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VS 남자
개마고원 / 정혜신 / 356쪽
(2014. 12. 25.)

 


 

  살다보면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찌할 수 없는 낭패감을 느끼는 때가 있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남자는 그 느낌의 근원으로 자신의 성공적이지 못한 삶을 지목하지만, 정작 성공한 남자들은 그 낭패감의 원인이 자신의 성공에 있다고 믿기도 한다. 성공이란 자신의 욕구를 억압한 한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 한다면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도 아니다.
  나는 성공한 남자들의 삶을 현미경을 통해 살펴보면서 그들의 삶이 평범한 이 시대의 많은 남자들, 바로 당신의 삶과 질적인 차이가 있지 않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당신의 열등감이 이건희 회장의 열등감과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김윤식 교수의 외곬 기질 속에서 당신의 한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사진 속의 당신에게 JP식의 무한한 낭만이 깃들여 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성공한 남자들이 특별한 삶에 대한 글이 아니며, 그 안에서 우리 모두의 일상적 삶을 반추하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좋겠다. 그게 이 글의 진짜배기 복적일 테니까.
(P.8)

 

 

  공주병 혹은 왕자병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며, 한마디로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전제가 깔린 사고방식이다. 본능에 가까운 성향이긴 하지만 대체로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고정관며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의 부재'와 짝을 이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가장 나를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P.14)

 

 

  정신분석학자 칼 융에 의하면 '콤플렉스'란 '우리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 화를 내게 하거나 또는 목을 매게 하는 마음속의 어떤 것'이다.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린 흔히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콤플렉스란 바로 그 아픈 곳에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의 덩어리다. 오늘날에는 콤플렉스란 말이 열등감과 같은 뜻으로 일상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자기 내면보다는 타인들의 평가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타인이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인 셈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그들의 평가와 기대에 자신을 끊임없이 맞추다보년 상대적인 열등감이 발동한다. 열등감이란 객관적일 수 없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감정인 것이다.
(P.42)

 

 

  '자유라는 단어만큼 끊임없이 마음을 두드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때때로 막연하게 터져나오는 "아,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자유는 늘 그 '막연함' 속에만 존재한다. 자유는 단지 잠시 동안의 휴식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방탕함과 같은 부정적 가치로 인식된다. 현실에는 늘 보다 높은 가치가 존재하며, 자유는 단지 그 가치를 더욱 빛내기 위해 억제되는 조연의 역할에 머무른다. 그렇다면 자유를 억누른 대가로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P.69)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자들의 삶의 터전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충성이나 의리에 대한 남자들의 무의식적 집착은 그 뿌리가 놀랄만큼 깊고 집요하다.
(P.85)

 

 

  완전한 자유인은 튀는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완성 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행동 없는 자유의지란 공상가의 심심파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유성은 완전한 '자유인'이라 할 만하다. 그는 생각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거침이 없다.
  일을 하다가 갈증을 느낀 사람이 있다. 그때 그 사람으 주관심사는 '갈증'이고 '일'은 무관심이다. 그러나 물을 마시고 나면 주관심사였던 '갈증'은 그에게 배경이 되어 물러나고 부관심사였던 '일'이 그제서야 비로소 주관심사가 되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주관심사와 부관심사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며, 그 순환이 원활할 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다.
(P.96)

 

 

  "튀는 두더지는 방망이로 찍어누르고 모난 돌은 정으로 때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둥글게 둥글게, 그게 인간의 조건이다. 집단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은 홀로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자율적 판단능력을 발휘하려고 하기보다는 연고집단에 적극 참여하거나 '대세'라고 판단되는 흐름에 무조건 동참하는 데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
(P.128)

 

 

  한 사람이 번화한 거리에 서서 손을 이마에 대고 하늘을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으면 행인 중 80%가 길을 가면서 그쪽을 향해 시선을 주고, 그 중의 40%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 사람과 같은 방향을 쳐다보게 된다고 한다. 독립적으로 사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생 초기에는 부모로부터의 독립, 후에는 사회로부터의 독립이 가장 중요한 심리적 과제라고 했다. 사회나 집단이 강요하는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엔 '왕따'를 각오하면서도 자신만의 소신을 당당하게 펼쳐보이는 삶도 필요한 법이다.
  '고립'은 때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선물한다.
(P.131)

 

 

  우리의 '소신'이란 것도 어떤 면에서는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에 의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자기의 '믿은 바'가 유일무이의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건 나만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각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회색론이 능사라는 게 아니라, 나만 옳고 나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우격다짐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는 모양인지 드골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잠언을 남겼다.
  "스스로를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여기지 말라. 전세계 묘지에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P.162)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진단했다. 그의 철학을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인간에게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실감케 하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희망이 아무리 절실하다 해도 '무턱댄 낙관'까지 용납될 수는 없는 법, 진정한 희망이 싹트는 것은 오로지 정직하게 바라본 현실 속에서일 뿐이다. 때로는 '좌절'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며 능력이다.
(P.2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