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새는 울지 않는다
박윤규 / 푸른책들 / 158쪽
(2015. 01. 29.)

 

 

큰아이와 함께 읽은 책

임을위한 행진곡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큰아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물어봐서

그렇다고 얘기 해주었다.

깜짝 놀라는 큰아이에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음은 고 윤상원, 박기순 동지의 영혼결혼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노래패가 앞으로 나오고 사회자가 주위를 정돈한다.
  "지금 부를 노래는 오늘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와 여기에 함께 문ㄷ힌 오월 영령들을 기리며 만들었습니다. 두 분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극 <넋풀이-빛의 사람들>의 주제가인데, 오늘 여기서 처음 발표하는 겁니다. 유인물을 보시고 노래패의 선창에 따라 다 함께 부릅시다. 여러분,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p. 10)

 

 

  "저, 저, 저, 안 되는데......"
  민혁이 놀라서손가락질을 했다. 얼핏 돌아보니 장갑차 뚜껑을 열고 나온 군인이 총을 치켜들었다. 다음 순간, 하늘을 찢는 굉음이 울렸다. 군인이 마구잡이로 총을 갈겨 버린 것이었다. 방울이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느낀 건 바로 근 순간이었다.
  "헉......!"
  무언가에 세차게 밀린 듯 방울이의 몸둥이가 붕 떠 올랐다. 이내 몸둥이는 퍽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아니, 아득히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고요해졌다. 길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데, 이상하게 방울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p.76)

 

 

  "참 내,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될 줄이야, 처음에 기세를 확 꺾어 놓으면 쉽게 끝날 줄 알았는데, 어렵게 되었어. 최악이야, 최악."
  "그래도 절대로 발포는 안 됩니다. 시위대는 적군이 아니잖습니까?"
  "적군은 아니지만 폭도잖아. 폭도는 진압해야지."
  폭도라는 말에 방울은 움찔했다. 폭도는 나쁜 사람이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다. 마구 때리는 사람이다. 방울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군인들이 너무 심하게 때리니까 다지러 나왔다고 했다. 방울이 본 바로는 군인들이 폭도였다.
(p.98)

 

 

  방울은 소스라치며 날아올랐다. 진짜로 총을 쏘다니, 국군이 국민에게 총을 소다니, 울음이 터지는 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울은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여 그곳을 벗어났다. 구름을 향해 위로 솟구쳤다. 이 세상에서 아주아주 벗어나고 싶었다.
(p.105)

 

 

  '사람이 별보다도 곷보다도 더 아름답다니!'
  방울은 깨달았다. 새가 된 후로 사람이 무섭기만 하였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빛이다. 욕심과 미련과 한으로 뭉뚱그려진 혼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아름다운 빛이 있다. 아무리 못난 몸뚱이를 가진 사람도,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속은 보석 같은 빛으로 가득하다. 바로 생명의 본질인 영이다.
  그것을 눈으로 보고 나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망월동에 남은 영혼들도 아름다웠다.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에게 총을 쏜 군인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런 사람들은 어찌 무서워하고 미워할까. 방울은 맹세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야지. 아무도 원망하지 말아야지. 그러므로 다시는 울지 않기록, 아프고 슬픈 울음일랑 울지 않고 아름다운 노래를 해야지. 영혼들의 한을 풀어 주는 씻김 노래를 불러야지. 암!
(p.141)

 

 

  그 다음날 새벽, 방울새 한 마리가 방울의 비석 앞에 동그마니 잠들어 있다. 두 발을 오므린 채 숨도 쉬지 않는다. 솜털처럼 가벼워 새벽바람에 금세 날려 갈 듯하다.
  새의 몸에서 나온 방울은 새의 몸으로 들어가던 날의 모습 그대로다. 토끼와 토끼풀이 그려진 티와 에크무늬 치마를 입었다. 종아리 아래족으로 내려갈수록 연기처럼 희미한 영혼의 모습이지만 빨간 구두 두 짝을 모두 갖추어 신었다. 그런 방울의영혼이 방울새를 가만히 바라본다.
  '저리도 가냘프고 작은 몸속에 어덯게 삼 년이나 깃들어 살았을까?'
  방울은 방울새에게 뽀뽀를 하고 어루만져 준다.
(p.151)

 

 

  벌써 오 년이 자났나 봅니다. 고등학생인 큰아이와 초등학생인 작은아이를 데리고 광주를 찾았던 날이. 민주우의 알을 품은 거대한 탑 앞에 가서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습니다. 명색이 오월문학상 수상 작가로서 참 늦은 방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마음의부담이 크기도 했는데, 유물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작은아이가 느닷없이 말했습니다.
 "난 군대 가지 않을래요."
  "왜?"
  "군인들은 나쁘고, 무섭고, 싫어요."
  "난 말문이 콱 막혀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큰 아이는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이 어덯게 대통령도 하고, 아직도 잘 살고 있어요?"
  나는 또 말문이 막혔고, 선뜻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의 많은 모순이 둥뚱그려져서 터진 그날의 상황을 어떻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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