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문학동네 / 2009 / 606쪽
(2015. 04. 06.)

 

 

 

 콘스탄틴 레빈은 형을 해박한 지식과 교육을 겸비한, 고결이라는 말의 가장 높은 의미에 들어맞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활동력이 부여된 훌륭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이를 먹고 보다 가깝게 형을 알게 될수록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기에게는 전혀 없다고 느껴왔던 이 만인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활동력이라는 것이 실은 특출한 면모가 아니라 거꾸로 어떤 결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는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를 비롯해서 사회적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정'이나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인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일임을 이성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 하나로 얽매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층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고찰에서 더욱 레빈의 깨달음을 확고하게 한 것은 그의 형이 민중의 행복이니 영혼의 불멸이니 하는 문제를 사고하는 태도가 장기의 승부라든가 새로운 기계의 치밀한 구조를 연구할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데 있었다.
(P.12)

 

 

  "그 사람은 옳다! 옳다!" 학 그녀는 중얼거렸다. '물론 그 사람은 언제나 옳다.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다. 그 사람은 관대하다! 그렇다. 비열하고 추악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난 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신앙심이 두텁고 도덕적이며 정직하고 총명하다고,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그 사람들은 그가 지난 팔 년 동안 얼마나 내 생명을 압박했는지, 내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얼마나 압박했는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살아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그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가 매사에 날 모욕하고 자기 혼자서 만족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난 애쓰지 않았는가, 내 삶의 의의를 찾아내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지 않았는가?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해보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미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됐을 때에는 아들을 사랑하려고 해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때가 왔다. 난 더이상은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112)

 


  "나도 성공이 없이는 살 가치가 없다는 둥 얘기하지는 않아. 그러나 지루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어. 물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난 스스로 선택한 활동권 안에서는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설혹 어떤 종류일지라도, 내 손아귀에 들어온 권력은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의 수중에 있는 것보다는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해." 이처럼 자신의 성공에 대한 의식을 뚜렷이 드러내며 세르푸호프스코이는 말했다. "그러니까 권력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도 한층 더 만족하는 거야."
(P.146)

 


  여자라고 하는 것은 남자들의 활동에서 크나큰 장애물이야. 여자를 사랑하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는 건 어려워. 그러나 그런 장애 없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이 꼭 하나 있어. 바로 결혼이라고 하는거야.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졌을 때뿐이야. 그리고 이것이 결혼이야. 난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느꼈지. 말하자면 갑자기 손이 자유로워졌으니까.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 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있는 날에는 손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P.150)

 


  그녀는 이제 전혀 그가 처음 보았을 무렵의 그녀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쁜 쪽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턱 퍼져버렸고, 장금 전 그 여배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는 얼굴에 미모를 찌그러뜨리는 앙칼스러운 표정이 나타날 정도였다. 그는 아름다운 꽃을 사랑한 나머지 꺾어서 못쓰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겨우 그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제는 자기의 수중에서 시들어버린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사랑이 훨씬 강렬했었고 국디 원한다면 자기의 심장에서 그 사랑을 뽑아내버릴 수도 있으리라고 느꼈던 예전보다도, 오히려 그녀에 대해 조금도 사랑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한 지금에 와서야 자기와 그녀와의 관계를 도저히 깨뜨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242)

 


  "너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 옳은 말입니다만, 내가 미워하고 있는 자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P.313)

 


  한편 브론스키는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완전히 실현됐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곧 그 욕구의 실현이라는 것이 자기가 기대했던 행복의 산에서 겨우 한 알의 모래를 자기에게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실현은 행복이란 희망의 실현이라느니 하며 사람들이 흔히 하고 있는 그 영원한 착오를 그에게 드러내 보였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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