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장하성 / 헤이북스 / 724쪽
(2014. 12. 07.)

 

 

 

  한국 자본주의도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선진국들에는 없는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 극도로 불공정한 시장의 경쟁 구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그리고 비정규직과 자영업 노동자 비중이 대단히 높은 불안정한 고용구조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선진국들이 복지로부터 후퇴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이제야 복지를 시작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정부가 시장을 규제하는 역할을 줄여가기 시작한 1980년대에 한국은 계획경제를 하고 있었고, 선진국에서와 같은 경쟁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그 원인과 과정이 선진국들과는 크게 다르다. 선진국들의 문제들이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의 산물이라면 한국의 문제들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발생한 문제다.
(P.22)

 

 

  한국 시장경제의 모순 구조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며, 더욱이 외환 위기 이후 추진된 5시장경제의 정착 과정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발연대에 고착되된 성장 방식과 관행들이 외환 위기 이후에 교묘하게 시장 개혁 조치들과 맞물려서 더욱 증포된 형태와 규모로 나타난 것들이다. 특히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박정희 시대에 시장 경쟁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한 온갖 특혜와 지원으로 성장했으면서, 시장 개혁 이후에는 정부로부터 규제 없는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영향력가 경제력 지배가 정부와 정치를 넘어서서 경제 권력화 된 지금에는 시장의 기본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규제조차도 정부의 간섭이나 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P.99)

 

 

  신자유주의 조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최소한의 개념으로 요약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사장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고 정부의 경제 운용의 역할과 시장 개이을 축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요약한 개념은 많은 신자유주의 논쟁들에서 발견되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정리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화하거나 또는 정확한 개념으로 확정지을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는 이를 논의하는 사람의 이념적 좌표의 차이, 비판이나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경제 현상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인식의 차이, 그리고 경제 이념의 역사적 변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P.124)

 

 

  시장경제를 인정하거나 또는 부정하지 않으면서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책들까지도 시장만능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시장 체제를 옹호하거나 또는 경쟁을 중요시하는 저액을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한다면 굳이 신자유주의라는 규정을 동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자체를 비판하면 된다. 그것은 각자의 이념의 자유와 신념의 영역이며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자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대상을 정당한 근거 없이 신자유주의로 규정짓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뭔가 나쁜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대중들의 인식을 악용하는 대중 영합적인 '파란색 칠하기'다. 이는 일부 보수 우파들이 공정한 분배와 정당한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좌빨'이라고 '빨간색 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단정 짓기'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켜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바로잡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적인 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오류를 초래하고, 시장의 폐해를 바로잡는 올바른 대안 모색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P.134)

 

 

  자본주의의 종말이 오지 않은 것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최선의 선택이거나 또는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대안 없이 지금의 체제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끝난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렇다. 그러기에 수많은 종말론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여전히 건재한 것은 자본주의 스스로의 생명력이라기보다는 대안 부재로 인한 생존이라 할 수 있다. 체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선택하는 것이다. 대안적 선택이 없으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지금의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서라도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P.421)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는 재산의 사적 소유와 시장에서의 경쟁, 그리고 분배와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어떤 사적 소유가 정의로운 것이냐의 문제다. 두 번째는 시장에서 경쟁의 시작과 과정이 정의로운 것이냐의 문제다. 세 번째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정의롭게 배분되었는가의 문제다. 세 가지 문제는 서로 독립적인 것은 아니며,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되는 인과관계로 연관되어 있다. 정의롭지 않은 과정으로 획득한 재산의 사적 소유는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또한 정의로운 경쟁의 과정이 만드시 정의로운 분배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불공정한 경쟁으로 만들어진 결과는 결코 정의로운 분배가 될 수 없다.
(P.427)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달리 정의되는 두가지 핵심 요건은 사유재산제도와 경쟁적인 시장의 존재 여부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시장은 존재하고 그 시장은 반드시 경쟁 원리를 채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는 경쟁 원리로 작동하는 시장경제와 분리 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계획경제 하에서 사유재산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경쟁적인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온전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사적 소유권 없는 자본주의'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계획경제체제에서의 '경쟁 시장 없는 자본주의'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P.469)

 

 

  한국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줄이고 중산층이 두터운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분배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첫째는 기업의 이익중에서 가계로 분배되는 몫이 커져야 하고, 둘때는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며, 셋째는 정부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재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소유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이 없는 경영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P.527)

 

 

  지금의 일그러진 모습을 한 자본주의를 고쳐 쓰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고쳐서 만들려고 하는 더 나은 자본주의가 추구할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가를 논의해야한다. 둘째, 더 나은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에 대해서 국민들의 동의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자본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 즉 수단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P.571)

 

 

  한국에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이'가 현실이 될 희망은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자본과 노동의 이해가 충돌할 때, 불평등을 만드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편이다. 그러나 평등을 만드는 민주주의는 노동의 편이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영위한다. 그러기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충돌할 때, 민주주의가 가진 '투표'의 무기가 작동되면 자본주의의의 '돈'이라는 무기를 이길 수 있거나 적어도 제어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는 스스로 소멸한다. '투표'가 '돈'을 이겨서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살리고 발전시킨ㄴ 것이다. 한국은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할 한국의 현실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어낼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자본이 아닌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계급 투표'와 '기억 투표'를 한다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현실이 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질 희망은 있다.
(P.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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