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들의 국가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12명 / 문학동네 / 232쪽
(2014.12.04.)
'최선'을 다하겠단 얘길 들었다. '최대'한 힘쓰겠다는 말도, '모든걸 동원'하겠다는 약속도 들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 들었다. 그럴듯한 말들은 주로 '위'에서 내려왔다. 그 안에는 부사와 형용사, 서술어와 추상명사가 많았지만, 시제와 동사, 주어와 고유명사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책임'이란 말이 들려왔다. '적폐'라는 말, '엄벌'이란 말도 등장했다.그런데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어도 대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기다려달라'는 청보다 선명하게 들린 건 지도층의 막말과 실언이었다.
(P.13)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P.14)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즉 진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가 더 낫게 미래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반 일리치는 "미래는 삶을 잡아먹는 우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직 희망만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P.40)
세상은 신의 노여움을 잠재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는 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분명 질문에 대답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사람 자리로 슬쩍 바꿔 앉는 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P.113)
신자유주의는 고전적인 경제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사회를 오직 시장으로만 표상한다. 그러나 또한 그와 달리 자유방임 원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에 의존하면서 사회에 개입하지 않는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표상에 의거하여 사회가 재편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것에 의한 통치"다. 바로 이런 이미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 되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대체의 가장 명백한 결과는 공공영역의 민영화 내지는 사유화에 그치지 않고, 바로 '자기 경영'이나 '자기 계발'이라는 익숙한 말들이 나타내듯이 주체성 자체의 사유화이자 사유화된 주체성의 생산으로 확장된다.
(P.208)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받는 중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모두 세월호 참사 이후 출간된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것들이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글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 속에서 이 단행본을 엮는다. 이 책은 얇지만 무거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실과 슬픔의 무게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품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제 이 책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P.230)