계에 비해 강력해져 있으며, 이 관계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그리고 생산력이 이 방해를 극복하면 곧바로 부르주아사회 전체를 무질서로 끌고가며, 부르주아적 재산의 존재를 위협한다. 부르주아적 관계는 스스로 만들어낸 부를 포용하기에는 너무
좁은 것이 되어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무엇으로 공황을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생산력을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고 오래된 시장을 더 근본적으로 착취함으로써.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더 전면적이고더 강력한 공황을 준비하고 공황을 예방할 수단을 감소시킴으로써.
  부르주아 계급이 봉건제를 쓰려뜨릴 때 사용한 무기들이 지금은 부르주아 계급 자신을 겨누고 있다.
(P.17)



  공산주의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유 철폐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철폐이다.
그러나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유 재산은 계급 대립, 즉 일부가 다른 일부를 착취하는 것에 의거하는, 생산물의 산출과 취득에 관한 최후의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하나의 표 현으로 집약할 수 있겠는데, 사유 재산의 폐지가 바로 그것이다.
(P.29)



  《공산당 선언》100주년이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세계 문학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위대한 천재성을 보여주는 이 팸플릿은 그 신선함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경탄케 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치 어제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이 젊은 저자들(마르크스는 29세였고, 엥겔스는 27세였다)은 그들 이전의 누구보다도, 그리고 어쩌면 그들 이후의 어떤 이들보다도 더 심오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P.105)



 마르크스에 의해 근래에야 발견되었고《선언》에서 놀라운 솜씨로 적용된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은 현실의 검증과 적대적 비판의 공격들을 충분히 견디어냈다. 오늘날 이는 인간 사상의 가장 귀중한 수단들 중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역사 과정에 대한 다른 모든 해석들은 과학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우리 시대에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을 소화하지 않고서는 혁명 투사뿐만 아니라 박학한 정치 평론가조차도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P.106)



  사회의 경제적 발전의 특정한 단계인 자본주의에 대한 해부학은 마르크스에 의해《자본》에서 최종적 형태를 부여받았다. 그러나《선언》에도 장래 분석의 주요 방향들이 견고하게 그려져 있다.
(P.107)



  역사의 진행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범한 오류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미래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 데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성숙도를 과대평가한 데에서 연유한다. 1848년의 혁명은《선언》이 짐작한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되지 않았으며, 독일에게 장래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상승의 잠재력을 열어주었을 뿐이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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