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 서병훈 / 책세상 / 254쪽
(2016. 01. 11.)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읽는 이의 영혼을 울릴 것'. 이것이야 말로 고전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아닐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그가 살았던 영국을 비롯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독자들을 겨냥해 쓴 것이다. 그런데 밀의<자유론>을 곰곰이 읽다보면 자꾸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마치 밀이 2000년대 초엽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 특히 한국의지식인들을 향해 이 책을 준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밀의 <자유론>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경구로 가득하다.
(P.8)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확신이 넘칠 수 있을까' 의아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할 정도다. 사회가 어지럽다 보니 독선에 빠진 사람들을 나무라는 글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글조차 대개는 아집과 주관 사이를 맴돌고 있는 것 같다. 독선이 독선을 탓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주의의 시대를 살면서도 모두가 불만스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과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향수가 교차되는 현실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자유론>은 이 모순율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자유론>에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P.9)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정치적 독재를 방지하는 것 못지않게 긴요하다.
(P.25)

 


  나는 이 책에서 자유에 관한 아주 간단명료한 단 하나의 원리를 천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사회가 개인에 대해 강제나 통제 - 법에 다른 물리적 제재 또는 여론의 힘을 통한 도덕적 강권-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든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당사자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거나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옳은 일이라는 이유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슨 일을 시키거나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선한 목적에서라면 그 사람에게 총고하고, 논리적으로 따지며, 설득하면 된다. 그것도 아니면 간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강제하거나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을 억지로라도 막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고 말 것이라는 분명한 근거가 없는 한, 결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
(P.32)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의견이 본인에게는 모를까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고 따라서 그 억압이 그저 사적으로 한정된 침해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행위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게까지 - 그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 -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악을 저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P.44)

 


  자기 생각에 명확하게 맞설 수 있는 모든 의견들에 대해 소상하게 잘 파악하고 이런저런 반박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사람 - 즉 자신에 대한 반대 의견이나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기보다 그것을 자청해 나서고,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수많은 비판을 봉쇄하지 않는 사람 -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판단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P.51)

 

 

  고대의 가장 위대한 웅변가라고 할 수 있는 키케로는 자기 문제에 대해 하는 것만큼 이나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의주장을 이해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진리를 찾고하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변론술을 연마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꼭 따라야 한다. 그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대해서만 아는 사람은 실로 그 분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이 제시하는 논가가 상당히 탄탄하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쉽게 공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자세히 알고 그 장단점을 꿰고 있지 않으면 왜 자신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 설명하기 어렵다.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더라도, 자기 편 이론가들이 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나름대로 각색해서 정리한 근거 위에서 듣게 되면 별다른 효과가 없다. 그렇게 해서는 반대 쪽 주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상대방이 왜 그런 주장을 펴는지 그 핵심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온 힘을 다해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강조하는 내용 가운데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의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대하는 진리를 결코 얻을 수 없다.
(P.76)

 


  오늘날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 심지어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도 그들의 결론이 타당할지 몰라도, 그들이 내세우는 논거에 따라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마을 할 수밖에 없는지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도 잘 모를 수 있다. 자신의 주장 가운데 일부가 사실은 상대방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모른다. 그래서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측면이 알고 보면 같은 내용을 담고 있고,  따라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서 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저울의 추를 움직이듯 어떤 문제를 놓고 망설이는 사람의 생각을 확정해주는 진리, 정통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특정 판단을 내릴 때 따르게 되는 그런 진리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진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두 주장에 똑같이 귀를 기울이고, 각각의 가장 강력한 논거를 편견 이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덕과 인간의 문제에 대해 진실한 지식을 얻으려면 이런 자세가 필수적이다.
(P.77)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은 기본적으로 철학과 인생의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부정형 질문으로 구성된다. 변증법은 어떤 문제에 대해 그 본질은 모른 채 그저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만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스스로의 무지를 깨달은 뒤 그 의미와 논거를 확실하게 파악한 바탕 위에서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된 최상의 기법이었다.즉 학생이 자신의 의견과 그와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 자신의 논거는 강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은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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