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강신준 / 사계절 / 240쪽
(2016. 01. 16.)

 


  <자본>이 교환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까지 경제학의 본디 이름은 'political economy'였습니다. 그런데 <자본>이 푼 해답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고 경제학의 주체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리고 이름까지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경제학의 <자본>이 푼 해답을 담고 있는 경제학과 그 해답을 기피한 경제학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자를 노동자(또는 개미) 경제학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자본가(혹은 베짱이) 경제학이라고 부릅나다.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 자본가를 부르주아라고도 하기 때문에 각각 프롤레타리아 경제학, 부르주아 경제학이라고도 합니다. 앞서 제테크의 경제학과 <자본>이 전혀 다른 경제학 책이라고 했는데 이제 그 차이점을 하나 더 알게 된 셈이군요. 제테크의 경제학은 바로 부르주아의 경제학입니다. 물론 <자본>은 프롤레타리아의 경제학이고요.
(P.69)

 


  자본주의에서도 도구는 진화하고, 도구의 진화는 당연히 노동시간을 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데만 사용되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인가요? 앞에서 임금은 개미들의 생계비로서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합한 것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도구가 발달할수록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개미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필수품의 가격을 떨어드리는 데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혼동하지 말라고 마르크스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 생산력의 발전을 통한 노동의 절약은 노동일(노동자들의 하루 노동시간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입니다.)의 단축을 목적으로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일정 상품량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단축을 목적으로 할 뿐이다.(1권 447쪽)
(P.111)

 


  생활필수품의 가격 하락으로 개미의 몫을 줄임으로서 베짱이의 몫을 늘리는 방식에는 처음부터 전제가 있습니다. 개미와 함께 나누어야 할 부의 전체 크기, 즉 개미의 총 노동시간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초 도구의 진화가 개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베짱이에 의해 이루어지고 베짱이의 목적은 자신의 몫을 늘리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구조에서 도구의 진화가 줄이는 노동시간은 오로지 개미의 몫을 줄이는 데만 사용될 뿐, 개미의 총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분명히 도구의 진화가 이루어지는데도 개미의 노동시간이 전혀 줄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P.113)

 


  자본주의에서 부자가 되려면 반드시 타인의 노동을 빼앗아야 하는데, 모든 개미들이 자본가가 되어 버리면 노동을 빼앗을 타인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개미가 부자(또는 자본가)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생산자 협동조합이나 종업원 지주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미 가운데 일부가 자본가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개미가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닙니다.
(P.125)

 


  개미는 자신의 노동으로 자본을 만들어 주는 셈이고, 자본은 스스로 자본을 만드는 셈입니다. 자본이 계속해서 자본을 새끼치는 방식, 바로 그것이 베짱이의 대물림 속에 숨겨진 인위적인 장치입니다. 자 이제 베짱이가 대물림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치는 얼마나 오래 작동하는 것일까요? 이 장치는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장치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장치의 결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동시에 그 결함을 고칠 방법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자본>이 판도라의 상자인 까닭은 바로 이 결함과 그것을 고칠 방법을 모두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P.131)

 


  임금이란 원래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입니다. 가격은 쌍방간에 결정되는 것으로, 한 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결정되는 교환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은 개미와 베짱이입니다. 즉 임금은 개미의 의사를 무시하고 베짱이가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압니다. 그럼에도 베짱이는 자신의 대물림을 위해 임금을 마음대로 결정해야 합니다. 기술자들은 먼저 임금의 모순에 두 가지 장식을 달아 놓았습니다. 하나는 임금의 명칭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의 지불 시기입니다.
  먼저 임금의 명칭을 보면 아주 다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급, 일급(일당), 월급, 연봉 이렇게 다앙햔 임금의 명칭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모두 노동시간을 타나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노동시간은 개미들이 일하는 시간이지 개미들이 임금으로 받아 가는 노동시간이 아닙니다. 임금의 명칭이 이처럼 노동시간 전체의 길이를 나타내면 개미들은 자신의 노동시간 가운데 일부를 베짱이의 몫으로 빼앗긴다는 사실을 쉽게 잊게 됩니다. 개미는 자신의 총 노동시간을 남김없이 모두 임금으로 돌려받는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베짱이가 챙겨가는 몫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그 점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노동의 가치(임금)는 언제나 노동의 가치생산물(총 노동시간)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 왜냐하면 자본가는 언제나 노동력을 그 자신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오랫동안 사용하기 때문이다.  (1권 740쪽)
  개미의 착각을 더 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장식은 임금의 지불 시기입니다. 임금은 반드시 개미가 자신의 몫은 물론 베짱이의 몫가지 모두 하고 난 다음에야 지불됩니다. 즉 임금은 개미가 모든 노동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후불 형태로만 지불됩니다. 사실 개미는 자기가 벌어 온 돈 가운데 일부를 임금우로 돌려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짱이는 개미가 자신의 몫가지 포함한 돈을 벌어 오면 그중 일부를 개미에게 임금으로 되돌려주는 것이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는 늘 자본가에게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미리 꾸어 주는셈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의 가격에 대해 지불을 받기 전에 그것을 구매자로 하여금 소비하게 하며,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항상 신용 대부를 해 주는 셈이다.(1권, 259쪽)
  이런 장식들 때문에 개미들은 자신의 임금에 의문을 품지 않고 그것이 마땅한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베짱이가 개미의 노동 가운데 일부를 빼앗아 간다는 사실은 감추어져 버리죠.
(P.136~141)

 


  마르크스의 <자본>이 인류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까닭은 진실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임금을 개미의 총 노동인 양 혼동시킴으로써 베짱이의 몫을 감추려 했다는 사실과, 개미의 총 노동시간 속에는 개미가 받아 가는 임금 외에도 베짱이가 빼앗아 가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결국 <자본>에 의해 결함이 드러난 이들 장치는 벌써 상당 부분 교체되었습니다. 개미들은 <자본>이 일러 준 방법에 다라 이들 장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은 베짱이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미와 베짱이가 흥정을 통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개미와 베짱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흥정을 우리는 '단체 교섭'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단체'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는, 하나의 베짱이가 다수의개미를 고용하므로 베짱이와 흥정하기 위해서 개미들은 집단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본>의 내용이 이미 공개되고 따라서 이들 장치의 결함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유럽의 주요 나라들에서는 임금이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예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머지 노동자들 중에서 단체 교섭을 제대로 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앞으로 <자본>에 담겨 있는 진실이 개미들에게 충분히 알려지기만 하면 우리나라도 분명 유럽의 주요 나라들을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P.145)

 


  마르크스는 위태롭게 운행되는 버스에서 승객들이 내리지 못한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운행 중인 버스에서 내리려면 버스가 위태롭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버스 승객들인 원래 저마다 가야 할 목적지들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려면 자기가 가야 할 목적지로 태워다 줄 다른 대안이 마련되어야 했던 것이지요. 버스가 위태롭다고 해서 아무 대책 없이 그냥 내리기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P.191)

 


  민주주의는 개미들을 사회적 집단으로 조직한 다음 교환이라는 경제 법칙을 통해 자본주의를 점차 사회화하면서 '자유의 나라'로 변화시켜 나갑니다. 민주주의라는 지렛대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이 잘 조직된 사회일수록 자유의 나라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앞 장에서 자유의 나라에 훨씬 가까이 다가섰다고 한 북유럽의 여러 나라가 바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잘 발달된 나라들입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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