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한 걸음

안나 / 박윤정 / 미래인 / 256쪽
(2015.12.09.)

 

 


  엄마의 손은 모래처럼 거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엄마 손은 언제나 거칠었다. 아침이면 엄마는 손으로 우리의 잠든 얼굴을 어루만지고, 이마와 뺨을 쓰다듬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일어나야지. 학교 갈 시간이야."
  엄마는 손은 좀체 쉴 틈이 없었다. 엄마는 손이 곧 당신의 삶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손이 책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만 보고 싶어 했다. "이걸 쓰고 살아야 해." 당신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손이 너무 혹사를 당해서, 우리의 손은 엄마 손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P.239)

 

 

  엄마의 손을 꼭 감싸 쥐고 함께 산책을 하다 보면, 우리가 어렸을 적에 느꼈던 엄마의 손힘이 세월 속에서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나는 엄마의 손을 오므려 잡은 다음, 하나 둘 엄마의 손가락들을 펴준다. 그러면 엄마의 손금들이 하늘을 향해 스스로 이야기한다. 이것들은 세월과 삶의 역사가 남긴 자취라고,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손금들과 숱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얻은 손금들을 분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분간할 수 있다.
  삶의 역사가 담긴 이 손금들을 더듬다 보면, 이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이 상처들을, 베인 자국들을 지워버리고, 갈라진 잔금들도 메워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엄마의 손을 감싼다. 그러곤 꼬옥 두 손을 움켜쥐고 기도하듯 말한다.
  "이 상처들을 다 지워버리고 싶어요."
  엄마가 부드럽게 손을 뺀다. 잠시 못 박힌 살갗을 바라보다가,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영주야, 이건 내 손이야."
  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고는 엄마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른다. 우리는 계속 해변을 따라 걷는다.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