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365
학교도서관저널 선정위원회 / 학교도서관저널 / 400쪽
(2015. 02.21.)
<그림책 365>는 하루에 한 권씩 1년 동안 그림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그림책 안내서입니다. 알맞은 시기에 읽을 만한 그림책을 찾아내는 수고로움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골라보았습니다.
몇가지 잣대를 세웠습니다. 먼저 열두 가지 주제를 정했습니다. 달마다 주제를 정하고 그 안에서다시 주별 주제를 정해나갔습니다. 두 번째로는 국내외 작가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였습니다. 국내외 명망 있는 작가들의 작품,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성 작가들, 가능성 있는 신인들 작품들을 고루 배치하려고 애썼습니다. 세 번째로 2000년 이후에 나온 그림책들을 소개했습니다. 그 이전에 나온 책들은 이미 여러 매체에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새로운 책들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P.17)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은 좋고 나쁨의 개념을 두지 않은 책들입니다. 그 시기에 학교에서, 가정에서, 아이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어느 연령대 사람들에게나 건네고 싶은 책들이란 뜻입니다. 두 달여 밤잠 설쳐가며 아픈 눈을 비벼가며 잔칫상에 어떤 책을 올려놓아야 할까 고심을 거듭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더라도 모두를 마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어느 주제에도 들지 못해서, 작가가 겹쳐서 출판사 겹쳐서 빠진 책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P.19)
외국 그림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림책이 성장하려면 경젱적으로나 시각문화적으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준비된 독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그림책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용자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의 30~40대는 10대 시절부터 컬러텔레비전을 보고 자랐다. 현재 그림책의 주된 구매자일 30대 여성이라면 더 일찍 텔레비전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20대가 되어서는 영화 주간지 <씨네21>이나 정성일의 <KINO> 같은 영화잡지를 즐겼다. 이념 논쟁이 시들해진 199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영화는 현대인의 장난감이자 교양이 아니었던가. 젊은이들의 지적 수준은 문학이 아니라 영화로 평가되었고 문화평론가보다 영화평론가, 소설가보다 감독이 되고 싶어했다. 지금의 30~40대를 한국사회의 첫 영상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이런 배경 하에서다.
(P.23)
그림책은 문자에 익숙한 어른들에게 심심하거나 어렵다. 그림책의 글이 참으로 단순하고 심심해서다. 구구절절한 맛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을 함께 보는 책이다. 때문에 글은 간결할지라도 그림층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문자에 익숙한 세대는 그림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글에 주제가 있다면 그림에도 주제가 있고 글에 플롯이 있다면 그림에도 독자적인 플롯이 있다. 이걸 함께 봐야 행복하게 그림책을 만날 수 있다. 어른들의 세계는 언어의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어른들의 논리에 억눌린 아이들의 무의식을 포착하여 보여주는 것이 그림책의 세계다.
(P.24)
사실 그림책의 매력은 그림과 글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만 있는 책이나 그림만 있는 화집에 비해 그림책은 읽는 재미가 더 크다. 그림이 표현하는 내용과 글이 표현하는 내용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해석이 가능성을 풍부하게 열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연구자는 한 권의 그림책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이 보여주는 이야기, 글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림과글이 상호작용하면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 그런데 이 세 갖 모두 그림책을 읽는 데 유요한 방법이다. 독자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P.197)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잠자기 전 불을 끄고 누었을 때가 아닐까.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잠자는 시간이 다른 나라 어린이들보다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청소년들만 공부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영어 조기교육이니 뭐니 해서 어린아이들도 바쁘다고 한다. 또 어른들이 늦게까지 TV를 보니까 어린이들도 덩달아 잠자리에 늦게 들게 된다. 잠을 많이 자야 키가 크고 건강해질 텐데 이렇게 되면 잠이 부족해서 어린이들도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짜증이 날 것이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한한 공상의 세계에 빠질 시간이 부족하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보겠다든지 하는 도전의식이 생길 리 없다.
어린이들에게 충분히휴식할 시간을 주고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은 어린들의 임무다. 여기에 어린이들이 상상과 모험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좋은 그림책을 읽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P.206)
어린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그림책은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눈앞에 닥친 현실에 급급해 살아가기 바쁘다면 우리 삶은 의미 없고 무미건조하기만 할 뿐이다. 순수한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신기한 세계, 그 잃어버린 세계에 눈을 뜬다면 삶의 새로운 의미와 활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P.207)
그림책은 문자언어에 해당하는 글과 시각언어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런데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이 빚어내는 효과는 시너지 효과에 비유될 만큼 강력하고 다채롭다.
글은 일반적으로 선적이며 서술의기능을 담당한다. 반면 그림은 오히려 동시적이며, 묘사나 재현 기능을 담당한다.
그림은 글처럼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와 같은 통상적인 읽기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정한 읽기방식을 전제하는 글과 달리 그림을 볼 때 독자는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부여받게 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시간성은 글이, 공간성은 그림이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림책을 이렇듯 글고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기호체계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글작가와 그림작가 각기 다른 기능의 글과 그림을 토대로 전체 서사를 엮어가는, 치밀하게 고안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림책은 의사소통 방식이 서로 다른 글과 그림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그 어떤 예술보다도 역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림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이 역동성은 이렇듯 서로 다른 글과 그림이 개별 그림책 내에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P.284)
그림책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매력적인 매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기라도 하듯, 어느 출판사에서는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시리즈를 출간하기도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치료나 청소년 상담에 그림책이 활용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섣불리 그들의 아픈 마음에 다가설 수는 없지만 좀 더 온화한 방식으로 내면의 문을 두드려 열게 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다. 그림책에는 우리들이 엃어버린 곱고 맑은 심성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P.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