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리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박형규 / 문학동네 / 2009 / 464쪽
(2015. 03. 14.)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P.11)
스테판 아르카디아치는 정치적 지론이나 견해를 자기가 직접 선택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이나 견해가 자연스레 그한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마치 그가 모자나 프록코트의 스타일을 고르지 않고 여느 사람들이 입고 있는 그대로 따라 입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상류사회에서 생활하는, 또한 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심적 활동에 대한 요구를 갖게 된 그에게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마치 모자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결한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자유주의적 주장을(그 주위의 대다수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품고 있던 보수적인 주장 이상으로) 존중하고 있는 것에 어떤 이유라도 있다면, 그가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다 현명한 것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의 생활양식에 한결 잘 맞았기 때문임에 불과하였다.
(P.22)
세상에는 자기의 운좋은 경쟁자를 만나면 언제나 상대가 지닌 일체의 장점을 외면하고 그저 단점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과, 그와는 반대로 경쟁자에게서 자기보다 뛰어난 구석을 발견하려는 생각으로 마음이 옥죄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저 장점만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P.106)
"아아, 당신 나이 땐 정말 행복하지요." 안나는 계속 했다. "나도 마치 스위스의 산줄기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그 하늘빛의 안개를 기억하고 있고 또 알고 있어요. 그 안개는 바로 유년 시절이 끝나가는 그 행복한 시기에 온갖 것을 가리우고 있죠. 그러나 그 거대하고 즐거운 세계에서 나오면 앞길은 차츰차츰 좁아져요. 겉으론 밝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외길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우리는 누구나 다 이런 길을 지나오게 마련이죠."
(P.150)
"너도 알겠지만, 자본은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노동자와 농민은 모두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데다가 아무리 뼈가 녹아나게 일을 해도 그 가축 같은 상태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게 돼 있단 말야. 사실 노동으로 인한 모든 수익이라는 것은 그들이 처지를 개선하고 자기들을 위해서 여가를 얻고, 그 결과로 교육도 받는 데 쓰여야 하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이윤이라는 게 모조리 자본가들에게 수탈당하고 있지 않은가 말야. 이처럼 오늘날의 사회는 그들이 일을 할수록 상인이나 지주 들의 배는 살찌지만 그들 자신의 영구히 노동하는 가축으로 지내고 마는 제도로 형성되어버렸단 말이야. 그래서 이런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지."
(P.178)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우리 두 사람은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든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되든지 둘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P.278)
"아녜요, 당신은 잘못 알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의 싸늘한 얼굴을 절망적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마랬다. "당신은 잘못 알지 않았아요. 난 절망했었어요.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난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구분을 생각하고 있어요. 난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난 그분의 애인이에요, 난 당신을 견딜 수가 없어요. 난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미워하고 있어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마차의 한쪽 구석에 몸을 던지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P.416)
그녀는 자기가 새로 알게된 것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되고 싶었던 대로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위선이며 자기기만 없이 그녀가 오르고 싶어했던 그 높은 경지를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걸 그녀는 통감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슬픔이며 병이며 죽음의 지경에 이른 사람들의 세계에서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하여온 그 노력도 갑자기 고통스럽게 여겨져서 한시바삐 맑은 공기속으로, 러시아로, 언니 돌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옮겨갔다는 예르구쉬오보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P.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