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 창비 / 372쪽
(2015.1.24.)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머리속에 떠오르던 영화가 있었다.
얼마전에 보았던 <국제시장>이란 영화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주요한 사건들을 몸으로 겪은 같은 세대의 주인공들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 시대의 장남, 가장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의 덕수와 <투명인간>의 만수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무엇이었을까?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면서 맘 한구석에 불편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는 영화로 감상하고 그곳에 또다른 해석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국제시장>과 <투명인간>을 비교하며 읽고, 감상하기는 참 좋을 듯 하다.

=============================================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리라. 친분을 넘어서는 것을 욕심내지 마라. 욕심이 과하면 탐심이 생긴다. 탐심은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든다. 도둑질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면 안된다. 필요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것과 바꾸어라. 돌려줄 것을 약속하고 빌려라. 먼저 말을 하고 구하면 얻으이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훔치는 건 안된다. 훔치지 마라. 훔치고 나면 너는 네 것을 도둑맞게 된다. 네 삶을 도둑 맞는다. 그러면 너에게 무엇이 남겠느냐.
(P.28)

 

 

  나는 유물론자다. 내생이나 전생, 영혼의 존재 따위는 믿지 않는다. 나 자신으 생로병사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십대에 듯을 펴보기도 전에 큰 좌절을 겪었다. 스스로를 던져 내 가족과 가정, 주변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결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이십대에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던 벗들이 있다면 물을지도 모른다. 개체의 생물학적 연장인 핏줄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이 세계를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꿔나갈 책무를 지닌 깨어 있는 인간으로서 온당한 태도인가.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영세불멸의 것으로 하려는 동물적인 욕망이며 봉건적인 세계관의 발로가 아닌가. 예전이라면 내 속내가 훤히 드러난 것을 부끄러워했겠지만 이제 나는 바로 그게 우리가 바꿔나가려 했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뜨거운 마음을 지녔던 벗들은 이 누차하고 타락한 세상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느긴다.
(P.162)

 

 

  사람이 죽을 때 등잔에 기름이 다해 불이 꺼지듯, 방 안의 전등이 꺼져 암흑에 잠기는 것처럼 의식이 스러지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인가. 그럴 것이다. 그러하리라. 내가 유물론자였음을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내게 입증해줄 것이다.
  자 그럼, 사소하고 지루하게 길었던 나의 삶이여, 이만 안녕.
(P.163)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한정된 자원이라는 생존조건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몫을 내가 빼앗기 위해서는 배신, 속임수, 회유나 설득을 위한 정치기술을 사용하고 폭력이나 살인 같은 범죄조차 불사해야 한다. 그런 인간만이 적자로 생존할 수 있다. 나의 피에는 그러한 적자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어 있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가족, 친구, 연인 간의 사랑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장치일 따름이다. 내가 거기에 연연할 필요가 있는가.
(P.2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