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 푸른나무 / 400쪽
(2016. 2. 5.)

 

 


  이 책은 군사독재 정관과 양식 없는 보수주의자들이 교과서와 매스컴을 제멋대로 주물러 국민에게 주입한 맹목적 반공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서 여기 실은 글들이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주의를 은근히 찬양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나치즘을 벌거벗은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이라 단죄하면서도 스탈린이 저지른 독재와 야만 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거나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 양 끌어안고 있다"는 식의 비판도 다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P.4)

 

 

  서로 다른 사상과 견해를 자유롭게 토론함으로써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민주주의를 가굴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 사회에 살게 된다면 얼치기 역사학도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같은 책이 서점에 나와 앉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책이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진심으로 슬퍼한다.
  역사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정치권력이 제멋대로 통제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을 억압하는 그릇된 풍토가 사라져 아무도 이 책이 전하는 '지적 반항'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P.6)

 

 

드레퓌스사건이 사회문제로 번진 것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가 결백하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공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고, 증거가 뚜렷하지 않은데도 유죄를 선고했다는 데 있었다. 만약 절차가 공정했다면, 그리고 증거에 따라 판결을 내렸다면, 드레퓌스는 첫 번째 재판에서 풀려났을 것이다. 의심이 간다고 해서 사람을 함부로 잡아 가두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하지 않고, 게다가 뚜렷한 증거도 없이 감옥에 보내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꽃필 수 없다.
(P.32)

 

 

  역사는 언제나 우연한 사건으로 뒤죽박죽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우연한 사건들 가운데서도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라예보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제국주의전쟁은 현대문명이 지닌 추악한 속살을 발가벗겨 보였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인간이 과학기술로 무장하고 벌인 현대전쟁은 칼과 창을 들고 하던 옛날 전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참혹한 재앙을 불러들였다. 그 전쟁은 '인간을 말살하는 공장'이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더한 전쟁을 또 한번 벌였고,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조국을 위혀'라느니 어쩌니  하는 달콤한 말로 민중을 현혹하여 싸움터로 내몰려는 집단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과학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정신에는 진보가 정말 없는 것일까?
(P.79)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사회의 생산능력을 눈부시게 발전시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대공황과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경기변동은 인간이 이 제도를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대공황은 사람들이 인간을 위해 상품을 생산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망각하고, 마치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양 도취되어 있던 바로 그때 세계를 덮쳤다. 만약 인간이 자기가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하는 제도를 아무 비판 없이 예찬하고 무작정 섬기는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또다시 대공황과 같은 재앙을 불러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P.144)

 

 

  나치 정부가 광적인 침략전쟁에 열을 올리면서, 친위대와 관료기구 꼭대기는 인종이론 광신자로 가득 차 드디어 유태인 절멸정책을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1천 백만 유럽 거주 유태인은 나치가 거의 온 유럽을 점령함에 따라 무두 사형된 운명에 놓였다. 노인과 환자, 부녀자와 어린이들은 동유럽 각지의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살해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은 노동력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강제노동을 한 다음 가스실로 끌려갔다. 옷과 소지품을 모두 빼앗긴 뒤 살해된 벌거벗은 시체들은 재빨리 금니가 뽑힌 다음 소각실에서 태워졌다.
  독일 국민은 이같은 참상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치 만행에 찬성한 적도 만대한 적도 없었다. 연합국 정부조차 실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런 소문을 믿지 않을 정도였다. 이 끔찍한 대학살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 가운데서도 가장 잔혹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현대문명과 원시적 광기가 결합하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초래하는가를 인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전세계에 흩어진 유태인들은 이에 치를 떨면서 팔레스타인 땅에 유태인의 나라를 세우려는 시오니즘운동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 결과 유태인을 박해해 본 일이 없는 아랍 민족이 이유 없는 박해를 당하는 역사의 악순환을 낳았다.
(P.216)

 

 

  말콤 X는 할렘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흑인의자주와 자존, 인간성이 꽃피는 빛나는 미래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흑앤 대중과 말콤 사이의 유대와 결합은 아직도 너무 취약하여 그의 날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내쏘는 증오와 비난의 열기를 견뎌 내지 못했다. 백인들은 말콤의 생애와 사상을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 버렸다. 3천만에 가까운 그의 동족들 역시 아직도 미국 문명의 뒤안길에서 그때나 다름없는 가난과 절망, 타락 한가운데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금도 수십 수백만의 '디트로이트 레드' 말콤이 자라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세계경찰을 자임하면서 다른 나라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라고 큰소리를 친다. 옿은 말이다. 하지만 정말 떳떳하게 그런 말을 하려면 먼저 '제 눈의 대들보'부터 뽑아 내야 할 것이다.
(P.328)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두어 일본이 군사대국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경우다. 이런 경우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가장 먼저 피 흘릴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에게 배울 것은 배우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일본제국주의 찌꺼기, 다시 말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주의, 일제경찰의 유산인 고문과 인권유린, 친일 친미 사대주의, 분별 없는 왜색문화 모방과 일본에 의존하는 경제구조 등을 깨끗이 씻어 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생존과 독립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날 외무부 당국자들은 "과거 역사문제가 앞으로는 외교현안이 되지 않을 것"아라고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런 외무부 당국자들의 '장님 행세'에 현혹된다면 또 한 번 '경술국치'를 불러들일 뿐이다.
(P.348)

 

 

  흔히들 현대를 북활실 성의 시대라고 한다. 문명 사회가 21세기에 어디로 나아갈지를 예측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제도와 정치체제에 관한 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시점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사회주의 이상을 결합한 경제체제다. 혼합경제, 복지국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시장기능을 무시하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는 물론이요. 기회균등과 공정한 경쟁, 사회정의와 생활안정을 보장하지 않은 채 약육강식과 같은 자본주의 경쟁체제 역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P.398)

 

 

  부모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지고,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는 바로 그 출발점부터 '출발 기회의 불균등'에 편이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자기 책임이 아닌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돈 많은 사람과 힘 없는 사람에게 법을 다르게적용하는 그런 사회는 오래 살아 남을 수 없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면 올바른 의견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힘 있는 집단의 압력 때문에 그릇된 법과 제도를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몰락과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의 모습이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은 비효율적인 경제체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안팎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과 비판을 봉쇄하는 '닫힌 사회'였기 때문이다. 닫힌 사회는 그 사회의 밑둥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들기 전까지는 그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다.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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